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길현 칼럼] 김태환과 우근민의 차이

 오늘(30일)과 내일(1일) 사이에 제주도정 책임자가 바뀐다. 지난 6년 동안 제주도정을 이끌어 온 김태환 지사가 퇴장하고, 6년의 휴지를 넘어 다시 우근민이 지사를 맡아 향후 4년간 제주를 이끌어 가게 된다.

두 분 다 인간이기에 장점도 있고 단점도 있을 터이지만, 어떻든 둘 다 도정을 누구보다도 다 잘 알고 있고 또 오랜 기간 행정 책임자로서 경륜을 갖춘 분들인지라 제주도정에서의 큰 일탈이나 급격한 파탄은 없으리라고 믿어 의심치 않았고 또 앞으로의 4년도 그러하리라 기대해마지 않는다. 

  제주도정의 상위 영역인 한국의 중앙정치는 1987년 민주화 이후 이른바 ‘87년체제’라고 불리는 보수양당의 헤게모니 하에서 운용되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지난 6년도 그렇고 앞으로의 4년도 각자의 무소속 표방에도 불구하고 김태환-우근민 도정 모두 보수 양당체제의 틀 안에서 제주도정을 운용해 왔고 앞으로도 그러리라 보아 무방하다. 더욱이 신자유주의적 흐름의 세계경제가 전반적인 어려움에 처해 있다고는 하지만 아직 새로운 대안적 모델이 나타나지 않고 있는 현 시점에서는, 제주도정도 여전히 경제 살리기에 주력하는 일반적 대한민국 정부와 국민들의 여망이나 정책 방향으로부터 크게 벗어나지 않을 전망이다.

  그러나 여전히 김태환과 우근민의 개성적 차이만큼이나 그리고 친 한나라당과 친 민주당 성향의 차이 또는 제주도의회 지배구조의 변화를 포함하여 2006년과 2010년 지방선거를 통해서 나타난 제주도민의 표심 이동을 고려하지 않을 수 없는 정치적 환경이 각각 다르다는 이유에서, 김태환 도정과 우근민 도정의 국면적-행위자적 차이는 불가피하다. 이 점은 사실상 본질에 있어서는 김태환 도정과 우근민 도정의 대결이라고 볼 수 있는 2010년 지방선거전에서 불꽃 튀게 경합과 대치를 보여 왔다.

  피 말리는 격전 속에서 치러진 2010년 제주지방선거는 우근민의 승리로 나타났다. 그 표 차이가 2,252표에 불과함에도 불구하고, 승자가 독식이 가능한 게 대통령제 선거의 동학이다. 여기서 2천여표의 차이가 갖는 의미가 마치 제주도민의 반은 우근민을 반대하는 것으로 읽혀져서는 안 된다. 왜냐하면 투표를 할 때 적극적 지지와 반대도 있지만 망설이다가 지지와 반대를 표하는 경우도 있을 뿐만 아니라 또 선거가 끝나면 자신의 지지와 반대를 잊고 새로이 지지와 반대 의사를 갖는 경우도 많기 때문이다.

  다만 우근민 도정의 미래에 대한 기대에서 회의적 입장을 취하는 도민들이 적지 않다는 점에서, 향후 우근민 도정은 바로 이와 같은 우려를 어떻게 해소해 나갈 것인가의 ‘민주적 반응성’에 더 많은 관심을 기울일 필요는 있다. 왜냐하면 어느 책임자든 유권자의 희망과 기대 또는 우려와 의구심을 소홀히 하면 금방 기존의 지지는 썰물처럼 사라지고 지난날의 반대는 더욱 공고화되면서, 책임자의 민주적 정당성은 하루아침에 사라져 버리는 게 냉혹한 정치세계의 현실이기 때문이다. 바로 이 점에서 우근민 도정의 미래는 ‘세계로 가는 제주’ 구호 못지않게 혹은 그 보다 더 중요하게는 도민들이 일상에서 희망과 기대를 갖고 도정을 바라보도록 ‘도민을 향한 도정’의 민주성 살리기에 혼신을 기울여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다. 

