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용진의 제주음식이야기] 양애

▲ 양애나물! 강한 향때문에 어린아이들이 가장 싫어하는 나물인데 나이가 들면 자연스럽게 빠져들게 되는 음식이다. 제주의 가을 차례상의 반드시 올려졌던 음식이다. ⓒ양용진

  추석이다. 올해는 폭염과 잦은 비, 태풍 때문에 차례상이 풍요롭지 못할 것이란 뉴스가 자주 나온다. 추석의 의미는 수확에 대한 감사함의 표시인데 수확의 규모가 예년만 못하니 차례를 지내는 농부의 마음이 오죽할까? 그러나 수확량의 많고 적음에 관계없이 추석 차례상은 차려질 터인데 이 차례상차림이 지역마다 집안마다 조금씩 다르다는 것은 이미 많이들 알고 있는 사실이다. 이렇게 다른 상차림의 원인은 귀한 음식을 진설한다는 기본 원칙이 있기 때문이다.

  그 해 생산된 것들 가운데 가장 크고 가장 질 좋은 것으로 골라 상을 차리고  일부는 흔히 볼 수 없는 귀하고 고급스러운 음식을 차례상에 올리는 것이 차례상을 차리는 기본인 것이다. 그래서 지역마다 생산되는 산물이 다르고 흔하고 귀함의 차이가 다르니 당연히 제수용 음식이 다를 수밖에 없는 것이다. 예를 들어 제주의 차례상에 빵이 올라가는 풍습이나 안동같은 내륙지에서 자반 고등어를 올리는 풍습, 일부 해안 지역에서 통 자숙문어를 올리는 풍습 등 특징있는 음식들이 꽤나 많다. 그리고 이렇게 한눈에 확연히 알아볼 수 있는 음식들 이외에도 그 지역만의 독특한 나물이나 전류, 적류가 눈에 띄기도 한다. 지난 설 즈음에 제주의 전에 대해서 거론 한 적이 있었는데 독특한 전들이 신기하다는 사람들이 많았다.
그 이후에 추석이 다가오면서 제주의 추석차례상에 가장 일반적이면서도 가장 제주다운 음식이 어떤것이 있느냐는 질문을 많이 받았다. 그 때마다 필자가 자신있게 대답한 음식이 있는데 다름아닌 ‘양애’다.

▲ 양하꽃이 핀 모습. 결코 가벼워 보이지 않는 나름으로의 고고함이 보이는 꽃이다.

▲ 뿌리에서 꽃대가 뻗어나온 모습이 독특하다. 꽃대는 지표면에 살짝 묻혀 있는 것을 촬영을 위해 필자가 흙을 걷어낸 상태이다. ⓒ양용진

  양애는 표준어로 ‘양하’를 이른다 아시아 열대지방이 주산지인 양하는 생강과의 식물로 알려져 있고 일본에서는 ‘묘가’라고 부르며 여름철의 대표적인 채소로 꼽을만큼 일반화 되어있는 채소인다. 우리나라에서는 호남 일부 지역에서도 생산되지만 주 생산지는 바로 제주도인 다년초 식물이다. 그리고 가장 많이 먹는 지역도 제주임에 틀림없다. 주로 늦여름에서 초가을 사이에 많이 수확되는데 이시기가 추석명절을 반드시 거치게 되므로 자연스럽게 제주의 가을 차례상에는 빠지지 않는 제수용 음식이 된 것이다. 전라도 일부지역에서는 고기 산적을 만들 때 사이에 꿰어 먹는 방법이 가장 일반화 되어 있는데 반해 제주 사람들은 산적은 물론 된장국으로 끓여먹거나 장아찌로 만들거나 나물로 무쳐 먹는 등 먹는 방법이 다양하다. 또한 이른 봄에 돋아나는 작은 죽순처럼 생긴 새순을 따서 한 꺼풀씩 벗겨 쌈으로도 이용했으니 다른 지방에서는 생각도 하지 않는 독특한 가식 방법이 아닐 수 없다.

  결국 우리가 먹고 있는 가을의 양하는 잎이나 뿌리가 아니고 꽃 부분이라 할 수 있는데 좀 더 정확히 얘기하면 꽃 받침, 또는 꽃대 부분이라 할 수 있겠다. 한국 음식 가운데 꽃을 먹는 음식이 몇 가지나 있을까? 특히 나물로 무쳐먹는 꽃이 얼마나 있을까? 이것이 바로 ‘양애’의 매력이다. 특유의 고운 보랏빛 색상과 독특한 향기가 있는 꽃나물! 듣기만 해도 신기하고 매력적인 음식이 아닌가 말이다. 제주의 선조들은 그저 흔하게 채취해서 먹은 계절음식에 지나지 않았는지 모르겠지만 이렇게 현대인들에게 강력한 매력을 지닌 토속음식이 어디 있겠는가 말이다.

