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용진의 제주음식이야기] 여름, 제주 사람들의 로망

물회, 회를 오래 먹고 싶어서 발달한 조리법?

  제주사람들에게 여름에 가장 많이 찾는 음식이 무엇일까 질문을 던지면 누구나 ‘물회’를 꼽는데 주저함이 없다. 이름만 들어도 시원할 것 같은 느낌이 전해져 온다. 더구나 요즘은 타지방 사람들조차 어지간 하면 자리물회를 알고 있을 만큼 물회는 제주의 여름 대표음식으로 확실하게 자리잡았다.

한치물회 아마도 오징어와 흡사한 연체동물들을 통틀어 가장 부드러운 맛이 바로 한치가 아닐까 싶다. 물회에 익숙하지 않은 사람들도 비교적 쉽게 친숙해 질수 있는 음식이다. ⓒ양용진

  "물회"라는 음식의 기원은 확실하지 않다. 강회에 채소를 섞어 회무침을 만들어 먹으면서 그중 일부에 물을 부어 여름철에 좀 더 많은 사람들이 시원하게 나누어 먹기 수월한 조리법으로 자연스럽게 나타난 서민적인 음식일 것이리라 짐작이 간다. 그러니까 물회의 탄생배경을 이렇게 생각해 볼 수 있겠다. 회를 먹고 싶은데 단순한 회는 썰어놓고 몇시간 지나지 않아 상해버릴 우려가 있어 갖은 채소와 함께 된장과 식초에 버무려 먹는 방법으로 조리하였고 이조차도 한 여름철 무더위에 배탈이 나지 않도록 식초를 더 넣어 물회를 만들어 먹었던 것이라는 추리가 가능해 지는 것이다.

  '회'라는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날 생선을 주재료로 하여 부재료인 제철 채소를 듬뿍 섞어서 신맛이 강한 양념을 혼합하게 되는데 전통적인 제주도의 물회는 주재료와 함께 다진마늘, 부추, 풋고추, 깻잎을 썰어 날된장과 식초로 버무린 후 냉수를 부어서 먹는다. 자리돔이나 어랭이처럼 비린맛이 날 염려가 있는 생선류에는 '재피'를 첨가하여 비린내을 제거하는 지혜를 발휘했는데 이 재피는 표준말로 조피나무의 잎을 말하는 것으로 타지방에서는 그 열매를 말려 가루를 내어 산초가루를 만들어 쓰는데 반해 제주사람들은 한여름 생잎을 직접 다져서 바로 양념으로 활용했으니 그 이용방법의 차이가 독특하다 하겠다.

쉰다리에 날된장 빠진 '제주 물회'....서운함 느껴

  또한 식초의 경우는 보리밥을 삭혀서 만든 쉰다리를 재발효시켜서 만든 쉰다리식초를 이용하는데 매우 독특한 맛을 보여준다. 요즘 영호남 일부지방에서 전통적인 방법으로 제조해서 만들어 먹고 있다는 막걸리 식초와 견줄만한 맛이라 하겠다.

▲ 재피 사진은 한여름을 지내며 많이 새어진 모습의 재피. 이보다 여린 재피를 자리물회에 다져서 넣으면 생선 비린내를 잡을수 있고 알싸한 특유의 맛을 낸다. ⓒ양용진

그러나 요즘은 천연 식초인 이 쉰다리 식초를 거의 찾아볼 수 없다. 모두다 공장에서 만든 양조 식초를 이용하는 형편인데 일반적인 식초들이 신맛이 약하고 싱겁다 보니 제주의 일부 식당에서는 빙초산을 이용하고 있는 실정이다.  톡 쏘는 맛이 쉰다리 식초와 흡사하기 때문에 아무 거리낌 없이 사용하고 있는 이 빙초산을 어떤 사람들은 식초의 원료라고 알고 있으나 빙초산은 유기산과 비타민 등이 없는 공업용 화학물질에 불과하다. 즉 빙초산을 사용한 물회는 맛은 그럴싸할지 모르겠으나 맛이 조금 떨어지는 다른 물회와 비교할 때 음식으로서의 가치와 질은 분명히 떨어질 수밖에 없다.

  그리고 여기서 중요한 또 한가지 양념은 바로 된장이다. 제주 된장의 역할과 제주음식에서의 중요도는 예전 거론한 바 있으니 새삼 거론 할 필요는 없겠고 다른 음식들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날 된장을 사용한다는 것이 제주 물회의 가장 큰 특징이라 할 수 있는데 요즘의 제주 물회는 고추장과 고춧가루를 많이 사용하는 이른바 빨간 국물의 물회라서 결코 제주스럽지 못한 것이 사실이다.

이것은 동해안 스타일로서 특히 부산 북쪽에서 포항, 경주 등 경상북도와 강원도 남부 동해안 쪽이 물회를 즐겨먹는 지역이고 그곳을 비롯한 동해안 일대의 물회가 빨간 국물의 원조인 셈이다. 사실 경상북도의 전통음식에서도 이 물회는 빠지지 않고 거론 될 정도로 그 지역 사람들도 물회를 즐긴다. 그리고 그 지역 사람들은 워낙 매운것을 좋아하기 때문에 예로부터 물회를 맵게 만들어 먹었다고 전하는데 제주도의 경우는 고추장과 고춧가루가 워낙 귀하기도 했고 풋고추를 생식으로 많이 먹었기 때문에 별도의 고추장과 고춧가루는 사용하지 않았음이 분명한데 언제부터인가 제주 전통 방식은 많이 사라진 것이 현실이다.

