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충민의 사람사는 세상] 친구의 술버릇 이야기

참 무기력한 요즘입니다.

그러고 보니 이 무기력이라는 분은 요즘에 불쑥 찾아 온건  아닙니다. 분노가 허탈로 바뀌고, 또 허탈이 무기력을 낳았습니다. 그런데 이제 2년을 더 버텨야 한다 생각하니 한숨만 푹푹 쉬게 됩니다. 여러분들도 그렇지요? 저만 그런 건 아니겠지요.

제 친구 얘기 하겠습니다. 정확히는 제 친구의 술버릇 이야기지요. 요즘 같은 때 걷어 부친 소매에 힘찬 구호가 어울리는 그런 글보다는, 생뚱맞지만 어쩌면   잊고 사는, 잊어버리기 쉬운 하지만 제일 소중한 것은 바로 옆에 있다는 진리를 느껴보자고요.

친구와 저는 20대의 첫 직장에서 친구가 되었습니다. 그냥 나이가 같으니 친구라는 식의 아닌 남자들 사이에서 친밀도를 나타내는 척도인 X알 친구라 할 정도로요. (아 그러고 보니 이제 서로 친구가 된지 20년이 되었으니 정말 오래 사귄 벗이네요.)

그 후 우린 약간의 시차를 달리하여 이직을 하였고, 그 후에도 계속 친구였습니다. 지금도 물론 서로의 직장이 다르고 퇴근시간이 다르다 보니 20대처럼 자주 만나는 것은 불가능하지만 그래도 꽤 자주 만났었지요. 그러다 누구에게 속상하거나 섭섭함이 있는 것도 아닌데 한 달 정도는 만나지 못할 때가 있습니다. 대개가 다 그러겠지만... 살다보면 다 그렇겠지요. 그런 시간이 조금 오래 지나면 불현듯 전화하고, 술 마시고. 얘기하고, 다시 일상으로 돌아가는 것이지요. 그런데 연락하지 않는 시간이 더 길어지면 이런 정적을 깨는 일이 있습니다. 바로 녀석의 전화이지요.

그런 전화는 어김없이 새벽 두시 즈음입니다. 미처 진동으로 하는 것을 깜빡하고 잠든 날, 이런 날  휴대폰이 자지러지게 울립니다. 손이 휴대폰을 만졌지만 잠에서 채 깨지 못 할 즈음 툭 끊깁니다. 채 방비가 되지 않을 즈음에 다시 휴대폰이 울립니다. ‘너 빨리 받아.’ 하듯이요.

“어 나야. 잘 지내냐.”

휴대폰 저편 녀석은 잔뜩 술을 마시고 있습니다. 발음도 정확하지 않습니다. 저는 습관처럼 휴대폰을 귀에 대고 듣기만 합니다. 끄지 않고요. 녀석의 넋두리는 길어집니다. 그래도 전 끝까지 듣습니다. 중간의 내용은 뭐라고 하는지 하나도 못 알아듣습니다. 가끔 지치다. 힘들다를 반복합니다.

“넌 참 좋은 친구야. 근데 이 자식아 넌 내가 보고 싶지도 않냐. 그러다 나 정말 삐진다. 우리 빨리 보자”

친구는 늘 이렇게 마무리 하며 새벽의 통화를 끝냅니다. 저는 비로소 휴대폰을 끄고 내려놓습니다.

그런데 이 친구 다음 날 얘기하면, 전화한 사실도 전혀 기억해 내지 못합니다. 그리고는 평소에 가물한 제 휴대폰번호를 어떻게 잘도 기억해내는지 자신도 신기해합니다. 그러면서 새벽의 그 애잔함과 우정의 재확인은 어디가고 피식 웃음으로 마무리 합니다. 완전히 딴 사람처럼요. (어쩌면 의도적으로 기억나지 않는 것처럼 하는 것일 수도요.)

친구의 각시도 서로 친한 터라, 어느 날 같이 있는 자리에서 이 얘기를 했습니다. 그랬더니 부인의 대답이 오히려 걸작입니다.

“오빠 누가 오빠에게 한 밤에 휴대폰 번호를 기억해서 전화하겠어? 그런 소년같은 감성을 지금도 갖고 있는 사람이 과연 누가 있겠냐고... 한 밤에 누가 간절히 오빠를 찾겠어. 보고 싶다고 하는  그런 친구 있는 건 자랑이야. ”

그렇다고 지 서방, 새벽의 행동에 대해 두둔하는 것도 아닌 것 같은데 듣고 보니 괜찮은 말 같기도 합니다. 또 찬찬히 생각해보면 정말 친구부인의 말처럼 정말 둘 도 없는 친구를 가진 것 같아 그 말에 괜히 으쓱하며 기분이 좋아졌고요. 그래서 그 후로 녀석의 전화에 짜증내지 않기로 했습니다.

뭐 말마따나 친구의 자근자근 새벽 넋두리를 들어주기로 했습니다. 다시 한 번 생각해 보니 난 대낮에도 누구의 이야기를, 하소연을 귀 기울여 들어준 적이 없습니다. 제 말만 했습니다. 그렇네요. 새벽바람의 알싸한 기운이 채 가시지 않은 삶의 넋두리에 그냥 손 전화 내려놓지 않고 들고 있기만 해도 뿌듯한 일이네요.

친구의 이야기를 쓰다 보니 도종환의 시가 생각납니다.

무뎌져버린 감성에 그의 시를 적으며 오랜만의 글을 마무리합니다. 우리 서로의 손을 잡아주고 얘기 들어주자고요. 그리고 힘내자고요. 고요한 것은 침묵이 아니라 힘의 축적이라 다짐하면서...

전화벨이 울렸다 수화기를 들었다 말이 없었다
잠시 그렇게 있다 전화가 끊어졌다

누구였을까

깊은 밤 어둠속에서 아직도 돌아가지 못하고 있다가
두근거리는 집게손가락으로
내 가장 가까운 곳까지 달려와
여보세요 여보세요 두드리다
한 발짝을 더 나아가지 못하고 넘어서지 못하고
그냥 돌아선 그는 누구였을까

나도 그러했었다
나도 이 세상 그 어떤 곳을 향해
가까이 가려다 그만 돌아선 날이 있었다

도종환의 시 끊긴 전화 앞부분

* 이 글은 제주 참여환경연대 10월소식지에도 실릴 예정입니다.

 

 
 

강충민기자는 아들 원재와 딸 지운이를 둔 평범한 아빠입니다.

사소한 일상을 따뜻한 시선으로 글을 쓰고 있으며 차별 없는 사회, 다양성이 존중받는 세상을 꿈꿉니다.

현재 제주몰여행사에 근무하고 있으며 제주참여환경연대 출판미디어사업단의 편집위원으로도 활동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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