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호성 칼럼] 현인들이 말하는, '행복은 어디에서 오는가'

세상은 변하기 때문에 행복한 것인가 아니면  고통을 받는 것일까 곰곰히 생각하면 서로 모순된 말이다. 가난하거나 억울한  사람은 세상이 변하기 때문에 미래가 있다고 생각하여 성취하는 행복이 있을 수 가 있고 반면에 대통령이나 도지사, 국회의원을 비롯한 고관대작이나 부귀 영화를 누리는 사람은 영원히 권세와 부를 오래도록 누리기 위하여 그것을 지키느라고 불안하고 불행할 것이다.

“잠화경"에 이런 말이 있다. 부처님이  그의 제자 소로나에게 다음과 같이 물었다. "네가 어떻게 세상을 보느냐? 너는 세상의 모든 만상이 영원히 존재한다고 믿느냐 소로나가 대답하기를 "세상 만상이 영원한  것이 아니고, 그것들은 항상 변화하기 때문에 우리들에게 항상 많은 고통을 줄 뿐입니다 라고 대답했다 .

"어리석은 소로나야  세상 만상이 항상 변화하는 데  정말로 이것은 나의 소유요, 저것은 너의 소유다 하고 구분하는 경계가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오늘 네것이 내일은 나의 소유가 될것이고 오늘 내것이 내일은 너의 소유가 될 것인데 여기에 무슨 고통이 있겠는가  정말 자신의 것이라고 단정지을 수 있겠느냐?"

이 가르침에서 인생의 2가지 요소의 무상함이 인간에게 고통을 준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하나는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만상들이 항상 변화하기 때문에 이 변화성 자체가 인간에게 고통을 주는 것이다. 두 번째는 모든 중생들은 세상의 변화무상한 원리를 인지하지 못한채 변화하는 우주의 진리를 부정하고 일순간 머무는 그 현상을 영원히 자기 것으로 착각하고 이 변화를 영원히 자기 것으로 하려는 어리석음이 중생에게 고통의 원인되는 것이다.

싯달타는 이러한 고통에서 해방되기 위하여  부귀영화를 버린채 출가하였다.  "내가 왕자였을때 나의 인생은 찬란했고 또 행복하고 만족함을 느꼈다. 그러나  나는 나에게 주어진 모든 찬란한 영광들이 영원할 것이라고 생각조차 해보지 않았다고 술회하였다고 한다.

필자는 이러한  진리를 얼마나 감지하면서 살아왔고 얼마나 어리석은 삶을 살다 갈 것인지 다음 두가지 일화를 곰곰이 음미해본다. 한가지 일화는  백성의 행복보다는 자신의  부귀영화만을 누리며 살고 있는 임금님이 어느날  임금을 항상 기쁘게 하는 수광대를 불러  일생을 수광대로 사는 너는 무엇이냐 “참으로 어리석기 짝이 없는 사람”이다 하면서 너보다 더 어리석은 사람을 만나거든 이 것을 주라고  하면서 왕으로 부터  금 지팡이를 선물을 받았다. 금 지팡이를 간직한채 나보다 어리석은 사람을 찾았으나 해가 거듭되고 수 많은 세월이 지나도 어리석은 사람이 나타나지 않았다. 어느날 임금이 죽게 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임종을 앞둔 임금 앞에 다가가서 수광대는 인사를 하고 임금 님은 세상을 어떻게 사셨습니까  죽음에 대해서 어떤 준비를 하였습니까 하고 묻자 임금이 뒤를 돌아보니까 아무런 준비를 못했고 참으로 허망하였다. 부귀영화와 불노장생을  누리려던 임금 님이 가장 어리석은 삶일 것 같습니다 하고  이 “금 지팡이의 주인은 당신 것” 입니다 하고 돌려주었다는 이야기가 있다.

▲ 김호성 전 행정부지사, 제주공동체 발전포럼 공동대표 ⓒ제주의소리
또 따른 일화는 무소유의 법정스님은  소유에서 고통이 따른 다고 하였다. 어느날 값비싼 한란을 선물받고 오래도록 미국출장을 가게 되었는 데 놓고 온 한란을 생각하면서  죽지 않았는지 물은 누가 주고 있는지 공연한 고민을 했다는 것이다. “한란을 선물 받지 안했다면 그에 따른  고민도 안했을 것“을 이와 같이 무소유란 아무것도 갖지 않는다는 것이 아니라 불필요한 것을 갖지 않은 다는 뜻이라고 한다. 자기것이 아니거나  자기 자리가 아닌 자리에 연연하면 고통이 따른 다. 마음을 비우고 오직 진리는  ”세상이 변한다는 것을 알면 행복하다“는 것이다. / 전 행정부지사, 제주공동체 발전포럼 공동대표  김 호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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