  결국 이렇게 변형된 형태의 물회가 대세를 이루게 된 이유는 제주의 전통적인 양념이 사라져 버린 탓이라는 것이 필자의 생각이다. 공장 된장의 맛이 모두다 거기서 거기인 탓에 무언가 다른 맛을 만들어 내고자 고추장과 고춧가루를 섞어야 했고 쉰다리 식초 맛을 위장하기 위하여 빙초산을 쓰게 되었을 것이라 추정하는 것이 어렵지 않았다.   

제주 대표 물회는 '자리, 한치, 구쟁기' 삼형제

  필자가 발품 팔며 살펴본 바로는 그나마 제주의 물회는 동해안 보다는 된장 사용량이 조금 많은 편인 것으로 보이고 다진마늘과 고추가루사용량이 예전보다 많아진 상황이다. 그리고 물회에 들어가는 채소 또한 과거와 많이 달라져서 요즘 모든 물회집에서 오이, 양파, 당근은 기본이고 부추, 깻잎, 깨소금, 청양고추, 붉은고추 등등 굉장히 다양한 재료를 첨가하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자리물회 제주의 대표 물회로 자리 잡았으나 지금보다는 좀더 토속적인 맛을 지켜나가게 되길 기원한다. ⓒ양용진

  주재료는 여름이 제철인 자리돔과 한치, 구쟁기(소라)가 가장 많이 이용되고 있고 한때 거의 사장되었다가 몇해 전부터 다시 붐이 일고 있는 어랭이물회와 객주리(쥐치)물회가 요즘 인기를 끌고 있다. 또한 과거에는 오히려 거의 해먹지 않았던 흰살생선인 옥돔 물회와 전복 물회가 그 담백함 때문에 일부에서 각광받고 있다고 한다.

  이밖에도 새로운 재료들로 새롭게 시도되는 물회들이 선보이고 있긴 하지만 아직까지 제주도의 대표 물회는 자리물회, 한치물회, 구쟁기물회라 할 수 있겠다.  물회를 처음 경험하거나 비위가 약한 사람들은 뼈채 먹는 자리물회나 어랭이물회 보다는 부드럽게 씹히는 한치물회나 객주리 물회가 더 나을 것이다. 좀 독특한 경험을 원한다면 씹히는 맛이 다양한 구쟁기 물회도 권 할만하다.   

포구 근처 밀집돼 있는 싱싱한 물회 가게들

  물회를 파는 식당은 의외로 많다. 동네마다, 포구마다 시내 곳곳에 향토음식점들은 거의 모두 물회를 판다고 보면 틀림없는데 가능하면 물회 전문점들을 이용하는 것이 좋다. 재료수급면에서 아무래도 신선한 재료공급이 수월하기 때문인데 대체적으로 제주도 전역의 큰 포구를 끼고 있는 지역의 주민들에게 물회 잘하는 집 소개해달라고 부탁하면 대부분 다 권할만한 수준의 집들을 안내해 준다.

  대표물회인 자리물회는 남제주군 모슬포 포구에 있는 H식당이 유명하다. 박정희 대통령이 여러차례 들러서 더 유명해진 집인데 박정희 대통령이 경북출신이다보니 당시로서는 대부분의 외지사람들이 먹지 않았던 물회를 매우 좋아했다는 일화가 있다. 그밖에도 자리돔으로 유명한 서귀포시 보목리 포구, 공천포 등 바다가 보이는 포구의 어지간한 식당들은 모두 권할 만하고 한치 물회의 경우에도 제주시 서부두 수협 공판장 옆의 S식당이나 또 다른 S식당 등 포구 근처에 밀집되어 있다. 

이밖에도 한치로 유명한 곳들도 여러 곳인데 애월항 포구나 고산 자구내 포구, 성산포 등에 한치 배들이 모여들 때쯤엔 장관을 이루기도 한다. 개인적으로 필자는 야간에 집어등을 밝힌 배를 타고나가 직접 낚아 올린 한치를 즉석에서 잡아 초된장에 찍어먹는걸 가장 좋아한다. 특별한 기술 없이도 초보자들도 그 재미에 빠지면 헤어 나오지 못할 정도이다. 제주도 전역에서 여름 한철 한치잡이배를 타고 밤낚시를 직접 경험해보는 것도 좋은 추억이 될 것인데 요즘은 예전만큼 한치 작황이 좋지 않아 안타까울 뿐이다.

▲ 양용진 제주향토음식보존연구원 부원장 ⓒ제주의소리
  제주사람들이야 나름으로 물회를 즐기는 노하우를 많이 알고 있을터이니 문제될 것이 없겠으나 외지사람들이 처음 물회를 경험 할 때는 빙초산의 강한 맛이 싫다면 식초를 따로 달라고 하거나 미리 주문할 때 빙초산 사용 여부를 확인하거나 식초를 약하게 해달라고 부탁해야 하고 얼음을 많이 넣어달라고 하는 것도 요령이다. 그리고 가능하면 날된장과 옛날 식초를 사용하는지 질문을 던져 주었으면 좋겠다. 그런 사람들이 늘어날수록 물회를 파는 식당들이 변화하기 위한 노력을 기울일 테니까 말이다. 그래서 제주의 전통적인 양념이 되살아나서 정말 제주다운 물회의 맛을 제주전역 어느 곳에서나 맛 볼 수 있는 날이 하루빨리 돌아오기를 기대한다면 필자의 욕심이 과한 것일까?  / 양용진 제주향토음식보존연구원 부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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