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책 대신 돈과 티 파티

11월 2일 실시되는 미국의 총선은 상원과 하원뿐 아니라 주지사와 주의회 의원을 뽑는 큰 선거다.

중간선거에서는 집권당 의석이 줄어드는 것이 상례다. 지난 30년간 중간선거 평균을 내보니 하원 435석 중 20여개 의석과 상원 100석 중 3~4개 의석이 야당에게 돌아갔다고 한다.

그러나 이번은 그 정도가 다르다. 여론조사 전문가 피터 하트는 하원은 최소 50석의 당적이 바뀌어 공화당이 다수당이 될 것이며 상원에서도 7석 이상이 공화당에게 넘어갈 것으로 보고 있다.

이것은 놀랄만한 대 반전이다. 더 놀라운 것은 정책 선거의 실종이다. 재정적자 감축, 에너지, 이민, 아프간 전쟁, 안보 등 세계가 주목하는 현안들이 미국의 어깨에 놓여 있는 마당에 고작 상대방 후보의 흠집 찾기 경쟁을 하고 있다.

민주, 공화 양당이 똑같이 정책토론을 기피하고 있는 이유가 있다. 민주당 후보들은 특히 의료개혁 문제가 거론되면 벙어리가 된다. 공화당 후보들은 자기들이 의회를 장악하면 이 법을 폐지하겠다고 공언하지만 대안을 내놓지는 못하고 있다.

그러니 인신공격과 공허한 슬로건이 난무할 수밖에 없다. 그 와중에 등장하고 있는 것이 소위 티 파티(Tea Party) 운동이다. 영국 식민지 정부의 조세정책에 반기를 들고 보스턴에서 차(茶) 상자를 바다에 던져 버렸던 미국 독립운동사의 한 사건의 이름을 따서 세금과 정부지출 감축을 강력하게 주장하는 일종의 시민불복종 운동이다.

약간의 선거법상의 변화도 가세했다. 이제까지는 개인 및 등록된 정치집단만이 특정 후보를 지지 또는 반대하는 광고를 게재할 수 있었다.

그러나 금년 1월 미 대법원은 표현의 자유를 확대한다는 취지로 기업의 회사경비 지출 및 비등록단체의 지출을 허용했다. 유명기업들은 직접 광고를 내지 않고 등록 또는 비등록 정치단체에 광고비용을 대고 있다.

정책 대신 돈과 티 파티

아이오아(Iowa) 주의 브루스 레일리 민주당 하원의원은 재선이 불확실하게 되었다. 아메리칸 미래기금(American Future Fund)이라는 단체가 여러 개의 지역 TV에 30초짜리 광고를 쉴새 없이 내보내고 있는데 내용은 그가 그라운드 제로(9·11 테러 현장)에 이슬람교회 건설을 지지했다는 것이다.

응답하는 정치를 위한 센터(Center for Responsive Politics)는 이런 단체들의 광고비 지출금액이 미 전역에서 약 2억달러에 달할 것으로 추산했다. 이를 두고 지나친 돈의 영향으로 민주주의가 위협받고 있다고 걱정하는 의견도 있다.

그러나 민주당 패배의 원인제공은 그 누구도 아닌 대통령이 했다. 다른 모든 것은 지엽적이다. 그의 대선공약은 미국의 국민이라면 소득수준을 불문하고 최소한의 의료서비스를 받을 수 있게 하겠다는 것이었다.

국민의 기본적 건강보호를 국가의 의무로 규정한다면 그 의료비용 지불도 국가가 관리해야 함이 마땅하다. 그 가장 단순한 모델은 국가제공 의료공급이다. 영국의 국가 건강서비스(National Health Service), 캐나다의 메디케어, 타이완의 국가 건강보험 등이 모두 이런 제도에 해당한다.

관련 이해집단의 당연한 저항 때문에 의료보험시장을 일거에 구조조정할 수는 없었다 하더라도 '퍼블릭 옵션'이라는 장치를 도입해 사설보험회사와 국영보험회사의 공존을 시도했던 노력마저도 정치인들의 타협 끝에 이루어내지 못했다.

이를 방치한 것은 오바마 대통령이다. 불완전한 개혁은 개악일 터이다. 턱없이 비싼 보험에 의무적으로 가입해야 하는 자영업자들, 종업원들의 의료보험을 대납해 주어야 하는 중소기업인들, 그리고 저소득층의 보험료를 무상으로 대주는 정부를 못마땅해 하는 다수의 일반인들이 어떤 심정으로 투표에 임할까?

불완전한 개혁으로 원망 확산

▲ 김국주 전 제주은행장 ⓒ제주의소리
공화당이 지배하는 하원에서 이 법의 폐지는 어렵더라도 불능화는 가능해 보인다. 제대로 집행하려면 약 1000억달러의 예산이 100여 건의 안건에 포함돼 의회의 개별승인을 받아야 하기 때문이다.

문제는 이러한 '불능화 현상'이 의료개혁 분야에 그치지 않는다는 데 있다. 산적한 사회 문제 해결이 대부분 뒤로 미루어질 것이다.

오바마는 '타협을 하여 대통령 재선을 하기보다 옳은 일을 하다 단임에 그치겠다'고 말했다. 그러나 바라건대, 타협하다 단임으로 그치지 말고 옳은 일을 끝까지 주장하다가 재선되었으면 한다. / 김국주 전 제주은행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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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기사는 내일신문에도 실린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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