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망장포 귀촌 이야기 1] 결혼 후 10여년 만에 시골에 터 잡았습니다

필자 가족은 올 초부터 귀촌을 준비하다가 최근에 서귀포시 남원읍 하례리에 있는 망장포라는 마을로 이사하였습니다. 귀촌을 위해 농가주택을 매입하여 수리를 하던 도중 정부에서 귀촌인들의 정착을 돕기 위해 농가주택 수리비를 지원해주는 제도가 있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정부가 의지를 가지고 하는 사업이고 필자에게도 도움이 되기 때문에, 지원 신청서를 냈습니다.

저희 가정의 귀촌이 이후의 삶에 어떤 결과로 나타날지 장담할 수 없지만, 우리가 귀촌을 실행에 옮기는 과정에서 겪었던 일들, 저희 가족이 사는 마을의 바다, 아이들이 다닐 학교, 이웃들의 사는 이야기 등을 소개하려 합니다.

이어질 기사들이 귀촌을 꿈꾸는 도시인들이 귀촌에 대해 현명한 판단을 내리는데, 그리고 행정이 귀촌 가정을 대했던 태도를 스스로 되돌아보는데, 조금이나마 참고 자료가 되길 바랍니다. - 필자 주

▲ 망장포 서귀포시 남원읍 하례리에 있는 조그만 어항입니다. 이 근처에 포구의 이름에서 따온 망장포라는 마을이 있습니다.  ⓒ 장태욱  망장포

가마 솥 더위가 기승을 부리던 8월 어느 주말, 우리가족을 태운 농업용 트럭은 유유히 제주 시내를 벗어나고 있었다. 평소에는 농사일에나 쓰던 트럭이지만 이날만은 적재함에 이삿짐 보따리를 가득 싣고 있었다. 우리 트럭 뒤에는 가구ㆍ피아노ㆍ냉장고ㆍ세탁기 등 비교적 크고 무거운 짐들을 실은 이사 전문 트럭 두 대가 우리 뒤를 따랐다.

비가 새는 작은집에 새우잠을 잔대도, 고운 님 함께라면 즐거웁지 않더냐

오순도순 속삭이는 밤이 있는 한, 쩨쩨하게 굴지 말고 가슴을 쫙 펴라

내일은 해가 뜬다, 내일은 해가 뜬다

내가 운전하면서 부르는 노래를 트럭 뒤 자석에 앉은 딸과 아들이 신나게 따라 불렀다. '사노라면'은 아빠가 원체 자주 불렀던 노래인지라, 유치원에 다니는 아들도 이젠 가사를 다 왼 모양이다. 노래의 의미를 제대로 알고나 따라하는지 알 수 없지만, 아이들과 함께 노래를 부르는 과정에서 귀촌의 설렘은 한층 더 부풀어 올랐다.

아내와 내가 귀촌에 대해 생각을 나눈 건 지난해부터다. 풀 한 포기 제대로 싹을 틔울 수 없는 콘크리트 환경에서는, 아이들을 위한 것이든 우리 부부를 위한 것이든 더 이상 새로운 희망을 기대할 수 없다는 생각이 머리를 떠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 집 우리가 살 집을 수리하는 모습입니다. 오래된 집이었는데, 목수들의 손을 거치고 나니 만족스러운 집으로 다시 태어났습니다.  ⓒ 장태욱  귀촌

금년 초에 남원읍 하례리 망장포 인근에 있는 농가 주택 한 채를 사들였다. 오래된 집이라 싸게 구입할 수 있어서 좋기도 했거니와, 인근에 있는 바다와 마을 안길에서 집 마당으로 집으로 통하는 긴 '올레'가 더할 나위 없이 마음에 들었다. 그리고 집이 내고향 위미마을과 가까운 곳에 있어서 고향의 사소한 일에 참여할 수가 있을 것 같아 좋기도 했고, 귤농사를 짓는 과수원과도 거리가 그리 멀지 않아 시간을 절약할 수도 있어 좋았다.

이삿짐을 싣고 오는 동안 지난 10여년의 세월이 주마등처럼 스쳐지나갔다. 마음씨 좋은 교수님이 캐나다로 교환교수를 지원해 가면서 비워둔 집에 몸만 들어가 신혼살림을 시작했던 데부터 시작해서 결혼 이후의 삶이란 눈물 나는 에피소드의 연속이었다.

이사도 여러 차례 해봤고, 사업자등록증도 여러 차례 내봤다. 거리에서 많은 '동지'들을 사귀었고, 부조리한 현실에 대해 그들과 '분노'를 교감했다. 생각해보니 아쉬움 없을 만큼 뜨겁게도 살았다. 이제 체내 구석구석까지 과열된 몸을 잠시 냉각시킬 요량으로 우린 바람이 불어오는 곳을 찾아 가는 것이다.

많은 이들이 귀농은 어려운 도전이라고 말했고, 나 역시 그들의 말에 전적으로 동의한다. 전업농으로 생계를 유지하려면 적정한 규모의 농지와, 고소득 작물을 재배할 만한 시설이 있어야한다. 농사에도 자본이 만만치 않게 필요한 것이 현실이다. 비록 몸은 농촌으로 돌아왔고, 귤농사를 짓고 있기는 하지만, 농사만으로 생계를 꾸리기에는 아직 가진 것이 많이 부족하다. 그래서 아내와 난 아마추어 농사를 짓기로 했다. 우리 가족에게 완전한 귀농이란 여전히 미완의 과제로 남아있다.

▲ 망장포 해안 마을에서 바라본 바다 전경입니다. 우린 가열된 몸을 식히기 위해 바람이 부는 이곳을 찾아 왔습니다.  ⓒ 장태욱  망장포

결혼 후 다섯 번째 해보는 이사다. 처음 두 번은 아이를 낳기 전이라 짐이 많지 않아 혼자 농사용 트럭으로 짐을 옮겼다. 그런데 아이 둘이 딸리고 나서는 짐이 이전에 비해 몇 갑절  많아졌다. 이사 가기 일주일 전에 책과 그릇들만 모아 짐 한 트럭을 미리 옮겼는데도, 남은 짐만 세 트럭 분량이다. 삶의 무게가 이삿짐의 규모와 비례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짐을 싣고 옮기고 내리는 데만 다섯 시간이 소요되었다. 더운 날 땀을 뻘뻘 흘리며 짐을 옮기는 트럭 기사님들의 고생이 여간한 게 아니다. 내려놓은 짐을 정리하는데도 앞으로 며칠이 더 걸릴 것이다.

이사 온 첫날밤, 짐을 정리하느라 고단해진 몸이 잠을 청하려는데 밖에서 반가운 소리가 들려왔다. 밤바다의 파도와 마당의 풀벌레들이 연주하는 환상의 전원교향곡이었다. 그러고 보니 참으로 오랫동안 잊고 있었던 소리인데, 옛 동무가 내 이름을 불러준 것처럼 반갑기 그지없었다.

내가 저들이 연주하는 전원교향곡을 감상하는 사이 아내와 아이들은 그 감미로운 연주곡을 자장가 삼아 마루에 널린 짐 보따리의 틈을 비집고 단잠을 자고 있었다.   <제주의소리>

<장태욱 시민기자 / 저작권자ⓒ제주의소리. 무단전재_재배포 금지>

※ 이 기사는 오마이뉴스(http://www.ohmynews.com) 제휴기사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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