  필자처럼 효율성보다 민주성을 더 중시여기는 입장에서는, 지난 김태환 도정은 풀뿌리 도민의 소박한 바람보다는 역사 평가에 대한 신념에 더 치우쳤던 게 아닌가 하는 인상을 많이 받았다. 대표적으로 시-군 자치를 없애는 형태의 특별자치도는 신자유주의적 논리의 효율성을 그대로 반영한 것이었다. 강정마을 주민들이 그렇게 민주적 절치를 통해 해군기지 선정을 해 달라고 외치건만 이를 무시하고 별 설득력 없는 여론조사로 이를 밀어붙이는 김태환 도정의 행태는 민선도정과는 거리가 있어 보였다. 물론 김태환 도정 역시 ‘영혼을 가진 공무원’으로서 나름대로의 역사 평가에 대한 소신에 기초하여 지난 6년을 열심히 일 해 왔다는 데에 이의를 제기하고 싶지는 않다. 그러나 지방자치의 핵심이라고 하는 생활정치의 민주성에 비추어 볼 때, 김태환 도정의 도민무시는 항상 논란의 대상이었다는 것은 본인도 인정하는 바이다.

  그렇다면 우근민 도정의 출발에서 무엇에 초점을 맞추어야 할 것인지는 분명해 보인다. 그것은 적어도 도민을 위해서 부지런히 무엇인가를 하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는 것이다. 도민의 의사를 표출할 수 있는 소통과 참여의 기회를 제공하지 않고서 도정이 효율과 역사 평가에만 매달리는 것으로는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도민을 잘 살게 하는 결과 못지않게 신나게 살도록 하는 과정도 중요하다는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지사의 혹은 도정의 마음 비우기가 요구된다. 편견과 선입관만이 아니라 때로는 소신과 자존심까지도 버리는 무소유의 비움이야말로 오늘날 정치와 도정에서 요구되는 덕목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다.

  김태환 지사는 ‘자유인 김태환’으로 돌아가서 환경지킴이와 장애우돌보기를 통해 희망매신저로 뚜벅뚜벅 제주사랑 실천에 힘쓰겠다고 한다. 그렇다. 김태환에게 아름다운 퇴장은 없는 게 맞다. 누구도 굳이 퇴장할 것을 요구하지도 않는다. 오히려 전직 지사로서 제주에 대한 AS(After Service)를 잘 하는 게 더 유용하다. 그래서 누구든 김태환을 찾아 소주 기울이면서 그의 말대로 지난 도정 운용에서 지었던 마음의 빚을 갚도록 하는 게 더 전직 지사로서 유쾌한 삶이다. 필자도 강정해군기지 반대로 김태환 도정을 밉게 생각해 왔던 지난날이 김태환 개인이 아니라 제주를 위한 것이었음을 소주 기울이면서 삼켜버리고 싶기도 하다.

  그렇다고 김태환 도정에 이은 우근민 도정에게도 너무 많은 기대를 걸지는 말아야 하겠다. 기대가 많으면 실망만 크게 될 뿐이기도 하지만, 어느 특정 지사의 취임으로 세상이 마치 천지개벽할 어떤 변혁이나 성과를 낼 수도 없는 것이고, 또 그러한 급격한 성과라는 게 꼭 좋은 것만도 아닐 게다. 그냥 다시는 강정마을 주민들처럼 긴 세월 아픔과 억울함에 지치도록 하지만 않아도, 그렇게 도민의 아픔과 슬픔을 줄이는 것만 잘 해도 충분히 훌륭한 리더십이고 칭찬받을 만한 도정일 게다. 그래서일까 크고 글로벌하고 위대함보다는 ‘작은 것이 아름다움’이 제주도정의 리더십에는 더 어울려 보인다.

