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길현 칼럼] 도민과 현장을 바라보는 도의원 역할을 기대하며

  2010년 제주지방선거의 괄목할 만한 이변은 도의회에서 나타났다. 평소 필자가 엘리트의 순환을 지지하고 또 그 어떤 권력집단도 주기적으로 바뀌는 게 좋다는 생각을 하고 있기 때문 인지는 모르지만, 제주도의회 구성에서 지난 20년간 한나라당 의원들이 주도해 왔던 데에서 벗어나 이번에는 민주당 의원들이 주도하는 의회를 탄생시킨 제주도민의 변화 의지에 주목하고 싶은 것이다.

  선출직 도의원 29명 중 절반인 14명이 초선이고, 비례대표 포함 36명의 도의원 중 20명이 30-40대라는 건, 제9대 도의회의 패기 넘친 역동성을 기대하기에 부족함이 없어 보인다. 적어도 우근민 도정이 총무처 차관과 관선 2번-민선 2번의 지사직을 수행했었다는 점에서 경륜을 그 강점으로 내세우는 만큼이나, 9대 도의회가 젊음을 바탕으로 하여 노회한 도정을 견제하고 창의적 이슈 파이팅을 해 나가길 바라는 게 그 대표적 기대이다.

  우선 9대 도의회 원구성이 순조롭게 이루어진 점에서도 그 내부적 소통의 원활함과 머리 맞대기의 협상력에 찬사를 보내고자 한다. 경남도의회가 아직도 원구성을 마무리하지 못하고 비한나라당 의원들이 단식까지 한다는 기사를 접하면서 더욱 9대 도의회를 바라보는 흐뭇한 심사를 가눌 수가 없다. 경남도의회의 경우 54명의 의원(교육위원 포함 59명) 가운데 한나라당 38명, 민주노동당 5명, 민주당 3명, 진보신당 2명, 국민참여당 1명, 무소속 5명이다. 문제는 경남도의회가 한나라당 의원들만 참석한 가운데 지난 7월 5일 의장과 2명의 부의장을 모두 한나라당 의원으로 뽑았는가 하면 오는 9일에는 상임위원회를 열어 7개 위원장도 모두 한나라당으로 채운다는 계획이라서 비한나라당 의원들이 이에 반발하여 단식을 한다고 하니, 밥그릇 싸움으로 시작하는 경남도의회에 대해 눈살을 찌푸릴 수밖에 없다.

  다행히도 제주도의회는 다수의석의 민주당이 부의장 1석과 상임위장 2석을 한나라당에 주고 또 예결특위원장에는 민주노동당의 안동우 의원에게 할애함으로써 깔끔하게 원구성을 마쳤다. 여기에는 민주당의 안창남 원내대표와 오영훈 운영위원장 그리고 장동훈 한나라당 원내대표의 탁월한 협상력이 밑거름으로 작용한 것으로 보고 치하를 하지 않을 수가 없다. 이는 제주도의회가 의회 내에서의 직위를 둘러싼 샅바싸움보다는 향후 제주도정을 견인하고 제주도민의 마음을 헤아리는 도민중심의 의회 역할 강화에 초점을 두고자 하는 것으로 파악하고 싶기에 더더욱 박수를 보내고 싶다.

  또한 9대 의회에서의 또 하나의 이변은 재선의 40대 의원인 문대림 의원이 도의회 의장을 맡았다는 점이다. 문대림 의원이 의장직을 맡게 된 것은 아마도 제8대 제주도의회에서 초선임에도 환경도시위원장을 맡아 노련함과 소신으로 성공적인 의정활동을 하였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또 하나 해군기지 관련 안건 처리 과정에서 강단 있는 모습을 보인 데 대한 도민의 호평도 중요하게 작용하였을 것이다. 어쩌면 문대림 의원의 정치적 비약은 앞으로 도의회 의원들이 주요한 의제나 현안에 대해 어떤 자세로 임해야 하는지를 보여준 하나의 모델이지 않나 하는 생각도 든다.

  어떻든 문대림 의장은 도의회 개회에 맞춰 “변화의 바람을 일으키자는 말은 전혀 새로운 방향으로 나가자는 것은 아니다. 그것은 보다 실용적이고 실무적인 시스템을 갖춰 생산적인 의회, 창의적인 의회로 만들겠다는 것”이라고 말하면서, 소모적인 갈등을 예방하는 의회가 되겠다고 다짐한 바 있다. 이어 문 의장은 “영리병원, 해군기지, 한라산·비양도 케이블카 등을 조기에 종식시키도록 하겠다”면서 “기존의 사회적인 문제에 대해서는 치유를 위한 대안을 제시하고, 예방을 위한 대안도 함께 제시하는 수준 높은 의정상을 구현하겠다”고 말했다.

