한중옥 작품 展, '칼로 새겨낸 크레파스의 새로운 표정'

뭉툭한 크레파스가 정교해지려면 자신의 살을 깎는 수밖에 없다. 워낙 무른 성질을 가진지라 금새 닳게되고 그러면 또 깎는 작업을 반복해야 한다.

크레파스 화가 한중옥(52)의 작업도 구도하듯 이뤄진다. 쉽게 섞이는 액체 안료와는 달리 크레파스의 혼색은 ‘물리력’에 의지해야 한다.

어두운 색을 바탕에 칠한 뒤 점차 밝은 색으로 덧칠하고 그 위에 칼질이 가해진다. 색의 중첩이 더해질 수록 화폭 전체에 견고한 밀도가 만들어진다. 작품 전체에서 작가의 손 작업이 가해졌던 뜨거운 열기가 올라오는 듯하다.

▲ 한중옥 作 ⓒ제주의소리

한중옥의 작품에는 두가지 모습의 제주 바다가 나타난다.

한라산에서 시작된 용암이 굳어, 수천년의 시간을 퇴적하게 된 암반. 그리고 그 섬을 박차고 바다로 뛰어들어 풍랑의 밭을 일군 해녀들이다.

암반에 밀착한 프레임은 갖가지 표정을 만들어낸다. 용암이 식으면서 만들어낸 공기구멍과 틈, 흐름의 자국들은 규칙적이면서도 변주가 있어 조형적인 아름다움이 있다.

푸른 빛을 바닥에 깔고 흰색을 덧칠하는 방식으로 작업한 제주바다를 뚫고 나오는 해녀의 모습도 인상적이다. 바다가 강인한 그녀들을 낳고 있는 듯하다.

한중옥 작가의 작품전 '칼로 새겨낸 크레파스의 새로운 표정'이 20일부터 26일까지 서귀포 이중섭미술관 창작스튜디오 전시실에서 열리고 있다.

▲ 한중옥 作 ⓒ제주의소리

만 35년째 크레파스 그림을 고집하고 있는 한중옥 작가는 “유화와는 전혀 다른 크레파스 그림만의 ‘다른 맛’이 있다”면서 “특히 제주돌을 소재로 할 때 이 재료가 표현기법과 잘 맞아떨어진다”고 말했다.

▲ 한중옥 작가 ⓒ제주의소리
김상철 미술세계 편집주간은 작품평을 통해 “크레파스라는 극히 초보적이고 일상적인 도구적 수단을 통해 자신이 속한 시대와 공간을 표현하고 있다”면서 “그것은 현대라는 미명의 화려한 수식이나 지역성에 함몰된 경직된 소재주의가 아니라 자신에 대한 내밀한 성찰과 그 확인 결과를 화면에 새기는 것과 같은 것”이라고 풀이했다.

한중옥 작가는 1957년 서귀포 태생으로 네 차례의 개인전을 열었고 제주도미술대전 대상과 특선을 4번이나 입상하는 등 열정적인 활동을 보여주고 있다.

문의=016-690-36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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