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여성 문화유적100] (31) 인신공양의 소녀, 여신이 되다 - 수산리 진안엣당

▲ 진안엣당 내부 모습 ⓒ김은희

진안엣당은 조선시대 만들어진 수산진성을 신석(神石)으로 하는 당으로 수산초등학교 뒤쪽 성담에 위치해 있다. 수산진성은 1439년에 축성되었다. 제주에 3성 9진 25봉수 38연대들이 정비되는데, 수산진에는 수산봉, 성산, 지미 등의 3개소의 봉수대와 섭지, 오조포, 종달 3개소의 연대가 예속되어 있었다. 조선 초기는 제주도 전역에 걸쳐 외적에 대한 방어시스템을 구축하고 있었다.

진안엣당은 성 축조과정에 생겼다. 수산진성을 쌓을 때 마을 주민들이 모두 부역을 하고 공출을 내는데 유독 한 여인만은 공출을 내지 못했다. 관리가 공출을 독촉하는데 아이가 울자, ‘집 안에는 아무것도 없으니 저 아기라도 데려가라’고 했다. 공출관리가 어처구니가 없어서 웃고 갔다. 그 후 웬일인지 성을 쌓으면 자꾸 무너져서 작업이 진척이 없었다. 어느 날 지나가던 스님이, ‘왜 주겠다던 원숭이띠 아기를 받아다가 바치지 아니하시오.’하는 것이었다. 그때야 공출 관리는 그 집에 가서 아기를 달라고 하니 아주머니는 망설임 없이 내 주었다. 아기를 땅에 묻고 성을 쌓으니 정말 성이 무너지지 않고 완성할 수 있었다. 그런데 어느날부터인가 밤마다 아기 울음소리가 나 동네의 한 부인이 제사를 지내고 퇴물을 그 자리에 갖다 놓으니 소리가 그쳤다. 처음에는 신당으로 모시지 않았다가 세월이 흐르면서 신앙의 대상으로 바뀌었고, 영험이 좋아 자녀의 진학, 출세와 사업의 성공을 위하여 많이 찾는다. 『수산리지』(1994)

진안엣당에서는 굿을 하지 않는다. 개인적으로 날을 봐서 메, 과일, 술, 지전, 물색천, 쌀을 준비하고 간다. 돼지고기를 올리기도 한다. 수산리, 고성리, 난산리, 성산리에서도 많이 오는데, 특히 집안에 큰일을 앞뒀거나, 수험생이 있는 경우, 승진이나 인사와 관련된 일이 있을 때 간다. 심방을 초청해서 갈 때도 있지만, 대부분 혼자만 가서 빌고 온다. 이곳은 당 맨 심방도 없고 금기하는 것도 별로 없어 편안하게 다녀 올 수 있는 곳이다.

정자나무 아래서 더위를 식히고 있는 어르신들을 만나 진안엣당은 언제 가냐고 여쭤보니, “집에 일이 있으면 간다.”고 했다. 이렇듯 진안엣당은 수산리 마을사람들 곁을 지켜주는 당으로 생명력을 잃지 않고 있었다. 수산리는 특히 당신에 대한 믿음이 깊어서 다른 종교가 들어오려 해도 잘 안되는 마을이라 한다.

진안엣당은 수산초등학교 후문 옆길로 100m가면 위치해 있으며, 당으로 가는 좁은 올레가 길고 운치가 있다. 당에 들어가면 오른쪽에 본향신이 좌정해 있어 준비해간 제물을 올린다. 왼쪽에 지전들이 많이 걸려 있는 데가 할망신이 좌정해 있는 곳으로 그곳에서 기도를 올린다. 당 주변은 누룩나무(후박나무) 자생지로 숲을 이루고 있다. 성담 주변에는 풍란, 춘란들이 자라며 당을 감싸고 있었고, 누룩나무 뿌리가 성담을 조이며 뻗어 있어 더욱 신비스럽다. / 김은희

* 찾아가는 길 - 수산리 수산초등학교 정문 → 서쪽 홍공효자비 맞은편으로 100m → 올레로 20여m 지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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