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사위원과 정치적 중립의무

공공 기관장이 그 구성원의 부적절한 행위에 대해 ‘유감’이라고 말하기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하물며 제주특별자치도의 사헌부 수장인 감사위원장이 지난 22일 도의회에서 “6·2지방선거 당시 감사위원들의 선거개입에 대하여 유감을 표명했다“라고 시인하면서 공개적으로 감사위원 전원 사퇴에 대해 심사숙고하겠다고 말하기란 극히 어려운 일일 것이다.

‘제주특별자치도 설치 및 국제자유도시 조성에 관한 법률’에 의하여 설치된 감사위원회는 7명의 위원으로 구성된 합의제 행정기관으로 그 수장인 감사위원장을 제외한 나머지 6명의 감사위원은 공무원이 아니다(동법 제70조). 한편 ‘선거관리위원회법’에서는 선거관리위원 중 상근이 아닌 명예직 선거관리위원은 정치에 관여할 수 없도록 명문화하고 있다.

모두가 직업공무원이 아니지만 명예직 선거관리위원과 달리, 비상근 감사위원들은 각종 선거 등의 정치에 개입 또는 관여할 수 있는지 여부가 지방언론의 이슈로 떠오르고 있다.

선거에서의 공무원의 정치적 중립의무는 공무원의 지위를 규정하는 헌법 제7조 제1항, 자유선거원칙을 규정하는 헌법 제41조 제1항 및 제67조 제1항 및 정당의 기회균등을 보장하는 헌법 제116조 제1항으로부터 나오는 헌법적 요청이다(헌법재판소 2004. 5. 14. 결정 2004헌나1호 참조). 공직선거법은 제9조에서 "공무원 기타 정치적 중립을 지켜야 하는 자는 선거에 대한 부당한 영향력의 행사 기타 선거결과에 영향을 미치는 행위를 하여서는 아니 된다."고 하여 '선거에서의 공무원의 중립의무'를 규정하고 있다.
 
여기서의 공무원이란 원칙적으로 국가와 지방자치단체의 모든 공무원 즉, 좁은 의미의 직업공무원은 물론이고, 정무직 공무원(예컨대, 대통령, 국무총리, 국무위원, 도지사, 시장, 군수, 구청장 등 지방자치단체의 장)을 포함한다.

비록 비상근 감사위원은 정무직 공무원에 포함되지 않지만, 제주특별자치도 소속 공무원들의 정치적 중립의무 위반의 점을 수시로 감찰하고 자치업무를 감사하는 감사위원회의 기능과 성격에 비추어 보건대, 감사위원들의 정치적 중립성은 ‘제주특별자치도 설치 및 국제자유도시 조성에 관한 법률’에 명시되지 않았을 뿐, 묵시적으로 내재되었다고 볼 수 있다.

직업공무원들의 정치적 중립의무 위반을 감시하는 심판자로서의 감사위원들이 자기가 지지하는 정당이나 후보자의 당선을 위하여 같이 보조를 맞추고 있는 일부 직업공무원들의 선거개입을 감시, 탄핵한다는 것은 상식적으로 기대하기 어렵다. 오히려 선거관여 공무원의 비리를 은폐하거나 두둔하는 것이 현실의 법 감정이라 할 수 있다.

하지만 현행 법률에는 비상근 감사위원들의 정치적 중립의무 위반행위에 대하여 단죄할 수 있는 처벌조항이 없다. 그렇지만 도덕적 비난으로부터 자유로울 수는 없다고 본다.

2001년 미국의 법정에서 일어난 제임스 벌저와 월리엄 벌저 형제사건의 비유를 통해 사회적 합의에 의해 도출된 보편적이지 않고 특수한 의무를 부담해야 하는 사회지도층이 있다는 점을 강조하고 싶다.

형 제임스 벌저는 은행절도죄의 전과 이외에 살인, 마약거래 등을 총괄하는 조폭의 우두머리가 되어 연방수사국의 10대 지명수배자의 명단에 오른 나쁜 사람이다. 반면에 동생 윌리엄 벌저는 메사추세츠 주의 상원의장과 대학총장을 역임한 존경받는 어른이다.

월리엄 벌저가 도피중인 형과 통화를 한 사실을 안 연방수사국에서 그를 법정의 증언대에 세워 형의 은신처를 캐물었지만 “형에게 피해가 간다면 누구에게도 협조하고 싶지 않은 게 솔직한 심정입니다.”라고 답변하여 형의 밀고를 피할 수 있었다.

▲ 김승석 변호사
이에 대하여 그 지역 언론에서는 “그는 올바른 규범을 선택하기보다는 가족의 수호를 선택했다”라고 논박했다고 전해진다. 끝내 형을 수색하는데 협조하지 않았다는 여론의 뭇매를 얻어맞고 윌리엄 벌저는 수사방해의 혐의를 피할 수는 있었으나 2003년 대학총장직을 사퇴하였다.

과연, 감사위원들이 도민들에게 어떤 의무를 지고 있는지를 그들 스스로 알아차리고 처신할 때가 되었다고 본다.   /김승석 변호사 (제주공동체발전포럼 수석대표) <제주의소리>

<제주의 소리  / 저작권자ⓒ제주의소리. 무단전재_재배포 금지>

저작권자 © 제주의소리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