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기극복 유전자'로 요망지게 헤쳐나가야"

우리는 지금 세계화의 개방시대에서 생존경쟁의 갈림길을 눈앞에 두고 선택을 강요당하고 있다. 세계화는 일방통행이 아닌 쌍방통행으로, 우리나라의 시장을 외국인에게 개방하는 동시에 이를 통해 우리국민이 세계시장으로 진출함으로써 경제도약의 기회를 얻을 수 있다.

특히 국토가 협소하고 자원이 부족하며 인구가 적은 우리나라로서는 개방화를 통한 양적・질적 성장을 추구하지 않고서는 선진국으로의 진입이 어렵기 때문에, 1990년대 이후 실물 및 자본시장을 중심으로 지속적인 개방정책을 시행해 오고 있다.

그러나 이같은 개방시대로의 전환은 우리 경제에 긍정적 효과 뿐만 아니라 부정적 영향도 동시에 주게 되는데, 특히 서민경제의 입장에서는 다음의 세가지가 중요한 의미를 지니고 있다.

첫째는, 우리가 경쟁하는 무대가 국내시장에서 세계시장으로 확대된다는 사실이며 둘째는, 그렇기 때문에 세계시장에서 경쟁력을 갖지 못하면 퇴출될 수 밖에 없다는 것이고 셋째는, 부문간・계층간 소득의 양극화가 더욱 심화된다는 점이다.

이것은 대단히 중요한 메시지이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국민생활의 밑바탕으로 생계를 영위하는 일자리를 제공해주며 바로 민생의 상당 부분을 떠안고 있는 중소기업, 자영업, 농촌, 이 세 부문이 경쟁력 열위산업으로 예속하게 되면서 도산의 위기에 처해진다는 사실이다.

이처럼 국민생활의 근저가 되는 이 세 부문이 흔들리고 위축됨으로써 우리 국민들은 갈수록 생활고를 호소하고 불안한 내일을 맞게 되는 것이다. 만약 국민경제의 근저인 서민경제권이 흔들리고 위축되는 상황이 계속된다면 개방화의 긍정적 효과에도 불구하고 우리경제 선진화의 꿈은 결코 이룩하기 어려울 것이다.

이런 세계화의 상황에서 우리 경제가 다른 나라와의 경쟁에서 승리하여 선진경제로 도약하기 위해서는, 경제 전 부문이 한 단계 업그레이드 된 국제경쟁력을 갖추지 않으면 안된다.

현재 세계무대에서 선전하고 있는 대기업 뿐만 아니라 이제는 중소기업과 자영업도 차별화된 국제경쟁력을 갖추지 않으면 안되며, 정부조직과 기업 및 국민 개개인도 국제경쟁에서 이길 수 있는 혁신적 사고방식과 치열한 도전정신 및 철저한 합리주의로 무장해야 한다. 우리가 이처럼 변화하지 못한다면 지구촌의 험악한 생존경쟁에서 나아갈 길을 찾지 못하고 도태되고 말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면 우리 경제 전 부문의 국제경쟁력을 강화하는 방법은 무엇일까?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국가자원을 효율적으로 관리하는 일(effective management of national resources)이다. 국가자원이 효율적으로 재배분되도록 하기 위한 여러 가지 정책적 노력과 숙고가 필요하다.
 
경쟁력 열위부문인 전통적인 중소기업, 자영업 및 농업부문 등에 투입되고 있는 노동력과 자본을 첨단기술산업과 고부가가치서비스산업 등 생산성이 높고 국제경쟁력을 갖춘 부문으로 원활히 흘러가도록 리사이클링시켜야 한다. 이를 위해 우리나라도 선진국에서 볼 수 있는 것처럼 체계적인 전직훈련 등을 통해 부문간 자원순환을 촉진시키는 등 효과적인 자원 재배분(resource reallocation) 시스템을 시급히 구비해야 할 것이다.

선진국의 경우를 보면 경쟁열위 부문에서 실업자가 발생하면 국가가 이들을 교육하여 생산성이 높은 다른 부문으로 재배분하는 시스템이 작동한다. 이러한 과정을 통하여 자영업, 중소기업, 소농업 등의 종사자는 줄어들게 되며, 전직자들은 얼마간의 어려움을 겪게 되겠지만 새로운 직종으로 이동하여 안정된 생활을 영위하게 되는 것이다.