 우근민 도정의 출범을 축하하고 또 기대도 적지 않다. 그것은 우근민 도정 역시 보수적이지만 친 민주당 수준의 개혁성에 기대를 걸기 때문이다. 더욱이 새로이 출범하는 우근민 도정의 앞날이 밝기를 기대하지 않을 수 없는 건, 그래야 도민이 행복할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여전히 우근민 도정이 내거는 캐치프레이즈로서 ‘세계인이 사랑하는 국제자유도시’는 너무 커 보인다. ‘세계가 찾는 제주, 세계로 가는 제주’로 족할 것을. 이제 막 출범하는 우 도정에 대해 시작에서부터 딴지를 거는 것이 불편하기도 하지만, 국제자유도시의 비전에 너무 매몰된 듯한 인상의 도정 방향을 보면서, 여전히 기존의 신자유주의적 개발 논리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도정의 밑그림에 대해 한 마디 하지 않을 수가 없다.

  해서 여전히 ‘세계인이 사랑하는 국제자유도시’ 보다는 ‘제주도민이 아끼는 국제자유도시’가 더 좋아 보이고, 또 ‘제주도민이 긍지를 갖고 자랑하고 싶은 생태-우애-평화도시’가 더 좋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다. 국제자유도시의 거창한 꿈과 비전보다는 인구 55만의 제주도민이 일상에서 행복하고, 신나게 살고, 이웃과 함께 나누면서 살아가는 평화공동체가 더 제주의 브랜드이자 구호로서 더 선호하고 싶은 건 유독 필자의 내향성 때문일까.

  너무 제주에 편향된 구호가 싫고 또 글로벌 시대에 ‘세계’가 들어가야 한다면, 혹 ‘세계와 함께 나누는 국제자유도시’는 어떤가. 밖으로부터의 칭찬과 부러움, 선호를 찾아 나서기 보다는 밖(이웃)과 함께 하는 국제자유도시가 더 매력적이지 않을까. 물론 세계로부터 사랑을 받으려면 폼만 잡아서는 안 되고 제주도가 나름대로 애를 써야 할 것이기에, 제주국제자유도시가 제주도민을 위한 것에 머물러서는 안 될 것임은 지명하다. 이 지점에서 제주의 미래 비전이 국제자유도시로는 부족하고 생태와 평화가 함께 하는 생태평화의 섬 비전이 절대 요구된다. 제주 내의 생태와 우애 그리고 제주도 밖으로의 이웃사랑이 없이 ‘세계가 사랑하는 국제자유도시’는 너무 자기밖에 모르는 제주만의 나 홀로 구호로 그칠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그래서 혹 우근민 도정이 김태환 도정과 다른 국제자유도시를 찾아 나선다고 한다면, 그것은 ‘세계로 가는 제주’가 가장 어울린다. 세계가 찾고 세계가 사랑하는 전형적인 제주 중심에서 벗어나서, 월드컵 16강에 어울리게 혹은 세계 경제 10여위권 대한민국의 위상에 어울리게 제주가 밖으로 향하는 데서 시작할 것이다. 그 점에서 수출 1조원 목표는 진취적이고 도전적이다. 그러나 여전히 2%가 부족하다. 돈 벌이로서의 제주 상품을 파는 것을 넘어서서 다른 무엇을 세계와 나누어 가지려는 대국적 견지와 주도적 이웃사랑이 요구된다.

▲ 양길현 교수 ⓒ제주의소리
  예를 들면 제주의 상품과 함께 제주의 이웃사랑을 세계로 보내는 것이다. 물건을 팔아서 이익을 남긴 만큼이나 그 이익의 1% 혹은 3%로라도 현지의 이웃사랑에 쓰는 것이다. 도가 나서서 정부와 손잡고 제주수출의 현지화를 추진해 나가는 전향성은 기대하지 않은 효과로서 제주 수출의 브랜드를 높이고 제주의 이미지를 수출하는 것이 될 것이다. 제주 수출이 돈 벌기만이 아닌 우애-봉사-평화로 연결되는 제반 문화-인프라 지원 및 교류협력과 함께 할 때, 비로소 ‘세계가 사랑하는 국제자유도시’가 될 것이라는 생각이다. / 양길현 제주대 윤리교육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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