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충민의 사람 사는 세상] 아들 원재와 김치담그기에 나섰습니다

김치가 떨어져 갑니다. 찌개를 끓이면 김치의 소비가 많아지기 때문에 가급적 자제하고 있었습니다. 제가 며칠 전부터 김치가 떨어져 간다고 아내에게 노래를 불렀는데 아내는 관심도 없습니다. 다른 때처럼 그냥 알아서 하라는 식입니다.

마지막 김치 한 포기를 꺼내 밀폐용기에 담았습니다. 그리고 비어 있는 커다란 플라스틱 김치 통을 씻어 다시 찬장에 놓았습니다. 지금까지 잘 먹은 김치도 당연히 제가 담근 김치입니다.

퇴근 무렵 무심코 달력을 보았는데 마침 제주시 5일장이었습니다. 생각난 김에 5일장에 들러 배추를 사야겠다고 마음먹었습니다. 그런데 차가 문제였습니다. 우리집 애마는 10년이 넘은 차로 아내가 타고 다닙니다.

저는 궁리 끝에 거래처 렌트카회사의 팀장에게 차 좀 태워달라고 했습니다. 거래처 직원으로 알게 된 사이지만 사석에서는 호형호제하는 부담 없는 사이입니다. 제가 나이가 많아 형이고요(이하 동생이라 칭하겠습니다).

저는 그렇게 퇴근을 조금 일찍 해서 5일장에 갔습니다. 처음에 동생은 5일장에 왜 가냐고 의아해 했습니다. 제가 배추 사러 간다고, 또 그 배추로 직접 김치를 담근다고 하니 호기심이 동하나 봅니다. 그러더니 저보고 3만원을 빌려달랍니다. 자기도 자취하던 때 김치 담그던 경험을 살려 담그겠답니다. 동생의 아내도 김치를 담그지 않는답니다. 그러면 그동안 김치는 어떻게 먹었냐고 하니 사먹었답니다.

그래서 5일장에 간 두 남자는 배추를 한 무더기씩 샀습니다. 만원에 7포기나 주더군요. 실은 6포기에 만원인데 제가 단골이어서 한 포기를 더 얹어 준 겁니다.

저와 동생은 배추를 산 다음 익숙하게 배추가게 옆에 있는 젓갈가게로 갔습니다. 이곳도 배추가게처럼 저의 오랜 단골입니다. 7포기에 맞게 마늘과 생강, 멸치젓 ,새우젓을 달라고 한 뒤 한꺼번에 갈아달라고 부탁했습니다. 동생도 저를 따라 똑같이 했습니다. 어느새 동생도 상당히 재미를 느끼는 것 같았습니다.

   
 
▲ 원재는 부엌에 쌓아놓으니 작은 산 같다고 했습니다. ⓒ2005 강충민
 
그리고 김치양념에 넣으려고 부추 한 단과 쪽파 한 단도 샀습니다. 고춧가루도 샀습니다. 전에 담글 때 고춧가루를 너무 매운 것으로 사서 이번엔 보통 매운 것으로 샀습니다. 김치가 너무 매워서 전에 아내에게 한 소리 들었거든요. 제 입맛에만 맞게 한다고요.

저와 동생은 시장을 돌아다니며 산 김치재료들을 차에 싣고 집으로 향했습니다. 동생은 집으로 가면서 이것저것 물어보더군요. 소금의 양이나 양념의 배합 등등. 저는 그 물음에 제가 하던 방식을 찬찬히 설명해줬습니다. 일테면 고추양념을 할 때는 뜨거운 물에 고춧가루를 개어야 한다든지, 쪽파나 부추는 소금에 절이지 않고 생으로 넣어서 같이 버무린다든지 뭐 이런 것들이죠. 그리고는 혹 모르면 전화하라고 했습니다.

이렇게 낑낑대며 산 것들을 집에 들여 놓았는데 부엌이 꽉 차더군요. 동생은 우리집에 같이 들어 왔다가 아예 자기 앞에서 배추 절이는 것을 직접 보여 달랍니다. 포기김치는 담가 본 적 없다고요. 저는 부엌에 쌓아 놓은 배추를 전과 달리 이번에는 1/2로 잘랐습니다. 전부터 김치 담글 때는 꼭 이렇게 담가 봐야겠다고 생각하던 터였습니다. 왠지 반으로 담근 김치가 참 먹음직스럽게 보였기 때문입니다.

   
 
▲ 반으로 담가본 건 저도 처음입니다. ⓒ2005 강충민
 
배추를 다 반으로 자르고 보니 배추를 절일 그릇이 마땅치 않았습니다. 7포기까지는 담가 본 적이 없어서 난감했습니다. 순간 참 좋은 생각이 났습니다. 그건 다름 아닌 욕조였습니다. 욕조에 물을 받고 고무마개를 비닐로 꼼꼼하게 싸서 조금이라도 물이 새어나오지 않게 한 다음 왕소금을 넣었습니다.

동생은 제가 하는 것들을 찬찬히 보고는 혹시 잊을까 메모지에 적기까지 했습니다. 염도를 맞추는데 손가락으로 찍어 맛을 보았습니다. 염도를 잘 맞춘 것 같아 기분이 좋아졌습니다.

소금물이 담긴 욕조에 차근차근 배추를 넣으니 정말 딱 안성맞춤입니다. 동생은 제가 하는 것을 끝까지 보고 자기 집으로 갔습니다. 자신감이 불끈 생긴답니다.

   
 
▲ 욕조가 배추를 절이기에는 정말 딱입니다. ⓒ2005 강충민
 
저녁 8시가 넘자 아내가 아이들을 데리고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그리고는 배추가 담긴 욕조를 보고는 어이없어 하면서 한마디 합니다.

