놀아도 “힘든 일 싫다” 국내 최고호텔도 외면…타지 출신 독차지제주대,일자리 '미스매칭' 차단 비상…예비합격자 지원프로그램 강화

지난 9일 우근민 제주도지사가 도청대강당에서 열린 ‘미래 인재양성, 일자리 2만개 창출’을 위한 제1차 전략회의에서 한 발언이 도민사회에 회자되고 있다.

일자리가 없다고 말하면서도, 서울에 있는 제주출신 기업인들이 고향후배들을 위해 힘들게 일자리를 마련했지만 막상 그곳에 가려는 제주지역 청년들이 많이 않은데 대한 제주도민들과 청년들의 취업관을 지적한 대목을 놓고 제주도내 대학에서도 난감해 하고 있다. 

보다 좋은 직장을 찾으려는 대학생들의 노력은 당연하지만, 서울에서까지 내려와 고향 후배들을 취업시켜주겠다고 하는 마당에 또 다시 ‘대기업’만을 바라보며 외면하는 미스매칭이 심각할 경우 ‘취업난’에 대해 할 말이 없게 되기 때문이다. ‘학생들이 선택할 문제’라는 이유만으로 지금의 미스매칭 현상을 더 이상 놔둬서는 기업은 물론이고 학생과 대학에도 결코 좋은 영향을 가져오지 않을 것이란 판단이다.

# 장면 1 : 대학총장이 사정사정 마련한 일자리 10곳, 지원한 한 명 없어 낭패 

2000년 제주대학교 모 총장 때 일이다.
지금도 그렇지만 졸업생 취업이 최우선 과제였던 이 총장은 졸업생들의 취업을 위해 서울을 찾았다. 서울제주도민회 창구를 통해 제주출신 오너 또는 CEO에게 고향 후배에게 일자리를 마련해 달라고 통사정했다. 함께 했던 제주도지사도 거들었다.
예정에 없던 자리였지만 총장의 간절한 호소에 제주도민회도 기업인들에게 후배들이 단 몇 명이라고 채용해 줄 것을 부탁했고, 결국 이 자리에서 우선 급한 대로 10명을 자신들의 회사에 채용시키겠다는 약속을 얻어냈다. 당시로서는 서울 기업에 지방대 출신 10명을 취업시킨다는 건 큰 일이었다.

10명을 뽑을 수 있도록 지원자들을 선발해 올려 보내겠다고 약속을 한 총장은 의기양양 대학으로 돌아왔고, 이 사실을 알려 해당 기업에 제주대 출신들이 지원할 수 있도록 조치를 취하도록 했다.

결과는 참담했다. 총장이 사정사정해서 애쓰게 마련한 기업에 들어가겠다는 제주대학생이 단 한 명도 나타나질 않았다. 학생들의 눈 높이가 워낙 높았던 때문인지 총장이 직접 나서서 마련한 일 자리는 학생들의 눈에 차질 않았다. 결국 국립대 총장이 서울에 올라가면서까지 애써 마련한 일자리는 허공에 날라가 버렸고, 그 후부터 제주대학은 서울에 일자리 문제를 좀처럼 꺼내지 못했다. 이 일은 지금까지도 회자되고 있다.

# 장면 2 : “고향후배 뽑으면 뭐하나, 6개월도 안돼 고향으로 돌아가는데…”

2010년 5월 서울프레스센터에서 열린 “(제주지역) 청년 일자리창출을 위한 재경기업인 간담회’ 자리. 글로벌제주상공인대회 서울조직위 출범식을 겸한 이 자리엔 황인평 제주도행정부지사, 허향진 제주대학교 총장, 현승탁 제주상공회의소 회장이 전부 모여 재경기업인들에게 후배들에게 일 자리를 만들어 줄 것을 간곡히 부탁했다.

이 때 몇몇 기업인들이 마이크를 잡았다. “고향후배들을 취업시키는 건 우리에게도 보람 있는 일”이라며 화답했다. 회의장에 온기가 돌았다.

하지만 이내 쓴 소리가 이어졌다.
아시아 최대공단인 경기도 반월 시화공단. 1만여 개 중소기업이 밀집해 있다. 이 중 제주출신이 오너로 있는 곳이 예상외로 많다. 이곳 안산제주도민회 회원만 무려 5000명이다. 제주출신 오너들은 가급적이면 고향사람을 채용하려 한다. 대부분 학연이나 지연 소개로 취업한다. 그러나 대부분 6개월을 버티지 못한다. 당시 모 업체 사장 이야기다. “10명을 채용하면 6개월이 지나면 7명이 퇴사합니다. 일이 고되서 버티질 못하겠다는 거예요. 그리고는 ‘섭섭하다’는 이야기만 합니다. 사장인 내가 다른 직원들 보기가 민망할 정돕니다.”

