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용진의 제주음식이야기] 일년에 한번 약으로 먹는 음식 - 백숙

서양에선 치킨수프, 한국선 백숙

폭염이 쏟아지는 여름이 되면 한국 사람이라면 누구나 한 그릇쯤은 찾아 먹음직한 음식들이 있다. 이른바 더위를 이겨내기 위한 여름 보양식이라 하는 음식들인데 그 가운데서도 일반적으로 가장 많은 이들이 선택하는 보양식이 삼계탕일 것이다.

▲ 마당에 놓아기른 닭은 촉촉하고 쫄깃한 식감을 오래 유지하는데 푹 삶아서 살이 쉽게 발라진다. ⓒ양용진

  삼계탕(蔘鷄湯)은 그 기원이 밝혀져 있지 않다. 다만 오랜 옛날부터 우리 조상들이 여름에 즐겼던 백숙, 혹은 영계 백숙과 비교하여 단지 인삼의 사용여부의 차이만 있을 뿐이어서 같은 맥락의 음식임을 짐작해 볼 수 있다.

또한 백숙의 경우는 간혹 조선시대의 기록으로 남아있지만 삼계탕의 경우는 그 기록을 찾아볼 수가 없는 점과 인삼이라는 약재 또한 나라에서 관리 할 만큼 서민들이 마음대로 활용하지 못했던 점을 감안하면 삼계탕은 그다지 역사가 길지 못하다는 것을 짐작하게 한다.  그러므로 삼계탕과 백숙을 같은 범주의 음식으로 다루어도 무방하다는 것이 필자의 생각이다.

  그렇다면 우리의 조상 때부터 특히 여름에 닭을 고아 먹어온 이유는 무엇일까? 

  여름이 되면 땀을 많이 흘리게 되고 체력소모가 많아지며 체온을 낮추기 위해 혈액이 피부 쪽으로 몰리게 되어 뱃속이 차가운 기운이 많아지며 찬 음식으로 인한 배탈이 잦아진다. 그래서 우리의 몸은 양기가 충만한 음식, 즉 따뜻한 성질의 음식을 원하게 되는데 백숙 혹은 삼계탕이 성질이 따뜻한 대표적인 음식이다. 또한 우리나라는 물론이고 서양의 민간요법에서도 오한과 발열을 동반한 감기몸살에는 따뜻한 치킨스프를 권하고 있어 그 성질을 잘 활용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날개 먹으면 바람 핀다"…근거 있는 농담

실제로 동의보감(東醫寶鑑)에는 닭이 화기를 보해준다고 적고 있으며 현대 영양학에서도 닭고기는 육질을 구성하는 섬유가 가늘고 연하며 지방질이 근육 속에 섞여 있지 않기 때문에 맛이 담백하고 소화흡수가 잘 된다고 알려져 있다. 또한 닭고기는 메치오닌을 비롯한 필수 아미노산이 많아 새살을 돋게 하는 효과가 있고 많은 사람들이 튀김으로 좋아하는 날개 부위에는 뮤신 성분이 있어 성장을 촉진하고 성기능과 운동 기능을 증진시키며 단백질의 흡수력을 높여 주기 때문에 흔히들 날개를 먹으면 바람을 핀다는 근거 있는 농담을 하곤 한다.

▲ 자유롭게 풀어놓고 기른 닭은 그 맛이 남다르다. ⓒ양용진

  그리고 백숙을 만들 때 작은 닭을 고아 영계백숙이라고 하며 더 좋은 음식인 것처럼 말하는 경우가 있고 일반적인 삼계탕도 어른 손바닥 크기를 넘지 않는 작은 닭을 사용하는 것이 일반화 되어 있는데 마치 어린 닭인 영계가 영양학적으로 보신 효과가 좋은 것처럼 말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이는 잘못된 것이라 하겠다.

  영계를 고집하는 이유는 확실하지 않지만 영계라는 명칭자체의 유래를 보면 과거로부터 산란경험이 없는 어린 닭을 연계(僆鷄: 병아리 티가 있는 닭)라 부르다가 살이 연하고 부드럽다는 의미의 '연계(軟鷄)'로 바뀌었다가 발음 나는 대로 표기하면서 영어의 어리다는 의미의 Young이라는 단어와 동음이라는 이유로 마치 합성어처럼 불리어지게 된 것인데 이 영계를 과거 조상들은 약닭이라 부르며 부드러운 육질을 선호했던 것으로 알려져 왔다. 특히 양반가나 궁중에서는 영계를 이용하여 백숙을 만들었다고 전해지며 그 맛을 계승하기위해서 영계, 특히 한 달이 채 되지 않은 웅추라는 닭을 쓴다고 전해진다.

또한 삼계탕의 경우에는 1인분의 음식으로 조리되면서 대부분 뚝배기 모양의 탕 용기에 들어가는 크기의 닭을 선택해야 했고 그러자니 작은 크기의 영계를 선택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더 큰 이유는 경제성의 이유를 우선 생각해 보는 것이 타당할 것이다. 어차피 산란용 닭이 아닌 바에야 오랜 시간 사육할 필요가 없으며 또한 필요이상으로 자라기 전에 삼계탕용 뚝배기에 딱 알맞은 사이즈로 자라는 대로 이를 가공하여 삼계탕용으로 출하하는 것이 경제적으로도 타당한 것이다.

