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20 정상들이 지난 주말 토론토에서 만났다. 이제까지 3회에 걸친 만남에서는 별다른 이견이 없었다. 정부주도의 경기부양, 금융규제, 그리고 세계교역의 증진 등의 필요성을 누구나 수긍했기 때문이다. 이번에는 그 첫 항목에 대해 의견이 갈렸다. 유럽 국가들은 재정의 안정을 되찾으려 하고 미국은 성장기조가 자리잡을 때까지 재정지출을 계속하자고 한다. 성장이 멈추면 세수가 줄고 실업이 늘어 정부지출은 더 늘어나니 단기적 정책목표는 성장에 두어야 한다는 논리다.

유럽이 재정적자의 감축을 절박한 정책과제로 삼고자 하는 것을 이해하기는 어렵지 않다. 그리스의 국가신용위기가 보여준 바와 같이 가장 두려운 것은 시장의 신뢰를 잃는 것이다. 과다한 재정적자와 이에 따른 국가 부채규모가 도마 위에 오르면 “국가 파산”을 걱정해야 한다. 당장은 고통스럽더라도 재정안정의 기반이 마련되어야 그 다음의 성장도 기대할 수 있다.

재정적자 감축이 다수의견

재정적자로 말하자면 미국도 사정이 아주 나쁘다. 그러나 국제금융시장이 불안할 때마다 안전자산을 찾는 수요가 늘어나기 때문에 미국 정부가 발행하는 중장기 채권은 낮은 금리에도 불구하고 쉽게 팔린다. 따라서 미국은 재정안정이 급선무가 아니다.

이번 정상회담의 호스트인 캐나다의 하퍼 총리는 2013년까지 각국의 연간 재정적자를 현재의 절반 수준으로 감축하자는 내용을 공동합의문에 반영했다. 영국의 새 총리 캐머런도 이에 동조했다.

여기에 미국 의회까지 유럽 쪽 의견을 지지하는 듯한 행보를 보였다. 오바마 대통령이 최근에 요청한 장기실업수당 인상 및 재정이 위태로운 몇 개 주에 대한 중앙정부 보조금을 심의 보류시켜버렸기 때문이다.

두번째 항목인 금융규제에 관해서는 미 의회가 오바마의 얼굴을 세워 주었다. 금요일 새벽까지 마라톤 협상을 벌인 끝에 상하원 단일안 마련에 성공했다. 주말에 있을 G20 정상들의 모임에 가져갈 수 있도록 해달라는 대통령의 부탁을 들어준 것이다.

오바마는 이를 금융규제 개혁의 모델로서 다른 나라들도 따라줄 것을 요청하고 싶었던 것이다. 세부적으로는 완화된 부분도 있지만 당초 의도했던 개혁의 70~80% 이상은 반영된 것으로 필자는 평가한다.

교역의 증진에 관해 미국은 중국 위안화에 대한 공세를 빼놓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의 상황은 1985년 일본 엔화의 평가절상을 압박한 ‘플라자 합의’를 연상케 한다. 일본을 포함한 선진 5개국 정상이 만나 각국 중앙은행이 외환시장에 개입해 일본 엔화를 평가절상 시키기로 합의한 결과 1985년에 238엔이었던 엔화의 환율이 10년 뒤인 1995년에는 94엔까지 현저하게 절상되었다. 그러나 같은 기간 일본의 경상수지 흑자규모는 2배로 늘어났고 미국의 경상수지 적자는 6배 이상 급증했다.

물론 경상수지 흑자 누적은 물가상승 또는 부동산 가격의 거품을 일으켜 후일 큰 낭패를 당할 수 있다. 중국도 이를 안다. 중국이 2005년부터 2009년까지 매년 5.5%씩 위안화를 평가 절상했던 것도 국내물가 안정을 위한 것이었다. 중국은 이번에도 스스로의 필요 때문에 위안화 평가절상의 길을 선택할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그것이 미국의 경상수지 개선에 도움이 될 것이라고 기대하는 것은 곤란하다.

미국이 성장 지속을 원하면서 재정적자 문제를 뒷전으로 미루는 데 대해서는 우려의 목소리가 높다. 전 미국 연준의장 그린스펀은 낮은 미국 국채의 금리가 사태 파악을 흐리게 하는 원인이 될 수 있다고 경고했다.

피터 오스잭 미 예산국장도 다음달 사직하겠다는 의사를 갑자기 밝혀 화제가 되고 있다. 연간 25만불 이하 소득자(미국인 98%가 여기에 해당)에게 세금을 올리지 않겠다고 한 대선공약을 폐기하도록 대통령을 설득하려 했으나 실패했다는 소문이다.

저성장 고실업의 장기화

유럽도 중국도, 좁게는 미국의 경상수지 개선을 위해 넓게는 세계 경제의 재추락을 막는 데 도움이 되지 못할 것 같다. 유럽은 긴축하고 미국이 성장 위주의 정책을 지속하면 세계 상품시장에서 미국은 ‘마지막

▲ 김국주 전 제주은행장 ⓒ제주의소리
까지 믿을 수 있는 손님’(consumer of last resort)이라는 달갑지 않은 역할을 떠맡게 될 것이다. 이것은 미국도 감내하기 어려운 노릇이다.

미국을 포함한 세계 여러 나라는 저성장, 고실업을 참아내야 하는 어려운 길을 가야 할 것이다. 그 가운데 우리도 세계 곳곳에서 고조되는 갈등에 대비하기 위해서는 보다 겸손하고 차분하게 우리 내부의 제반 과제들을 대하는 자세가 요구된다 할 것이다. / 김국주 전 제주은행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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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기사는 내일신문에도 실린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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