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 '알뜨르에서 아시아를 보다' 최고 작품은 '알뜨르땅'

▲ '이카루스의 날개'. /사진제공=도의회 김기삼

대지는 넓었다. 브로콜리와 양배추 밭이 가득이었다. 밭과 밭 사이에는 농부들의 창고로 쓰이고 있는 회색 콘크리트 구조물이 있었다. 기묘한 풍경을 만들어내는 이 구조물은 100여년전 일제의 제로센.폭격기가 나고들었던 격납고다.

알뜨르땅은 지난 100년 근현대사의 부조리들의 접점이다. 지정학적 위치의 중요성 때문에 일제는 폐망 직전 결7호 작전을 이곳에서 펼쳤다. 일제 이후 50년 한국전쟁 기에는 한국군의 주둔기지로 쓰였고 제주4.3과 관련해선 많은 희생이 일어나기도 했다. 그 이후로 국유지로 편입됐다.

비행기는 철수됐고, 굉음도 멈췄다.  역사적 흔적을 지워가듯 농부들은 쟁기질로 밭을 일궜다. 그 땅에 지난 역사의 무덤이자 비석으로써 비행장과 격납고가 남아있다.

이곳의 '역사-정치-욕망'을 구슬로 꿰는 전시가 이뤄지고 있다. 박경훈 화백의 '알뜨르에서 아시아를 보다'전이다. 23일 오후 서귀포시 대정읍 알뜨르 항공기지 유적지에서 진행된 전시 설명회가 이뤄졌다. 100여 명이 박경훈 화백의 안내로 알뜨르 땅을 걸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이곳을 전시장 혹은 오브제로 사용한 박경훈의 작품들은 ‘현장 미술’만이 가질 수 있는 아우라를 가졌다.

▲ 사진제공=도의회 김기삼

▲ 작품 '무명비'. /사진제공=도의회 김기삼

밤부터 비날씨가 예고돼 있어 습기 많은 바람이 친친 감겼다. 회색빛 하늘 아래 콘크리트 격납고는 그 온도가 더 차가워 보였다. 약 1시간반동안 걷고 멈추고를 반복하며 박경훈 화백의 안내와 함께 관람하기를 이어갔다.

한 격납고 안 한켠에는 농자재가 쌓여있고 그 가운데로 쇠로 만들어진 100여개의 30cm가량의 말뚝이 나란히 박혀 있었다. 박경훈 화백은 “해방 전후로 희생되어간 의병을 비롯한 이름없는 이들의 비석”이라고 했다. 작품명 ‘무명비’(바로 위사진). 국가적으로 위무해본 적 없는 이들을 위한 것이었다. 소재가 ‘쇠’인 이유는 “제국주의 근대시대의 상징으로서 ‘쇠와 불의 시대’가 여전히 끝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마지막으로 설명이 이뤄졌던 ‘이카루스의 날개’(맨 위 사진)는 태양에 가까워지려는 욕심때문에 밀랍 날개가 녹아 추락했던 이카루스의 신화를 일제와 연결시켜 형상화한 작품이다. 이제 막 격납고를 벗어나 날아오를 준비를 하고 있는 모습의 이 작품에는 ‘희망적 바람’이 담겨있다. 100여년전 격납고에서 날아갔던 ‘살생의 폭격기’가 아닌 ‘아시아의 평화와 공존’을 위해 날아오르길 바라는 것.

현장에 있던 많은 이들은 알뜨르 땅 자체가 박경훈의 전시 ‘알뜨르에서 아시아를 보다’의 최고 작품이었다고 말했다. 다만 알뜨르 땅은 사람들에게 제대로 읽히기를 기다려왔던 것이다. 땅은 박 화백의 작품과 함께 숱한 이야기를 쏟아냈다.

격납고 안에 들어섰을 때 마주할 수 있는 비행기 모양에 맞춘 입구 틀과 격납고에서 아시아를 향해 폭격기를 쏘아올린 일제의 욕망, 그리고 거기서 어떤 교훈도 찾지 않았던 지난 세월 같은 것들이다.

▲ 작품 설명을 하고 있는 박경훈 화백. /사진제공=도의회 김기삼

이날 함께 했던 미술평론가 성완경의 말처럼 이번 전시는 ‘새로운 현장미술’로써 의의를 가졌다. 성 씨는 “내용과 형식 그리고 박 화백의 집요에서 큰 감명을 받았다. 박경훈에게 어울리는 프로젝트였다. 문화예술을 통해 역사적 장소를 꾀어내는 작업이 제주지역에서 실제 이뤄진 예가 드물다고 알고 있다. 그런 점에서 이같은 결과물을 만들어 오늘처럼 모든 사람과 나누는 형식의 신기원을 만든데 대해 축하한다”고 말했다.

박경훈 화백은 “이번 작업을 통해 현장미술이 만만치 않다는 것을 느꼈다. 작품을 둘러보려면 대략 2시간 30분가량 걸린다. 스스로 해석하는 사람들이 찾는 곳이지 않나 생각된다. 현재는 음향시설이 갖춰져 있지 않다. 전시가 마무리 될 때 쯤에 작품은 진짜 마무리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번전시는 11월 14일까지 계속된다. 전시 중간에 설명회와 음악회 등이 예정돼 있다. 박 화백은 대정읍 알뜨르 항공기지 유적지 주차장 안에 있는 콘테이너 박스에 머물고 있다.

전시문의=064-725-4410. <제주의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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