격납고 12기 독립전시공간 활용...'근대-욕망-정치' 구슬꿰기

▲ 격납고 안에서 바깥을 바라본 모습. 이 안에 박경훈 화백의 설치작품이 전시될 예정이다. ⓒ제주의소리

서귀포시 대정읍 알뜨르땅이 거대한 전시장이 된다.

박경훈 화백이 경술국치 100년을 맞아 ‘알뜨르에서 아시아를 보다’ 개인전을 대정읍 알뜨르 항공기지 유적지에서 갖는다. 23일부터 11월 14일까지다.

박경훈의 작업은 알뜨르 땅에 남아있는 일제의 잔재들, 활주로와 격납고에서 지난 100년을 읽어내는 것으로 시작된다.

1910년 경술국치 이후 알뜨르는 일제의 전진기지로 사용된다. 중국 남경과 상해의 폭격을 위한 제로센과 폭격기들이 알뜨르 활주로를 날아올랐다. ‘제국주의 아시아 하늘’로 연결된 곳이 알뜨르였다. 지정학적 중요성을 간파한 일제에 의해 농부들의 경작지였던 생명의 땅이 살생의 땅으로 변한 것이다.

100년이 흘렀고 굉음도 멈췄다. 마치 뜨거운 용광로가 차갑게 식은듯 19기의 격납기만이 무덤 형상을 하고 남아있다.

알뜨르는 이제 ‘아시아의 근대와 욕망의 정치학이 빚어낸 역사적 장소'로서 남아있다. 활주로와 격납기는 그 역사의 기념비이자 비석이다.

오래전 송악산공군기지반대운동 당시 처음 알뜨르땅과 마주했던 박 화백은 "이곳을 찾을 때마다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처연한 감성이 일렁이곤 했다"고 말한다. 언젠가 이 유적을 미술작업으로 다뤄보리라 생각했던 것이 '경술국치 100년'과 맞아떨어져 이번 전시에 이른다.

박 화백은 알뜨르 비행장과 고대 그리스의 이카루스 신화를 연결한다. 밀랍 날개를 달고 날아오른 신화 속 이카루스는 태양에 가까이 가지 말라는 금기를 어겨 결국 불에 타 죽고 마는 비극의 인물이다. 스스로를 해의 근본이라 내세우며 남경과 상해 폭격을 위해 날아올랐던 제로센이나 폭격기들은 그 자신을 불지옥으로 사라지게 만든 ‘죽음의 문명’이었던 것이다. 박 화백의 작업은근대-욕망-정치-역사를 꿰어내는 구슬꿰기 작업이다.

▲ 격납고 안에서 바깥을 바라본 모습. ⓒ제주의소리

알뜨르 땅에 현재 남아있는 19기의 격납고 중에 12기가 정시공간으로 사용된다. 알뜨르 땅 자체에서 펼쳐지는 야외전이면서 동시에 각 격납고는 독립적인 전시공간이 된다.

이번 작업 대부분은 ‘철과 청동’을 주 소재로 한다. ‘불과 철의 시대’인 제국주의의 상징이기도 하다.

알뜨르 유적지 내 섯알오름 4.3유적지 주차장 중앙에는 실제 제로센을 실물 크기로 조형해낸 작품이 설치된다. 녹슨 철골로 뼈대를 만들고 표면에는 비행기 장갑을 청동으로 만들어 놓았다. 각 청동장갑판에는 친일인사 205인의 얼굴과 이름이 동판부식으로 새겨져 있다.

박 화백은 “100년 전에서 시작해 다가올 100년의 아시아를 이곳에서 사유하고자 한다”며 “우리가 반성적 성찰을 뼈 속 기피 인식하지 못한다면, 알뜨르 비행장 격납고 잔해들의 의미는 무의미할 것”이라고 말했다.

전시 개막은 23일 오후 3시 알뜨르 비행장 유적지 내 섯알오름 4.3유적지 주차장에서 열린다. 개막식 전에는 오후 2시부터 제주칠머리당영등굿보존회의 ‘100년 추모굿’이 벌어질 예정이다.

전시는 서귀포와 민족문제연구소, 제주문화예술재단, (사)제주민예총, 제주의소리, 한라일보, 바이오스펙트럼, 유리의성이 공동 후원했다.

문의=064-725-4410. <제주의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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