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해군기지를 둘러싼 또 하나의 생각

  지난 주 강정해군기지 문제를 놓고 ‘급할수록 돌아가자’고 쓴 바 있다. 평소 매사에 급할수록 돌아가자는 격언의 함의를 소중하게 간직한 탓도 있지만, 그렇다고 아무 일도 하지 않고 마냥 시간이 해 주길 기다리자는 것은 결코 아니다. 다만 해군기지처럼 풀기 어려운 사안일수록 조급히 여기지 말자는 것이었다. 시간의 흐름에 기대어 주도면밀하게 대응책을 논의하는 것의 유용성은 누구나 인정하는 바가 아닌가.

  8월 8일 개각에서 김태영 국방부장관은 유임되었다. 천안함 사건 등으로 인해 일반 국민들의 정서에서 볼 때 보면 교체되리라 생각되던 장관이었다. 하지만 이명박 대통령에게는 마음이 든 게 많았는지 여전히 중용되었다. 그러나 필자로서는 아위운 대목이다. 왜냐하면 해군기지 해법을 둘러싼 국방부의 해법에서 새로운 접근이 들어설 여지가 커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우근민 제주도정의 중재도 쉽지 않아 보인다. 다만 지난 6월 지방선거에서 나타난 민심을 무턱대고 부정하기는 어려울 것이라는 점에서 알마간의 기대는 하고 싶다. 김태환 도정과는 다른 접근을 보인다고 우근민 도정에게 국방부가 마냥 무대뽀의 처리만을 요구하지는 않겠지의 기대가 그것이다.

  물론 그러한 기대는 크지 않다. 오히려 4대강 사업을 둘러싸고 충청남도와 경상남도 지사의 재검토 요청에 대해 이를 찬성으로 언론플레이 하는 국토해양부를 보면서, 중앙정부의 과다한 청와대 중심적 사고에 대해 어안이 벙벙할 따름이다. 그만큼 제주해군기지 문제에 대해서도 우근민 도정의 재검토나 신중한 접근에 대해 마의동풍 격일 가능성도 있다. 그래도 4대강 사업에는 정부와 야당 간의 전략적 쟁점 사안이라는 측면도 있는 데 반해, 제주해군기지에는 정부와 제주도민 사이의 쟁점이라는 데서 오히려 정부의 전향적 대응이 가능할 수 여지가 더 크지 않나 하는 기대를 버리기가 어렵다.

  어떻든 국방부장관이 유임된 만큼 그리고 우근민 지사가 후보시절 국방부장관을 만나 해법을 찾겠다고 약속한 만큼, 우근민 지사와 김태영 장관의 대화가 요청된다. 그리고 이를 위해 사전에 보다 낮은 수준의 비공개 물밑 접촉도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김태환 도정과 다른 우근민 도정의 철학을 진솔하게 전할 필요가 있다. 당연히 우근민 지사 스스로가 군 경력을 갖고 있는 만큼 안보 문제와 도민 요구 사이에서의 절묘한 솔로몬 해법을 찾고자 하고 있다는 신뢰를 국방부로부터 얻어내는 게 무엇보다 중요하다. 그리곤 무엇보다도 국방부가 민선지사의 입장을 어느 정도 존중 혹은 양보하는가에 따라 제주도민들에게 보다 수용 가능한 해군기지 해법을 찾아가기가 쉽다는 점도 명확하게 전달할 필요가 있다. 

  유임된 장관인 만큼 사실상 2기 국방부장관으로서 제주해군기지 문제에 대해서도 이제는 매듭을 짓는 게 그 하나의 일이다. 문제는 복잡하게 꼬여 있는 실타래 매듭을 어떻게 풀어나갈 것인지인데, 여기서 요구되는 것은 국방부의 유연성이다. 전행성이다. 해군기지를 꼬이게 만든 당사자의 자기 반성이다. 늦었지만 이제부터라도 지난번과는 달리 제주도정과 도의회의 새로운 접근에 발맞춰 새출발하겠다는 진정성이 바로 매듭을 푸는 열쇠이다. 

` 남북한이 대치해 있고 대통령이 무한책임을 지는 대한민국의 안보 상황에서 보면, 제주해군기지 문제에서 강정마을 주민들은 절대적 약자이다. 청와대, 국방부, 안보우선주의의 사고를 가진 많은 대한민국 국민에게는 강정마을 주민들의 목소리는 잘 이해가 가지 않은 집단이기주의처럼 비춰지기가 다반사이다. 그렇기에 절대적 약자인 강정마을 주민들이 지난 4년 동안 그렇게 큰 강압과 회유에도 굴하지 않고 버티어 온 것은 거의 한편의 영웅적 서사시나 다름없다.

