섬에 살면서 섬을 그리워하다

등대 비양봉 등대 ⓒ 김강임

섬에서 살면서 섬을 그리워하다니. 육지 사람들만이 섬을 그리워하는 것은 아니다. 내가 제주도로 시집을 올 때 주위 사람들이 하는 말은 "섬으로 시집을 간다고?"라며 놀랐다.

왜 사람들은 섬을 동경하면서도 삶의 터를 마련하기는 망설이는 것일까. 섬에 대한 동경은 그리움이 아닌가 싶다. 바다 건너 저편에는 자신이 동경하는 피안처가 있다고 생각하니까 말이다.

그렇게 제주도에 산 지가 20년이 넘었다. 그런데도 자투리 시간만 나면 '섬속의 섬'으로 떠나는 이유를 나 자신도 모르겠다. 마라도와 우도, 비양도를 수십번 다녀와도 꺼지지 않는 그리움. 다시 제주 본섬에 발을 디디고 나면 또 다시 섬이 그리워지는 이유는 무엇 때문일까?

그물로 엮어 놓은 돌담길을 걷노라니 마지막 여름 폭염이다. 무화과가 익어가는 비양도마을의 풍경이 풍성해 보였다. 돌담 아래서는 참깨를 수확하는 아낙의 얼굴이 검게 그을려 있었다. 콩밭에서 늙어가는 허수아비도 비양도에서는 특별했다.

산책로 비양봉 산책로 ⓒ 김강임

능선 비양봉 능선 ⓒ 김강임

비양봉 정상 비양봉 정상 ⓒ 김강임

마을 올레를 빠져 나가니 비양봉 가는 길이다. 천년의 봉우리 비양봉 몸통은 온통 초록이다. 금릉해수욕장이나 협재해수욕장에서 바라보면 동경의 봉우리로 기억됐던 곳. 그곳이 바로 비양봉이 아니던가. 그래서 비양봉 가는 길은 설렘으로 가득차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비양봉으로 가는 등반로는 데크 시설로 단장돼 있었다. 20분이면 오를 수 있는 산책로인데도 다소 경사가 있어서 시간의 의미를 걸으면 좋을 산책로였다. 그야말로 한여름 오르미들에게 땀을 흘리게 하는 구도의 길이 아닌가 싶었다.

비양봉 정경 비양봉 정경 ⓒ 김강임

가파른 산책로를 걷다가 뒤를 돌아다 봤다. 바다뿐이었다. 그것도 검푸른 바다. 그리고 바다 위에 떠있는 뭉게구름과 한라산, 어깨를 나눈 제주오름들. 고향집 고갯마루에 앉아 세상을 내려다 보는 기분이 이러했을까.

비양봉 등대 비양봉 등대 ⓒ 김강임

한림항에서 15분이면 올 수 있는 곳인데도 비양도는 왜 멀고 먼 나라처럼 느껴질까? 산책로 계단에 주저앉아 너스레를 떠는 순간, 비양봉의 봉우리에 하얀 등대가 보인다. 기생화산 위에 솟아 있는 하얀 등대는 또 하나의 피안처다.

분화구 비양봉 분화구 ⓒ 김강임

분화구 비양봉 분화구 ⓒ 김강임

비양봉을 두고 중국에서 날아온 섬이니 바다에서 솟아 난 섬이니, 그 의견이 분분하다. 하지만 정확한 것은 1002년에 폭발해서 2개의 분화구를 가지고 있다는 사실이다. 능선을 걷노라니 빨간 스코리아의 허물 위에 억새가 가을을 준비한다.

쌍둥이 같은 작은 분화구와 큰 분화구를 볼수 있는 곳은 비양봉의 하얀등대. 비양도 해안도로는 물론 비양항과 마을이 그림처럼 펼쳐 있었다.

해안도로 정상에서 본 해안도로 ⓒ 김강임

신기루 같은 기생화산의 정상, 그곳이 바로 '섬속의 섬'을 꿈꾸는 동경의 피안처가 아닌가 싶었다. 자유를 꿈꾸는 사람도, 분노를 삭히기 위해 도시를 탈출한 사람도, 비양봉에 서면 해방감을 느낄 수 있으니까 말이다.

▲ 비양봉 
ⓒ 김강임  비양봉  
 

 

비양봉
비양봉은 제주시 한림읍 협재리 산 100-1 번지에 있으며 표고 114.1m, 비고104m로 원추형이다.  한림읍 협재리 앞바다의 비양도에 있는 기생화산으로 한림항에서 북서쪽 5Km, 협재리로부터 북쪽으로 3Km정도 떨어진 곳에 위치한다. 섬은 동.서간의 길이가 1,020m, 남북간의 길이가1,130m이다.

비양도의 생성시기는 동국여지승람 제3권에 의하면 서기 1002년에 산이 바다 한가운데서 솟아 나왔는데 산꼭대기에서 4개의 구멍이 뚫리고 붉은 물이 닷새만에 그쳐 그 물이 엉켜 모두 기왓돌이 되었다고 기록되어 있다.     

- 제주특별자치도 관광정보 중에서

< 이 기사는 오마이뉴스에도 실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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