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망장포 귀촌 이야기 2] 망장포, 바람과 생명의 노래가 머무는 곳

우리 아이들 망장포 앞 바닷가를 거닐고 있다. 이곳으로 이사오기 전부터 아이들은 바다에 사는 많은 생물들과 친구가 되었다.  ⓒ장태욱

서귀포 동쪽 7km쯤되는 곳에 망장포라는 작고 쓸쓸한 포구가 있다. 부모님이 망장포 입구에서 귤 농사를 짓기 시작한 것은 두 해 전부터다. 고등학교 교사로 재직 중인 당숙 소유의 농원을 임차하면서 비롯된 일인데, 내겐 망장포를 제대로 들여다볼 계기를 마련해준 일이다.

부모님이 귤을 재배하는 농원에서 포구까지의 거리는 300미터 남짓했다. 풍경사진이나 찍을 요량으로 오며가며 포구를 찾다가 결국은 우린 망장포에 취해 버렸다.

망장포에는 오래 전 만들어진 아담한 포구가 옛 모습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다. 포구는 한 칸 형으로 매우 단조롭다. 제주도의 포구 대부분 두 칸이나 세 칸을 두는 것과는 대조적이다. 최근 옛 포구 인근에 새로 현대식 포구가 만들어지기는 했지만 지금 망장포에는 어선 한 척도 남아있지 않다. 갈수록 나빠지는 어업환경이 빚어낸 결과일 것이다.

망장포 안쪽 망장포에는 이제 어선이 한 척도 남아있지 않다. 쓸쓸한 포구를 지키는 것은 포구 주변에 서식하는 다양한 생물들이다.  ⓒ장태욱

비록 배들은 모두 떠나 쓸쓸해진 포구를 계절에 상관없이 즐겨 찾는 이들은 당연 강태공들이다. 그들은 흔해빠진 편의점도 하나 없는 적막한 이 포구에서 삶의 휴식을 찾는다.

겨울에 우리가 이 포구에 왔다가 반갑게 조우한 이들이 있다. 추위를 피해 이곳으로 날아온 하얀 갈매기 떼다. 이들이 이곳을 찾는 것은 날씨가 따뜻하기도 하거니와 인근 바다에 고둥이나 게처럼 새들의 먹잇감이 될 만한 것들이 풍부하기 때문일 것이다. 갈매기들은 우리 아이들과도 다정한 친구가 되었다.

여름이 되면 선인장이 포구 주변에서 노란 꽃망울을 터트리고, 꽃이 지면 붉은 보랏빛 열매를 맺는다. 원산지가 아메리카대륙이라고 하는 선인장이 이 포구에 자리를 잡게 된 그 기구한 사연을 알 길이 없다. 선인장은 그 특유의 자생력을 과시하며 포구 주변을 선점하고 있다. 우리가 선인장 노란 꽃을 직접 감상하게 된 것도 망장포를 알고나서다.

▲ 갈매기 겨울이 되면 떼를 지어 이 포구를 찾는다.  ⓒ장태욱

▲ 선인장 아메리카대륙이 원산지인 선인장이 이 포구 주변에 왕성하게 자생한다.  ⓒ 장태욱

과거 계류장이었던 포구의 안쪽은 높은 절벽이 감싸고 있다. 그리고 소나무·대나무·보리밥나무·까마귀쪽나무·우묵사스레피나무 등 다양한 식물들이 절벽 바위틈에서 사투를 벌이며 오래도록 생명을 지켜나가고 있다. 포구 안쪽은 늘 그늘이 져서 여름에도 차가운 기운이 감돌기 때문에 무더운 여름날에도 더위에 지친 몸을 식힐 수 있다.    

망장포 앞에는 평평한 현무암 대지가 드넓게 분포한다. 이 때문에 과거에는 배들이 쉽게 드나들 수 있었다. 이런 지형적 유리함 때문에 한때는 이 포구에 공출선이 드나들었고, 그런 연유로 예전에는 전세포라는 이름을 얻기도 했다.

지금은 공식적으로 망장포(網場浦)라고 기록하고 있는데, 주민들은 그물을 펼쳤던 포구라고 하여 망장포(望張浦)라고 표기하는 것이 옳다고 말한다. 지형이 판판하기 때문에 고기를 잡는데 낚시보다 그물을 더 많이 사용했을 것이라고 추측할 수 있다.

지금 배들이 드나들지 않는 대지는 고둥·게·말미잘·배말·군부·따개비·거북손·성개·홍합·갯강구 등의 동물들과 모자반·미역·우뭇가사리·파래·매생이·청각 등 해초들에게는 더할 나위 없이 좋은 서식지다. 간조 때는 해안선에서 멀리까지 현무암 대지가 펼쳐지기 때문에, 특별한 장비 없이도 수많은 생물들을 만날 수 있다.

최근 제주의 해안 구석구석에 양식장이 들어서면서 해양오염이 가중되고 있으며, 그로 인해 해양 생물들이 터전을 잃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하지만 망장포 인근에는 다행히 양식장이 들어서지 않아 바다는 아직까지도 건강한 생태계를 유지하고 있다.

▲ 바다 생물들(따개비, 군부, 고둥 등) 망장포에서 수많은 바다 생물들을 만날 수 있다.  ⓒ 장태욱

우리 가족이 이곳으로 거처를 옮기기 이전부터 아이들은 이 현무암 대지 위를 걷는 것을 좋아했다. 물웅덩이 속을 걸어 다니는 고둥, 바위틈에서 얼굴을 빼곡히 내밀면 주변 눈치를 보는 방게, 부지런히 어디론가 걸어 다니는 갯강구, 바위에 붙어서 꿈쩍도 하지 않는 군부, 그 어느 것도 아이들 눈에 신기하지 않은 게 없다. 돌 위에 터를 잡고 사는 이들은 갈매기와 더불어 망장포가 우리 아이들에게 선물해준 소중한 벗들이다.

망장포에는 바람이 머물고, 포구와 바다를 고향삼아 살아가는 다양한 생명의 노래가 있다. 우린 그 바람과 그 노래가 주는 유혹을 끝내 뿌리치지 못하고 이 망장포에 터를 잡았다. 자연과 생명에 대한 원초적 그리움을 가슴에 품고 살아가는 이들은 언제든지 망장포를 찾을 일이다.

*본 기사는 '오마이뉴스' 제휴기사입니다.

<제주의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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