  6월 지방선거를 거쳐 우근민 제주도지사, 문대림 도의회의장, 고창후 서귀포시장 등 강정마을 주민에게 우호적인 정치지형이 마련되었다. 이 모두가 다 강정마을 주민들의 영웅적인 서사시에 감복한 데서 왔다고 보아 무리가 아니다. 이제 남은 건 정부의 유연함이다. 왜 강정마을 주민들이 해군기지를 반대하는 지 그리고 해군기지 해법을 위한 강정마을 주민들이 요구하는 것 또는 양보하는 것이 무엇인지에 귀 기울여야 할 때가 되었다.

  최소한 강정마을 주민들의 양보만큼이나 국방부도 양보할 때가 되었다는 것이다. 상호간의 양보는 기분을 좋게 한다. 양보를 논의하면서 상호간에 신뢰를 다지게 되고, 그 결과 서로가 수용 가능한 해법을 도출해 내는 건 시간 문제일 뿐이다. 그래서 혹 강정마을과 국반부간의 상호 양보의 해법 찾기가 향후 이명박정부에게는 대화로 공공갈등을 해결해 나간 대표적 사례로 자리하게 되는 건 아닌지의 기대를 다시 한 번 갖고 싶다. 

  다만 아직은 무더운 한 여름이다. 더운 열 내다가 될 것도 안 되는 게 아닌가 우려가 컸다. 그래서 더위에는 쉬자. 선풍기 바람마저도 뜨듯한 이 여름에 괜스레 열 올리면서 다투지 말길 바랐다. 급할수록 돌아가자는 격언을 읖조릴 뿐, 푹 쉬면서 곰곰이 지난 시간들을 성찰해 주길 바랐다. 그러나 우리 강정마을 주민들은 이 더운 여름에도 아랑곳 하지 않고, 다시 한 번 영웅적 서사시의 한 대목을 채워 나가고 있다. 바로 그제(9일) 강정마을 주민들이 마을총회를 열어 기존의 강경입장을 조금 누그러트리는 양보안을 내걸었다는 기사를 접하면서, 역시 강정마을 주민들은 다르다라는 감탄을 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이제는 마냥 시간 끌면서 돌아만 가서는 안 될 것이라는 생각. 제주도정과 국방부 모두 강정마을 주민총회에 걸맞는 해법 찾기를 위해 서로 만나 대화를 나누어야 할 것이라는 생각. 특히 국방부는 강정마을의 움직임을 마치 남의 일처럼 처다만 보아서는 안 된다는 생각. 더운 여름이라고 혹은 천안함 사건 처리에 아직도 바쁘고 또 한미합동군사훈련이다 북한의 해안포 발사다 하여 이 여름에 정신이 없다고 하면서 제주해군기지 해법 찾기를 대음(소홀히) 해서는 안 된다는 생각. 당연히 그 까짓 강정마을 주민들이 반대한다고 뭐 어찌 되겠나의 안일함에 빠져서는 더욱 안 된다는 생각들이 꼬리를 문다.

  아직은 강정마을 주민투표에 붙여야 하는 절차가 남아 있지만. 어떻든 ‘제주해군기지와 관련한 강정마을의 제안’은 거의 해법이나 다름 없어 보인다. 제주도에 강정마을을 제외한 제주 전역을 대상으로 입지 타당성을 검토해 달라고 요구하는 것을 국방부가 거부할 이유가 전혀 없어 보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민주적이고 정당한 절차를 거쳤는데도 유치희망 지역이 없을 경우에는 해군기지 건설을 수용하되 해군과 제주도, 의회, 강정마을회가 참여하는 협의체를 구성하자는 것은, 국방부로서는 해군기지 해결을 위해서 강정마을 주민들이 그렇게 요구하지 않아도 제주도에 이렇게 하면 어떠냐고 제안할 그런 사안이기 때문이다.

▲ 양길현 제주대 교수
  필자가 너무 일찍 김칫국부터 마시는 지 모르겠다. 그러나 작년 가을 해군기지 해법 찾기를 위해 제주도와 강정마을 주민, 해군, 도의회, 천주교 평화의 섬 특위가 만나 모종의 허심탄회한 얘기들을 나눈 적이 있기에, 이번의 강정마을의 제안과 국방부의 수용 가능성은 크다고 본다. 물밑 대화를 공식화 해 나가는 과정에서 종국에는 청와대의 통 큰 수용이 가장 중요하며, 그 다음에는 이를 현장에서 진정성을 갖고 유연하게 구현해 나가는 국방부와 제주도정의 맞춤형 행정이 요청된다. 그게 어려운 것이 아닐 것이라고 생각해서 그런지, 8월의 한더위인데도 시원하다. /양길현 제주대 윤리교육과 교수 <제주의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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