'영계백숙'에 외국인들 신기한 시선

  이렇게 작은 닭을 1인분씩 조리해 먹는 음식은 전세계에서 우리나라만이 유일하다고 하니 이 또한 외국인들의 눈으로 볼 때는 신기한 음식문화로 여겨진다고 한다.  실제로 필자의 모친이 십여년 전 일본의 한지역의 초청으로 일본 현지에서 삼계탕을 실연한 적이 있는데 문제는 작은 닭이 유통되지 않아서 관계자들과 함께 양계장을 찾아가서 어린 닭을 골라서 사용했는데 닭이 다 자라기전에 조리용으로 선택한다는 사실에 매우 신기한 시선을 보냈다고 한다.

▲ 닭을 삶아낸 국물에 닭뼈를 다시 넣고 끓여낸 닭 죽은 대미를 장식한다. ⓒ양용진

중국에서도 작은 닭은 유통되지 않고 특히 중국인들은 닭 보다는 오리를 선호하는 편이라 일반적으로 닭고기를 일년중 몇 번 접할 기회가 없다고 한다. 유럽이나 미주의 경우도 닭은 다자란 상태로 부위별로 선별 판매하는 것이 일반적이라 한다. 그래서인지 외국인 관광객들은 반드시 먹어봐야하는 한국음식으로 삼계탕을 손꼽는데 그 이유를 물어보면 인삼 한뿌리가 통으로 들어 있어 건강함을 느낄 수 있고 특히 한 마리를 혼자서 먹는다는 점이 극진한 대접을 받는 느낌이라고 얘기한다.

  그러나 일반적인 백숙은 서민들의 보양식으로 작은 닭을 사용하지도 않았고 특히 요즘처럼 초,중,말복 찾아가면서 닭을 먹지도 못했다. 서민들의 여름 백숙은 봄에 병아리를 사다가 마당에 풀어놓아 기르다가 음력 6월 20일, 중복과 말복의 중간이 되는 날에 만들어 먹는 풍습이 있었는데 타지역에서는 이런 풍습이 많이 사라진 반면 제주도에서도 최근 까지도 이날을 ‘닭 잡아먹는 날’이라 하여 집집마다 백숙을 만들어먹었다.

제주서만 볼 수 있는 '닭 잡아먹는 날'

그러니까 병아리를 최소한 4~5개월을 키워서 잡아먹었으니 영계백숙이 될 수가 없는 것이 자명한 일이고 보통의 영계가 3~400g 정도가 되지 않는데 반해 6월까지 기른 닭은 1kg을 넘기는 것이 당연한 일이다. 그리고 여유가 있는 집은 병아리를 여유있게 사다가 잘 기르면 넉넉하게 삶아 한여름의 호사를 누릴 수 있었으나 사실 어린 병아리들은 주변 가축의 습격이나 스트레스 등 의문사(?)를 당하는 경우가 더러 있어 가족 수 만큼 닭을 장만하진 못한 것이 일반적이었다. 그래서 우리네 할머니, 어머니는 고기를 당신 손으로 발라주고 뼈를 모아 녹두에 그 귀한 쌀을 한두줌 섞어 닭죽을 끓여 한 이틀 그 또한 약이려니 여기고 식구들을 먹였는데 한여름 땀을 흘리며 먹는 녹두닭죽의 맛 또한 별미였다.

  또한 마당에서 자유롭게 자란 닭은 육질이 쫄깃하여 고기맛이 각별하기 때문에 영계의 맛과는 또 다른 별미였음에 틀림없겠다. 그래서 호사가들은 기왕이면 비싼 돈을 치르고서라도 토종닭을 선호하는 것인데 그러나 사실상 전통적인 토종닭의 유전자는 이미 사라진지 오래되었다고 한다. 다만 일반 닭들도 풀어놓고 기르면 양계장의 우리에 갇힌 닭보다 운동량이 많아져서 근육량이 증가하고 그래서 고기가 더 찰지기 때문에 쫄깃한 식감이 많아지는 것이다.

특히 다리살과 날개, 가슴살 등 일반적인 닭의 그것들과 확연히 다른 각각의 독특한 맛은 글로 표현이 안 되는데 동네마다 넘쳐나는 치킨 집들 덕택에 예전보다 닭의 소비가 많아져서 대량생산, 대량 유통이 가능해 지고 닭고기는 저렴하게 먹을 수 있는 고기의 대명사가 되어있는 요즘 오히려 풀어놓고 기른 토종닭의 자유스런 맛이 더 그리운 것은 풍요속의 빈곤을 느끼는 현대 도시인들의 생활과 닮아 있다는 생각이 스친다. 

  고기가 귀했던 시절 반년 뒤의 더위에 대비하여 이른 봄부터 병아리를 키우던 우리 선조들의 알뜰함과 먹을거리를 약으로 여겨 정성으로 준비하는 그 마음들이 편리함과 경제논리에 지배받는 오늘날의 음식들과는 다른 것은 당연 할 것인데 그래서 더 예전 그 맛이 그리울 뿐이다. <제주의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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