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종우의 일요편지]‘개미지옥’…우리들의 슬픈 자화상

   
  “만약 어떤 이가 이십대이고, 여성이고, 지방에 살고 있는데, 거기에 고졸이고, 또 약간 다리가 불편하다고 생각해 봅시다. 자 이 사람의 삶은 어떨 것이고, 임금은 어느 수준일지, 도대체 가늠이나 되십니까? 아니, 이 정도에서 경제활동을 할 수나 있을까요? ‘약한 고리’라고 할 수 있는 조건을 다섯 가지나 가진 이 사람에게 한국이란 나라는 과연 어떻게 느껴질까요?”

 ‘C급 경제학자’를 자처하는 우석훈이 <괴물의 탄생>이란 책에서 내던진 질문입니다.  
 여러분은 어떤 느낌이 듭니까?
 그의 말처럼, 아마도 '개미지옥'은 아닐까요? 한 번 빠지면 헤어 나올 수 없고 발버둥을 치면 칠수록 더 깊이 빠져드는...

 듣기만 해도 무시무시한 개미지옥. 알게 모르게 우리 모두 개미지옥에 빠져 있는 건 아닌가요. 누군가 대한민국에선 거쳐야 할 개미지옥이 4가지나 된답니다. 10대엔 ‘사교육’, 20대는 ‘청년실업’, 30대엔 ‘내 집 마련’, 그리고 마지막으로 40대 이후는 ‘불안한 노년’...

 이 개미지옥으로부터 자유로운 사람은 단 한사람도 없습니다. 자신이 개미지옥에 갇혀있는 지도 모를 수 있고, 알더라도 방도가 없어 모른 체하고 있을 수도 있습니다. 슬프고 안타까운 현실은 한국인이라면 누구나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이 개미지옥의 굴레에서 벗어날 수 없다는 겁니다. 그리고 지금, 우리는 그 안으로 꽤 깊숙이 들어가 있는 것 같습니다.

 만약 개미지옥을 통과하지 못하면 그 순간 낙오하게 되고, 즉시 춥고 배고픈 인생으로 전락합니다. 결국 ‘약한 고리’를 하나라도 가진 사람들에게는 우리들의 대한민국은 그야말로 ‘생지옥’이나 다름없습니다.
 

   
 자활풍경, 가난한 근로여성들의 속내

  지난 번 교육 땐가 싶습니다. 자활근로에 참여하시는 기초생활 수급자들에게 불쑥 던진 질문 하나. “만약 백이삼십 정도의 월급을 준다는 데가 있으면 가실 분이 있냐?”고요. 열 대 여섯 명 모두 묵묵부답, 난감한 듯 서로 눈치만 볼 뿐입니다.     
 “고작 70만 원 정도인 자활급여에 비해 월급도 많은데 왜 안 가겠다고 하냐”며 부러 몇몇을 다그쳤습니다. 하지만 반응은 엉뚱하다 못해 타박 준 쪽이 되레 무안해질 만큼, 다들 손사래 칩니다. 가능하다면 수급자로 남고 싶단 얘기겠죠. 그러고선 한두 마디씩 건넵니다. “아이들이 다 클 때까진”, “돌봐야 될 식구 때문에”......

 궁금하기도 해서 슬며시 고쳐 묻습니다. “수급자로 자활에서 일하면서 이래저래 받는 소득을 다 따져 월급으로 치면 얼마나 될까요?” 잠시 머뭇하더니 한 분이 중얼거립니다. “한 백 오십쯤.” 이혼하고 어린 딸 둘을 키우며 그새 자활 5년차에 들어선 팀장입니다. 추가로 나오는 생계급여에다 어린이집이나 아이들 교육비, 건강보험이나 전기요금처럼 크건 작건 생활에 필요한 비용이 면제되는 건 말할 것도 없고 단체나 기업에서 나오는 지원들도 적지 않아, 못해도 그 만큼은 될 거라는 겁니다. ‘설마 그 정도까지야...’ ‘식구가 많으면 그럴 수도 있겠네.’ 끼리끼리 수군대지만, 일하고 자활에서 받는 급여 말고 반대급부가 만만치 않다는 건 그들이 벌써 몸으로 아는 모양입니다.