이와 같이 경쟁력 열위부문으로부터 우위부문으로의 생산요소 이동이 계속 촉진되면 제조업은 점점 고생산성 제조업 쪽으로 집중하게 되고, 비제조업의 경우는 고부가가치 지식서비스산업 중심으로 집중하게 된다. 따라서 위와 같은 자원의 선순환이 원활하게 이루어지도록 하는 것이 우리나라 경제의 발전을 위한 핵심과제라 할 수 있다.

그러나 이것은 뼈를 깍는 아픔 없이 하루 아침에 저절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다. 우리 정부와 기업 및 국민 모두가 합심하여 창조적 혁신의 정신으로 과감하게 도전해야 하며, 그 과정에서 부딪치는 고난과 고통을 이겨내야 한다. 만사에 요행이나 바라고 안일하게 주저앉아 있으면 점점 나락의 길로 떨어질 수 밖에 없다.

다음으로 우리가 전력을 다해 추진해야 할 중요한 일은 우리 경제의 활력을 유지하여 경제노화를 방지하는 일이다. 경제노화란 경제가 무기력해지는 것을 말한다. 인구의 고령화와 함께 경제활동인구가 줄어들면서 성장률이 떨어지고 실업률이 높아지며 자산가격이 떨어지게 된다. 또한 사회보장 및 복지를 위한 재정수요가 늘어나면서 정부의 재정적자는 늘어만 간다. 그런 과정에서 국민들의 요구와 불만은 더욱 커지고 정부의 역할은 점점 더 어려워진다.

이같은 경제노화 현상은 유럽의 일부 국가, 심지어는 일본 등 선진국에서도 부분적으로 나타나고 있다. 우리 경제는 아직 노화단계에 들어섰다고 생각되지는 않지만 경제노화를 유발할 수 있는 상당한 위험에 노출되어 있다. 따라서 우리 경제의 위험요소를 잘 관리함으로써 경제노화를 방지하는 데 혼신의 노력을 기울여야 할 것이다.

그러면 제주경제는 어떠한가? 제주도의 경우도 자원의 효율적 재배분 촉진과 경제노화 방지의 중요성은 우리나라 전체 입장과 다를 바 없다고 생각된다. 제주도는 현재 경쟁상대 지역의 약진과 FTA 확대 등 국내외로부터 밀려오는 거센 도전을 극복하고 특별자치도 체제를 성공적으로 추진하여 선진 제주를 건설해야 하는 중차대한 시점에 처해있기 때문이다. 특히 섬이라는 지리적 특수성, 제조업의 취약성, 농림어업과 관광산업의 경쟁심화, 성장률 저하 및 고용 악화 등을 감안할 때 그야말로 자원의 효율적 활용과 경제의 활력지속이 무엇보다 중요한 과제라 아니할 수 없다.

그동안 제주사회는 제주특별자치도와 국제자유도시 건설에 필요한 많은 과제들을 단계적으로 추진하여 오는 등 미래성장기반을 강화하는 데 많은 성과를 보여준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제주경제가 선진화로 나아갈 길은 아직도 요원하고 험준하다고 생각이 된다.

제주경제의 성장을 주도해 온 1차산업과 관광산업이 1990년대 중반 이후 농산물 수입개방과 해외여행 자유화 등으로 경쟁력을 서서히 상실하면서 제주지역의 경제성장률이 상대적으로 저조한 모습을 보여 왔다. 또한 최근에는 농업부문을 중심으로 고용이 감소하는 가운데 서비스업부문의 고용흡수력이 한계를 보이면서 실업률(무급종사자 제외기준)이 타지역에 비해 높은 수준을 나타내고 있다.

더욱이 FTA체결 확대, 제주도에 대한 차별적 혜택 축소, 경쟁도시들의 관광산업 육성정책 및 해외여행 보편화 등으로 국내외 환경이 점점 불리하게 작용하고 있다. 또한 2000년대 이후 우리경제 성장을 주도하고 있는 정보통신산업 등 신성장동력산업의 도내 창업 및 육성도 크게 미흡한 실정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미래 제주를 아시아 최고의 국제자유도시로 만들기 위해서는 참으로 어렵지만 해야 할 일들이 너무나 많다. 주력사업인 관광산업 및 농업부문의 질적 고도화, 새로운 성장동력산업의 육성, 향토제품의 개발과 수출촉진, 각종 지역개발사업의 성공적 추진, 추가적인 제도개선 노력 등이 있다.