혹자들은 그 향이 너무 강해서 처음 먹는 사람들은 거부감을 많이 갖는다고 말하는데 필자역시 그 부분 공감하고 경험한 일이다. 그런데 단순히 양하라는 나물무침이라고 하지 않고 양하라는 ‘꽃나물 무침’이라고 얘기하면 대단한 호기심을 보이면서 일단은 모두 시식하는 것을 경험할 수 있었다. 그리고 그 강한 향에 대해서는 필자가 뭐라고 하기도 전에 “아! 향이 정말 강한 꽃이네요!”라고 먼저 자평하기까지 한다. 물론 모두 다 만족하진 않지만 강한 향이 싫다고 젓가락도 대지 않던 사람들도 ‘꽃나물’이라는 그 표현 때문이었는지 조금씩 맛을 보며 특히 자연 음식에 관심이 많은 사람들은 그 매력에 금방 빠져드는 것을 경험할 수 있었다. 이 세상에 꽃을 싫어하는 사람이 있겠는가?  결국 음식은 그 음식을 대하는 사람들의 마음을 열수 있는 방법을 찾아내면 쉽게 접근할 수 있는 것이란 결론에 다다르게 된다.

▲ 양하는 주로 산담을 따라 그늘지고 습한 곳에서 잘자라며 다 자라면 어른 가슴 높이 정도이다. ⓒ양용진

▲ 우리가 나물로 먹는 부분을 꺽어 놓았다. 너무 만개하면 억세져서 먹기가 힘들다. ⓒ양용진

  거기다가 양하는 이야기 거리가 많은 꽃이다. 이 세상 거의 모든 꽃은 위에서 핀다. 나무 위, 가지 위, 하물며 풀꽃 들 조차도 그 낮은 풀의 가장 위에서 피는 것이 일반적이다. 그런데 양하는 뿌리의 윗부분에서 흙을 뚫고 꽃대가 나와서 거의 지표면과 맞닿은 위치에서 꽃이 핀다. 세상에 이렇게 겸손한 꽃이 어디 있는가? 모든 꽃들이 햇살을 쫓아 제 모습을 나타내려 발 돋음 하는 와중에 혼자서 오히려 볕이 들지 않는 세상 가장 낮은 곳에서 자신의 모습을 숨기고 있는 양하꽃의 모습은 세파에 물들지 않고 초야에 묻혀 사는 은자의 모습이 아닌가 말이다.

  음식으로서도 땅의 기운을 가장 많이 받은 나물로 손 꼽을 만하다. 양지 보다는 음지에서 더 잘 자라며 습한 곳에 있어 수분 함량이 높고 다른 나물에 비해서 조금 질긴 식감을 나타내는데 이는 섬유질이 많다는 증거이고 자체의 향이 있어 이를 살려 조리하니 양념을 많이 가하지 않는 자연 음식에 가깝다고 할 수 있겠다.

▲ 양하는 채취하고 놔 두어도 억세지기 때문에 채취하고나면 빨리 조리하는 것이 좋다. ⓒ양용진

▲ 예전에는 마농지를 담듯이 간장에 절여 먹었으나 요즘은 본연의 색을 보기위해 초절임이 대세! ⓒ양용진

  또한 양하는 예로부터 약재로 활용되는 약용식물이기도 하다. 뿌리줄기와 종자를 주로 사용하는데 여성의 생리불순 등에 좋고 진해 거담 효과가 있다고 알려져 있으며 안구 충혈이나 종기 치료에도 좋다고 한다. 그리고 종자는 학질을 치료하는데도 이용했다고 하여 지금도 호남지역에서 약초를 연구하는 사람들은 양하를 가초(嘉草)라 부르며 귀한 대접을 한다고 하니 약용식물로서의 가치에 대한 체계적인 연구를 양하가 가장 많이 자라는 제주사람들이 발 벗고 나서야 하는 것이 옳지 않을까 생각된다.

▲ 양용진 제주향토음식보존연구원 부원장 ⓒ제주의소리
  양하는 주로 산담 아래 볕이 잘 들지 않는 조금 습한 곳에서 자생하는 것을 볼 수 있다. 옛 어른들은 초가지붕 처마 밑이 늘 축축하게 젖어 있는 것을 아시고 양하를 심어놓곤 하셨다. 요즘도 텃밭에 양하를 심어놓고 꽃대가 잘 안 올라온다고 투덜대는 분들이 있는데 대부분 일반 식물들 가꾸듯 볕이 잘 드는 곳에서 기르기 때문인 경우가 많다. 그늘진 곳에서 묵묵히 자신의 향기를 만들어 나가는 제주의 민초들과 어찌 이리도 닮았는지.....
 
  제주를 떠나 사는 제주 사람들이 그리워하는 제주의 기억을 떠오르게 하는 음식들! 빙떡, 마농지, 자리, 몸국 등 제주사람들의 소울푸드 가운데 이 ‘양애’도 제주 가을을 연상시키는 소울푸드임에 틀림없다. / 양용진 제주향토음식보존연구원 부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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