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여성 문화유적100] (30) 마을을 수호하라 - 시흥리 방사탑

 『제주여성 문화유적 100』은 제주여성과 그들의 삶이 젖어있는 문화적 발자취를 엮은 이야기로, 2009년말 ‘제주발전연구원’에서 펴냈습니다. 『제주여성 문화유적 100』은 2008년에 이미 발간된 『제주여성 문화유적』을 통해 미리 전개된 전수조사를 바탕으로 필진들이 수차례 발품을 팔며 마을 어르신들의 이야기를 담아낸 노력이 깃들어 있습니다. 오늘 우리 제주가 있도록 한 ‘우리 어머니’의 이야기들이 담겨져 있습니다. <제주의소리>는 제주발전연구원과 필진들의 협조로 『제주여성 문화유적 100』을 인터넷 연재합니다. 제주발전연구원과 필진들에게 감사의 뜻을 전합니다. / 제주의소리

   

시흥리 바닷가에는 방사탑이 서 있는데 탑의 꼭대기에는 돌로 조각한 석상이 놓여 있다. 석상의 명칭은 ‘영등하르방’으로 형태는 제주시의 돌하르방과 닮았다. 크기는 훨씬 작다.

영등하르방은 바다를 향해서 두 눈을 부릅뜨고 있다. 이 마을과 어부들을 지키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일제강점기, 미신이라 하여 헐리는 수난을 당하였다. 해방이 되고 나서 마을사람들이 원하여 그 자리에 다시 복원하였다.

방사탑은 마을에 사악한 기운이 침범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서 쌓은 돌탑으로 마을의 아이에서 노인까지 모두가 참여하여 만들었다. 제주도 일원에 걸쳐 쌓아졌던 방사탑의 명칭은 마을마다 조금씩 다른데 답, 거욱대, 거왁, 답단이, 답대 등으로도 불린다.

탑의 가장 위에는 새(鳥) 형태의 자연석, 사람 얼굴 형태의 자연석, 사람의 얼굴을 조각한 돌, 나무로 만든 새의 형상 등이 놓여 있는데 마을마다 조금씩 그 형상을 달리한다. 제주사람들은 풍수지리적으로 마을에 허술한 방향이 있으면 그곳으로 사악한 기운이 침범하여 젊은 생명을 앗아가거나 마을에 재앙이 닥친다고 믿었다. 그에 대한 예방책으로 방사탑을 세우는 일은 마을에서 합의가 이뤄진 후 날을 정해 쌓았다.

탑을 쌓기로 정하면 마을사람들은 남녀노소 한 사람도 빠짐없이 탑을 세울 장소에 돌멩이를 가져다 놓는다. 아무리 어린 아이일지라도 작은 돌멩이 하나라도 보태도록 한다. 마을에서 정한 날, 온 마을이 다른 일을 모두 쉬고 모여서 탑을 쌓는 것을 거들고 여성들과 어린아이들도 함께 참여한다.

맨 처음 하는 일은 땅을 파서 솥과 밥주걱을 파묻고 나서 그 위에 흙을 덮는다. 그 위에 최초의 돌을 누가 놓느냐가 가장 중요했다. 허한 방위이기 때문에 자칫하면 그곳에서 비치는 살(煞)을 맞아서 죽을 수도 있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가장 나이를 먹은 노인이 자청해 나서서 그 역할을 맡았다. 이제 살만큼 살았으니 자기가 할 일이라며 여러 사람이 두려워하는 일을 큰 어른의 마음으로 맡고 나섰다.

이렇게 방사탑은 단순하게 돌을 쌓아놓은 돌무더기가 아니라 마을 사람들의 간절한 염원과 생존의 의지가 담긴 탑이다. 외부에서 침입하여 마을의 평화와 안녕과 질서를 깨려는 사악한 존재에 대한 경고이며 응징의 의지를 천명하는 공동체의 단호한 결의의 상징이다.

1995년 제주도는 방사탑 중 보존상태가 양호하고 의미가 각별한 17기를 골라 민속자료 제8호로 지정하였다. 이 탑들에는 저마다 세워진 사연이 있다.

이 가을, 바닷바람의 손짓을 따라 방사탑과 그에 따른 전설을 찾는 나그네가 되어보는 것도 좋겠다. / 김순이

* 찾아가는 길 : 시흥리 해안도로-시흥해녀의집-바다박물관 오른쪽 50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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