 그 날 교육에 참여했던 사람 대부분은 생계를 책임지고 있는 3, 40대 여성들. 혼자서 모든 걸 감당하기엔 우리네 현실은 ‘개미지옥’. 버겁기 이를 데 없습니다. 그들 처지에선 공적부조인 자활에나마 의지해서 살아보려고 몸부림칠 수밖에... 면목 없는 일이지만(?) 어쩌면 당연한 게 아닌가요? 탈수급이나 외치며 토끼몰이 하듯 또 다시 시장이란 정글로 내보내는 것만 능사는 아니지 싶습니다. 국민기초생활보장법 시행 10년, 새삼 사회안전망이 얼마나 소중한지 가슴을 파고듭니다.
"의료, 주택, 교육등 기본적인 인간의 필요에 대한 권리를 보호하려고 했을 때 시장의 힘으로는 지배되지 않는 것이 있습니다. 인간이 존엄하다는 진리는 시장보다 위에 있고, 생존권은 자유시장보다 중요한 것입니다." - 생태도시 아바나의 탄생
 

   
 ‘사회임금’, 공동체로부터 받는다?

  경제위기를 맞아 사람들 모두 못살겠다 아우성입니다. 하지만 나라마다 사정이 다릅니다. 똑같이 실업을 당해 임금소득이 중단되더라도 가계에 미치는 위험은 같지 않습니다. 우리 같이 사회안전망이 그리 튼튼하지 못한 나라에서는 고통을 경험하는 집단이 더 넓고 고통의 깊이도 더 클 수밖에 없습니다. 하지만 서구 노동자들은 우리보다 안정적으로 생활합니다. 그들 역시 자유롭게 쓸 수 있는 가처분 소득은 많지 않지만, 상당한 금액의 ‘사회임금’을 얻기 때문입니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대부분의 사람들이 임금을 받고 살아가지만, 그렇다고 가족의 생계가 전적으로 임금에만 의지하는 건 아닙니다. 기업에서 받는 시장임금과는 별도로 사회적으로 주어지는 다양한 형태의 급여가 존재합니다. 노동자가 회사에서 얻는 소득이 ‘시장임금market wage’이라면, 실업급여, 아동수당, 기초노령연금, 건강보험 등 사회적으로 얻는 수혜는 ‘사회임금social wage’이라 불립니다.

 우리나라의 사회임금은 어느 수준일까요?
 사회공공연구소의 추정 결과, 2000년대 중반 한국 평균 가구에서 가계운영비 중 사회임금이 차지하는 비중은 7.9%에 불과합니다. 반면 OECD 회원국의 평균 사회임금 비중은 31.9%로 4배에 달합니다. 서구에서 사회임금이 높은 나라는 북구 복지국가인 스웨덴입니다. 스웨덴에서 사회임금 비중은 가계운영비의 절반에 육박하는 48.5%입니다. 스웨덴 노동자는 시장경쟁을 통해 얻는 소득만큼 사회적으로 급여를 받고 있는 셈입니다. 게다가 사회임금이 하위계층에 우호적으로 지급되기 때문에 하위계층의 가계운영에서 사회임금이 차지하는 비중은 절반을 훨씬 넘습니다.

 사회임금이 클수록 사람들의 생계는 노동시장의 위험으로부터 완충지대를 가지게 됩니다. 사회임금이 제공되는 영역들은 실업, 의료, 주거, 보육 등 인간의 기본적 생활 필요를 충족하는 것. 때문에 경제위기 때는 사회안전망 역할을 할 수 있습니다.
 시장임금으로만 살아야하는 한국에서 구조조정은 ‘가계파탄’을 의미하고 그만큼 사회적 갈등을 증폭시킵니다. 가계가 전적으로 시장임금에 의존하고 있는 현실에서 지금 회사에서 내쫓기면 당장 생계가 막막한 게 우리나라 노동자들입니다. 사회임금을 늘리는 정책이 시급합니다. 그게 바로 보편적 복지로 나가는 길입니다.

 지난 6.2 지방선거에서 뜨거운 감자였던 무상급식은 그 출발선입니다. 점차 사회서비스의 더 큰 부분으로 나아가야 합니다. 현재 중위소득계층까지만 보육료를 차등 지원하고 있는 보육제도도 사실상의 무상보육으로 나아가야 합니다. 아동수당도 지급해야 합니다. 보편적 무상교육은 당연한 것이며, 대학등록금도 이자 부담을 없앰으로써 사실상의 완전후불제로 개편되어야 합니다. 의료와 요양도 보장성 수준을 대폭 높여 사실상의 보편주의를 달성해야 합니다. 소득보장에서의 보편주의도 중요합니다. 일생에 걸쳐 소득의 단절이 없도록 '전 국민 고용보험제도'의 실질적 도입과 기초연금을 기본으로 하는 보편적 국민연금의 내실화도 요구됩니다. 
 