이야기가 끝나자 이구동성으로 비슷한 이야기들이 나왔다. 종합하면 이렇다.
수도권에 있는 기업엔 아침에 출근하려면 집에서 보통 6시에 일어나서 늦어도 회사에 오전8시 이전에 들어가고, 퇴근도 일이 밀릴 땐 저녁 늦게 하는 게 보통인데 제주에서 올라간 신참들은 이걸 못 버틴다는 것. 일단 회사에 들어가면 조직에 융화돼야 하는데, 제주출신들은 직장내에서도 끼리끼리만 움직이면서 동화되질 못하고 스스로 고립된다는 문제도 심각했다. 또 하난, 고향에 있는 부모들 성화. 자식들이 어느 정도 자리를 잡기 위해선 최소 3년 정도는 고생이 필요한데, 제주 부모들은 이걸 못 참고 자식들이 “힘들다. 어렵다.”는 이야길 하면 당장 “그만 두고 내려와라. 감귤밭에서 일해도 그 정도는 내가 주겠다. 차라리 공무원시험 공부하는 게 낮겠다”며 과도한 사랑으로 자녀들의 귀향을 부추긴다는 것이다.

# 장면 3 : “제주도내 특급호텔에 제주출신들이 없는 이유 아세요?”

2010년 8월. 한국산업기술진흥원(KIAT) 위탁으로 제주하이테크산업진흥원이 주관해 MICE를 주제로 한 ‘지역발전포럼’. 업계와 학계, 관련기관 언론계가 모두 모인 자리다. 이 자리에서 모 교수가 MICE관련 학생들의 취업문제를 조심스레 꺼냈다. 취업률로만 본다면 타 시도에 뒤떨어지진 않지만, 그래도 숫자상으로 아직도 부족하다며 업계에 ‘SOS’를 쳤다.

교수의 요청이 끝나자 마자 함께 했던 모 호텔 총지배인이 “제발 좀 우리를 도와주십시오. 학생들 좀 보내 주십시오”란 정 반대 이야기를 꺼냈다. 둘 만 아는 이야기였고, 주변 사람들은 의아해 했다. 나중에 봤더니 관광학계와 업계에선 이미 널리 알려진 사실, 그렇지만 드러내놓고 말 못할 사연이었다.

제주 관광업계는 물론, 우리나라에서도 최고로 치는 제주신라, 제주롯데, 제주해비치호텔에 ‘제주사람’이 없다. 업계에선 우러러보는 직장이지만 타 시도 출신들로 가득하다.  문제는 뭘까? 이들 호텔이 제주출신, 제주도내 대학 졸업생들을 뽑지 않는 게 아니라, 대학생들이 이곳엘 지원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 자리에 참석했던 모 호텔 총지배인 이야기.
“호텔에 들어오면 모든 일을 합니다. 어느 한 부서만 하는 게 아니라 식음료 서비스부터 하나 하나씩 배워나갑니다. 어느 정도 단계에 오르기까지는 힘들죠. 그런데 제주지역 청년들은 호텔이라고 하면 으레 넥타이를 메고 기획부서에서만 일하려고 해요. 좀처럼 힘든 일은 안하고, 식음료를 하라고 하면 안해요. 모 호텔사장도 식음료 파트에서 시작해 지금의 자리에 올랐는데…그러니 제주에 있는 특급호텔 종업원 대부분이 육지 출신들입니다. 호텔에서도 제주출신을 쓰고 싶은데 사람이 없어요….”

제주대학교가 팔을 걷어 부쳤다.
17일 열리는 일자리박람회에서 기업과 학생들이 눈높이 불일치에서 오는 미스매칭을 가급적 줄이기 위해 학생들에게 기업 정보를 최대한 제공하고, 보다 많은 기회를 가져볼 것을 당부하는 자리를 잇따라 마련하고 있다.

지난달 8월26일 7년만에 제주대학교 전체 학과장 회의를 연 것도 이 때문이다. 또 10일부터는 각 단과대학별로 학장과 교수들이 나서서 학생들에게 취업설명회를 하고 있다. 일자리박람회가 열리는 17일 이전까지 각 단과대학별, 또 특정기업이 요구하는 인재들이 있는 학과별로 기업소개를 비롯한 취업지원프로그램을 강화하고 있다.

여기에다 취업에 성공한 학생들을 위한 지원프로그램도 준비 중이다. 이른바 힘들게 취업에 성공해 놓고도 직장생활에 적응하지 못해, 동료들과 어울리지 못해, 중도포기하는 사례를 가급적 줄이기 위한 프로그램이다.

제주대학교 취업전략본부는 17일 일자리박람회에서 예비합격한 학생들을 대상으로 1박2일 프로그램을 마련한다. 직장인으로서의 인성교육에서부터 직장생활의 실무, 그리고 커뮤니케이션 등 신입사원으로서 갖춰야 할 소양을 사전에 철저히 익혀 예상치 못한 이유로 중도탈락하는 문제를 차단할 방침이다. <제주의소리>

<이재홍 기자 / 저작권자ⓒ제주의소리. 무단전재_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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