이것들은 제주 주민들에게 양질의 일자리를 제공하고 주민들의 삶의 질 향상과 소득증대에 기여하며, 관광객들에게는 쾌적하고 편안한 휴식공간을 제공하는 행복지수 최고의 도시를 건설하기 위한 것이다. 이를 위해 제주 지역사회는 공공 및 민간부문이 일체가 되어 모든 역량과 지혜를 집결해야 할 것이다.

첫째, 지금까지의 외자유치 중심의 지역개발 정책에 더하여 제주기업의 해외진출과 향토상품의 해외수출을 지원하는 데도 정책적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제주의 주요 생산품인 농수축산물의 경우 생산량과 가격이 날씨와 수급상황에 영향을 많이 받는다는 점에서 수출시장 개척을 통해 수요의 안정을 기한다면 국내시장의 한계를 극복하고 더 많은 부가가치를 창출할 수 있을 것이다.
 
또한 외환위기 이후 국내경제 성장이 수출 및 IT산업을 중심으로 이루어지면서, 지역경제 구조상 소비비중이 높은 제주경제가 이러한 성장혜택에서 철저히 소외되어 경제성장세 둔화 등 지역 발전에 많은 어려움이 초래되고 있다는 점에서 제주경제가 정부의 수출지원정책과 궤도를 같이 한다면 국내경제 성장에 따른 많은 성과들을 함께 향유할 수 있을 것이다.

아울러 향토자원을 이용한 향토상품의 개발과 이의 수출에 대한 지원을 확대한다면 도내 산업기반이 취약한 제조업의 발전을 통해 주민들의 고용증진과 소득증대에 크게 기여할 것으로 생각된다. 이것 들이 바로 수출 1조원 시대를 기필코 달성해야하는 이유인 것이다.

둘째, 제주도는 청정하고 뛰어난 자연경관을 갖춘 휴양형 관광지이며 국제자유도시라는 여건을 감안하여 기존 지주산업의 고부가가치화와 함께 지역특성에 적합한 신성장동력산업을 적극 육성해야 한다.

1차산업은 첨단기술과의 융·복합을 통하여 고품질 상품의 생산력을 신장시키고, 관광산업도 연계형 마이스(MICE) 산업 육성 등 질적 고도화를 통해 새로운 활로를 개척하여야만 한다.

이외에 교육, 의료, 첨단기술, 신재생에너지, 고령친화사업 등 지역사회의 기초인프라 확충과 신성장 동력의 육성에도 힘을 쏟아야 한다.

셋째, 제주 경제의 기초를 이루면서 도민 생계의 많은 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영세상권을 활성화시켜 나가야 한다. 영세상권은 전통시장 및 개별 소상인을 중심으로 형성되는 것으로서 상대적으로 경쟁력이 취약하고 경기변동과 외부충격에 영향을 많이 받기 때문에 특별한 정책적 관심이 필요하다. 따라서 영세상권에 대한 고객 편의시설과 유통시스템 등을 개선하고, 생산.제조자와 대규모 매장과의 연계와 협력을 강화함으로써 공생할 수 있는 여건을 조성해 나가야 할 것이다.

위와 같은 제주 경제의 선진화를 위한 과제를 성공적으로 달성하기 위해서는 시의적절한 세부추진계획을 수립하고 강력하게 추진해 나가야 할 것이다.

▲ 고운호 전 한국은행 제주본부장 ⓒ제주의소리
지금 제주는 경제성장의 위기, 사회통합의 위기, 재정의 위기, 미래비전의 위기라는 4대 위기에 봉착해 있다. 그러나 고난을 발판으로 역경을 딛고 일어선 역사가 말해주듯이 요망지고 악착같은 제주인의 몸속에는 위기를 극복할 수 있는 “위기극복 유전자”가 하나 더 있다. 우리는 그 유전자를 깨우고 힘을 모아 현재의 고통을 슬기롭게 참고 극복하며 이것을 승화시키는 데에 도정, 도민, 기업, 언론 등이 다 같이 소통과 화합으로 역량을 결집해 나간다면 내일의 제주경제는 틀림없이 우리에게 희망적인 손길로 다가올 것이다. / 고운호 전 한국은행 제주본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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