   
 모든 병원비, 건강보험 하나로!!! 

  7월, ‘건강보험 하나로 시민회의’가 출범합니다. 그리고 가을엔 우리 제주에서 "건강보험 올레!, 민간보험 갈래?" 회원 한마당도 열린답니다.

 “모든 병원비를 국민건강보험 하나로 해결하는 것은 실현 불가능한 꿈일까요? 아무리 중병에 걸려도 병원비 걱정 없이 치료하는 것은 실현 불가능한 꿈일까요?  어느 병원에 가든 양질의 의료서비스를 제공받고, 환자 가족이 간병 부담에서 벗어나는 것은 실현 불가능한 꿈일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OECD 국가들은 평균적으로 입원 진료비의 90% 이상을 공적 의료보장제도가 해결해 주고 있습니다. 외래 진료비는 80% 이상을 해결해 주고 있습니다. 따라서 병원비 때문에 치료를 못 받거나 주저하는 일이 없습니다. 병원비 때문에 가계가 거덜 나는 일도 없습니다. 우리나라 병원보다 간호 인력이 서너 배는 많아서 환자들을 제대로 돌보고 있습니다. 환자 간병도 병원의 기본 서비스로 제공되고 있습니다.

 이런 국가들은 도대체 어떻게 해서 이런 의료복지 혜택을 국민에게 제공할 수 있을까요? 바로 사회연대적인 방법으로 공적 의료보장제도를 강화했기 때문입니다. 사회연대적인 방법으로 공적 의료보장제도의 재정을 확충하고, 그 혜택을 국민들에게 형평하게 나누었기 때문입니다.

 우리나라도 얼마든지 가능합니다. 이미 기본 인프라도 가지고 있습니다. 바로 국민건강보험입니다. 이렇게 사회연대적인 국민건강보험을 가지고 있지만, 우리는 이것을 제대로 활용하지 못했습니다. 그리고 이 때문에 대다수 국민이 중병에 걸리면, 가계가 거덜 날 수도 있다는 일상적 불안감을 안고 살아가고 있습니다.

 국민 1인당 월평균 1만 1천원의 국민건강보험료를 더 내서 6.2조원을 조성하면, 여기에 기업주가 3.6조원을 보태고, 국고지원금이 2.7조원 추가되면서 12조원이 만들어집니다. 12조원이면, 우리나라 국민건강보험의 보장성을 OECD 국가 평균 수준으로 끌어올릴 수 있습니다. 선택진료비, 병실 차액, 초음파, MRI, 각종 검사와 의약품, 노인틀니를 보장할 수 있습니다. 간호인력을 대폭 확충해서 양질의 서비스를 제공받을 수 있고, 환자 간병도 병원의 기본 서비스로 제공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연간 100만원이 넘는 환자 본인부담금은 국민건강보험이 해결하도록 할 수 있습니다.

  이 모든 것을 풀어나가는 데 가장 중요한 것이 시민의 힘입니다. 어디서 시작할까요? 무상급식이 우리나라 교육제도의 문제를 모두 해결하는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사람들 관심이 높은 무상의제를 시작으로 보편적 교육복지가 공론화되고 있지 않습니까?

'건강보험 하나로'도 병원비의 사회적 연대를 시발점으로 공공의료를 구축해 가려 합니다.  '건강보험 하나로' 운동의 폭발력은 무상급식을 훨씬 넘을 겁니다. 병원비에서 느끼는 서민의 공포가 너무 크고 이를 벗어나려는 꿈이 간절하기 때문입니다. - ‘건강보험 하나로 시민회의’
 
 지난 주, 편지를 보내지 못했습니다.
글을 쓰면서 담배와 커피가 늘었답니다.
둘 다 끊으라는 아내와 아이들의 성화에다
한번 쉬어볼 작정으로 그날  내내 빈둥거려 보았습니다.
편지를 쉰 건 당근이구요.

오늘 참 비가 많이 옵니다.
마음을 가다듬고 편지를 보냅니다. 
  
<제주의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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