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성스님의 편지] 하염없이 비가 옵니다

▲ ⓒ제주의소리 / 사진=오성 스님

하염없이 비가 옵니다.
푸른 등짐을 지고
하늘땅을 쉼 없이 걷고 또 걷습니다.

이처럼 비가 많이 오는 날에는
미얀마 마하시 명상센터에서 철나던 때가 생각납니다.
그곳에 생활의 바탕은 ‘무상’입니다.
우리는 삶이 무상한 것인 줄 다 압니다만
실은 모르고 있습니다.

그곳에 불자들은 주말이 되면
절에 가서 청소와 같은 이러저런 봉사를 합니다.
그리고 오후 2시가 되면
경전을 독경하고 스님들의 설법을 듣습니다.
그리 성능이 좋지 않은 스피커로 들려오는
독경소리는 이국의 맛과 함께 평온함을 갖게 합니다.
그날도 오늘처럼 비가 왔습니다.
우기라 비의 장막이 처지고
모든 감각은 정지되어 귀만이 깨어 있었습니다.
한순간 벼락이 내리쳤고 한참이나 망망하였습니다.
적도에 가까워서 그런지
천둥소리는 머리 바로 위에서 엄청난 위압을 가합니다.
그런데도 독경하는 스님의 음성에는 작은 미동도 없었습니다.
어떻게 가능할까. 익숙해서 그런가.
옆에서 정진하고 있는 남방 스님들이 몸 추스르는 것을 보면
그런 것 같지도 않았습니다.

▲ ⓒ제주의소리 / 사진=오성 스님

▲ 오성 스님
사야도가 말씀하셨습니다.
‘모든 것이 무상하다’는 것을 알면 가능하다고…
다시 멍해졌습니다.
나는 무상이란 개념을 모르고 있었던 것입니다.
매순간에 다가오는
눈의 경계, 귀의 소리, 코의 냄새, 혀의 맛, 몸의 느낌,
의식의 대상에 대해 무상함을 알아차리지 못하고
매여 감상하고 오래 오래도록 간직하고 싶어 하였습니다.

방금 빗속을 걷고 있는 나의 귓가로
바람이 스치고 지나갔습니다.
난 아직도 지나간 바람을 느끼고 간직하고 있습니다.
바람은 나를 기억하지 않는데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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