  좋은 얘기다. 이제 ‘시작이 반’이라는 심정으로 그 성과를 전폭 기대하고 싶다. 적어도 의장직을 맡게 된 순간의 초심을 잃지 않으면서, 그 스스로 다짐한 바와 같이 “의회를 도민과의 소통의 장이 될 수 있도록 항상 열어 두고, 도민의 눈높이에서 늘 같이 호흡하고 공감하도록 한다”면, 그러한 과정에서 저절로 열매가 맺게 되리라 보아 무방할 것이다. 다만 단기간에 너무 많은 성과를 내려는 조급함에서 벗어날 필요가 있고, 또 모든 세상일의 최종 결과는 진인사대천명(盡人事待天命)의 영역에 있는 것으로 여유를 두는 겸허함이 요구된다.

  새로이 출범한 9대 도의원에 대한 기대가 큰 만큼이나 또 한편으로 우려도 적지 않다. 무엇보다도 여전히 친민주당 성향의 우근민 도정과 민주당 주도의 도의회간의 밀착이 지나쳐 도의회의 가장 중요한 기능인 도정 견제가 제대로 되지 않을까의 의구심이 그것이다. 도정과 도의회간의 견제와 균형이라는 고전적 민주주의의 원리가 대통령중심제의 대한민국 하에서 행정이 지배적인 지난날의 도행정을 염두에 둔다면, 그것이 얼마나 가능할 지의 구조적 제약은 결코 적지 않다. 제주도정 스스로 제왕적 도지사의 권한을 분산하기를 기대하는 것은 너무나 순진한 생각이기에, 결국 도의회의 위상과 역할을 강화하는 것은 41명의 도의원들의 합심 밖에 없다. 바로 이 지점에서 41명의 도의원 각자가 도민을 향하고 도민의 마음을 헤아린다면, 부족하나마 골리앗과 같은 도정과의 씨름에서 결코 일방적으로 패하지만은 않을 것이라는 자기 믿음이 요청된다.

  이를 위해서 도의회는 어떤 경우든 민주적 절차를 앞세울 필요가 있다. 내용에서는 의견이 나뉠 수 있다고 하더라도 절차상의 하자에 대해서는 결코 양보를 해서는 안 되는 철칙이 요구된다. 이 점은 대표적으로 강정해군기지에서의 최대 논쟁 가운데 하나가 절차적 하자이며 그래서 그 해법이 꼬이게 되었음을 상기하면 될 것이다. 그리고 도의원 각자 지역주민의 표를 먹고 사는 정치인이라는 긍지를 확고히 할 필요가 있다. 대표적으로 도청에서 조금 보태주는 해외여행 기회나 접대와 같은 와 같은 사탕발림에 대해서는 아예 처음부터 사양할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한다. 도정에 신세를 지지 않아야 도정에 대해 제대로 쓴소리를 할 수 있지 않겠느냐는 것은 초등학생에게 물어 보아도 쉽게 나올 답안이 아니겠는가.

   
  도의원 한사람 한사람이 항차 제주도 국회의원에 도전하고 도지사를 포함하여 혹 시장을 뽑게 되면 기초자치단체장에도 출마를 할 예비 후보자임을 명심할 필요가 있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도의원의 품격이 요구되고 주어진 역할 수행이 필수적이다. 제8대 도의회에서 보여준 그대로 의정포럼과 의원연구모임 등을 통해 제주지역의 현안을 숙지하고 미래 비전을 찾아나서는 가운데 리더십이 성장하고 가꾸어지는 것일 게다. 이 점에서 제9대 의회의 복지안전위(위원장 고충홍)가 현장의 생생한 목소리를 듣고 이를 토대로 정책과 대안을 제시하기 위해 7월 8~9일 이틀간 산남북의 사회복지시설을 방문하는 것은 퍽 반가운 일이다. 결국 도민중심이란 현장중심일 것일 게다. 이렇게 도의원들이 현장에 직접 나가 도민의 의견에 귀 기울이고 도민의 아픔과 슬픔을 어루만지는 가운데서 미래의 밝은 제주가 가능하리라 본다면, 도의원들에게 마냥 어려운 과제를 들이미는 것도 그만큼 정치인으로서의 도의원들에 대한 기대가 크기 때문일 것으로 이해해도 될 것이다. /양길현 제주대 교수(윤리교육과) <제주의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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