"우리 집 김치공장 같다."

늦은 저녁을 먹고 아들에게 물어 봤습니다. 내일 아빠 김치 담그는데 같이 하겠냐고 했더니 좋아서 싱글벙글합니다. 아이들은 재미있겠다고 하면서 어린이집 가서 친구들에게 자랑하겠답니다.

저는 그 다음날 아침에 바삐 출근을 할 때도 밤 사이 배추가 잘 절었는지 확인했습니다. 저번에 담글 때는 김치가 짜고 매웠던 터라 이번에는 그런 실수를 되풀이하지 말자고 마음먹었습니다.

회사에서 근무를 하는데 절여놓은 배추가 신경 쓰였습니다. 너무 오래 절이면 씹히는 맛이 없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저는 점심을 먹고 사무실에서 살짝 나와 집에 갔습니다. 욕조에 있는 배추를 조금 찢어 맛을 보았는데 아주 잘 절어 있었습니다.

저는 후다닥 배추를 한 번 물에 헹구고 미리 깨끗이 씻어 놓은 싱크대에 물이 잘 빠지도록 차근차근 걸쳐놓았습니다. 그리고 다시 회사로 들어가니 30분도 채 안 걸렸습니다.

회사 직원 중 그 누구도 점심시간에 제가 한 일을 몰랐을 것입니다. 그 사이 동생에게도 전화를 해서 배추를 건지라고 했습니다. 그 동생 제 말을 참 잘 듣습니다.

퇴근을 하고 본격적으로 김치 담글 준비를 했습니다. 저는 미리 건져놓은 절인 배추가 알맞게 물이 빠져 있는 것을 확인한 후 뜨거운 물에 고춧가루를 개어 놓았습니다. 그 사이 김치 담그기의 중요한 일꾼인 아들 원재도 엄마를 따라 집에 돌아왔습니다. 원재는 현관에 들어서자마자 "아빠 김치 만들어야지"라고 합니다.

뜨거운 물에 개어 놓은 고춧가루가 식어 갈 즈음 재료를 마저 놓고 깨끗이 씻은 부추와 쪽파를 4등분해서 같이 버무렸습니다. 아내는 제가 버무리는 모습을 물끄러미 보더니 한마디합니다.

"파김치 하는 거야?"

저는 그 말이 하도 어이가 없어 대답하지도 않았습니다. 그러자 아내는 뾰로통해져서 툭 내뱉습니다.

"잘난척 하기는…."

   
 
▲ 부추와 쪽파를 같이 버무려 양념에 넣으니 아내가 이걸 보고 파김치 담그냐? 했습니다. ⓒ2005 강충민
 
아들과 저는 두 팔을 걷어붙이고 비로소 김치담그기에 돌입했습니다. 아내는 거실에서 두 다리 쭉 뻗고 텔레비전을 보고 있었습니다.

저는 원재에게 일회용비닐장갑을 끼워주고 배추에 양념을 바르는 방법을 천천히 설명해줬습니다. 아들 녀석이 곧잘 합니다. 물론 마무리는 제가 했지만요. 한참 열심히 김치에 양념을 하다가 원재가 한 마디 합니다.

"아빠! 김치 만드는 게 꼭 빨래하는 것 같애."

그 말에 원재의 손을 보니 이건 완전히 배추잎에 비누칠을 하는 것 같습니다. 다시 제가 찬찬히 가르쳐 주니 다시 한 마디 합니다.

"아빠! 아빠도 처음엔 김치 잘 못 만들었어?" 제가 그 말에 "응"했더니 비로소 안심하는 어투로 "원재도 어른 되면 김치 잘 만들 수 있구나…"라고 합니다.

   
 
▲ 아내가 원재를 찍었습니다. 원재는 끝까지 열심히 아빠와 김치를 만들었습니다. ⓒ2005 강충민
 
7포기의 김치를 담그는 것도 꽤 힘이 부칩니다. 힘들면 하지 말라는 제 말에 원재는 "괜찮아"라고 하며 끝까지 손에서 배추를 놓지 않았습니다.

미리 준비한 플라스틱 통에 담근 김치를 차곡차곡 넣으니 네 통이나 됩니다. 한동안 김치걱정은 하지 않아도 된다고 생각하니 마치 부자가 된 것 같습니다. 원재는 자신이 담근 김치를 보더니 뿌듯해 하면서 이제 김치를 많이 먹겠다고 합니다.

   
 
▲ 완성된 김치입니다. 네통이나 되니 정말 부자가 된 것 같습니다. 무엇보다 원재가 참 뿌듯해 했습니다. ⓒ2005 강충민
 
저는 정리를 다 하고 동생에게 전화했습니다. 동생도 이제 막 김치 담그기를 끝냈다고 합니다. 그러면서 잘 담갔다고 말합니다. 목소리가 참 들떠 있었습니다. 동생과 저 그리고 아들 원재 이렇게 세 남자는 김치 담그기를 끝냈습니다.

그리고 서로의 김치를 아주 조금 나눠 맛만 보기로 했습니다. 제가 출근하면서 김치를 밀폐용기에 넣는데 아내가 한 마디 합니다.

"아예 바구니에 들고 가지? 재미있겠다. 세 남자와 김치바구니…."

우리 부부 출근을 하다 말고 배꼽을 잡고 웃었습니다. 어쨌든 이번 김치는 짜지 않아서 아내가 참 좋아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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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가 직접 운영하는 제주관광안내사이트 강충민의 맛깔스런 제주여행 www.jeju1004.com 에도 올린 글입니다. 제가 올린 글이 어려운시대에 조금이라도 따듯함을 느낄 수 있는 기회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오마이뉴스’에도 실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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