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네심방 알아줘야 제주문화가 산다

제주에 최상돈이란 가수가 있다. 노래를 참 잘한다. 곡도 잘 만들어서 누구나 쉽게 공감할 수 있다. 4.3 현장을 찾아다니며 연출되지 않은 공연도 한다. 그곳이 어디든 고통 받는 사람들이 있는 곳, 제주의 상처가 배인 곳이면 그는 늘 '현장'에 선다. 그 현장에서, 주민들과 막걸리잔이라도 기울일라 치면, 곧 그의 ‘목포의 눈물’ 요청이 쇄도하기도 하는데, 미안한 얘기지만, 나는 조용필이나 한영애의 그것보다 최상돈의 ‘목포의 눈물’을 더 좋아한다.

 그런데 그는 정작 자기 노래를 담은 음반 한 장 아직 가지지 못했다. 수십 년 동안 노래에 온 삶을 바치며 아직 장가도 못간 그가 제대로 된 음반 하나 갖고 있지 못한 게 못내 아쉬웠다. 그래서 올 봄 즈음에는 ‘상도니 노래 날개 달아주기’ 모임이 시작되었다. 뜻맞는 사람들끼리 십시일반 모아서 최상돈을 ‘데뷔’시키자는 것이다. 말이 ‘데뷔’지, 그의 노래, 아니 그의 삶을 오롯이 한 장의 음반으로 만들어보자는 것이다. 평생 현장에 헌신해 온 그에게 최소한의 보답이라도 하자는 취지도 덧붙여진다.

▲ 노래꾼 최상돈. ⓒ제주의소리 DB

 그의 음반에는 그의 노래가 좋아서 후원에 참여한 사람들의 이름도 빼곡히 한 자리를 차지하게 될 것이다. 음반이 만들어지면 거창하게 들릴지 모르지만, 전국 투어에도 나서 보기로 했다. 제주와 같은 아픔을 겪었던 지역들, 예를 들어 평택이나, 부안 등지를 다니면서 현장의 가수끼리 만남을 엮고 비슷한 처지의 지역끼리 서로 보듬고 교류하자는 것이다. 서울 대학로의 공연장에서도 제주 가수의 노래를 통해 ‘제주’를 들려주면 좋겠다.
 
 비단 제주의 가수 최상돈을 말하려고 한 것만은 아니다. 정작 최상돈은 머쓱해하며, 그럴 필요 없다 말리기도 하고, 자신 때문에 모여서 걱정하고 때로 옥신각신 하는거 보면서 상처도 받았다고 하지만, 이번 일은 최상돈 만을 위한 것이 아니다.
 
  '머리에 꽃을'이라는 축제가 있었다. 육지와 제주를 오가는 배나 제주 마을의 곳곳을 돌며 퍼포먼스와 참여의 예술로 만들어 가는 이 축제가 서울에서는 몇년 전 '올해의 예술상'을 수상하기도 하며 각광받았지만, 정작 제주에서는 무관심을 견디지 못해 중단되고 말았다. 여기에 더해 이를 주도하며 제주의 새로운 예술세계를 추구했던 '테러J'라는 창작그룹마저 얼마 전 안타깝게도 해체되고 말았다. '제주사람' 오경헌 감독이 만든 제주민의 삶을 풍자적으로 만든 영화 '귀것'은 한일해협영화제 대상 수상과 국내 유명영화제 개막작으로 소개될 정도로 호평을 받았지만, 제주에서는 극히 일부만이 관심을 보였을 정도다. 그 외에도 이런 사례들은 많을 것이다.

 지역에서 거리문화, 현장예술을 끌고 가고 있는 이들이 많다. 그런데 그들의 삶이란 녹녹치 않다. 문제는 지역에서조차 그 사람들을 무슨무슨 행사 때 ‘써 먹을 줄’만 알았지 키우려는 생각은 잘 안하게 되는 경우가 다반사라는 것이다. 프로젝트 수준은 아니더라도 그들의 삶과 현장문화를 지키기 위해 함께하는 노력이 필요하다.

▲ 길거리 축제 '머리에 꽃을'을 준비하고 있는 간드락 소극장 모습. 이 축제는 '올해의 예술상'에 선정되기도 했지만 정작 제주의 무관심을 견디지 못하고 공연이 중단되고 말았다. ⓒ제주의소리 DB

 제주 속담에 ‘동네 심방 안 알아준다'는 말이 있다. 실력이나 재능은 있지만, 오로지 언제든지 찾으면 볼 수 있는 동네(지역)사람이라고 도무지 키워줄 생각 안한다. 그래서 무슨 무슨 행사나 필요한 '현장'에는 노래 불러달라고, 공연해달라고 하면서 그들의 삶이야 어떻든 술 한 잔 같이하면 그만이라는 현상을 빗대어 볼 수 있는 말이다.

 이를 좀 더 확장하게 되면, 언제까지 '서울'과 '제도'가 주도하는 문화 권력에 의존할 것인가 하는 문제와 연결된다. 물론, 서울에도 여전히 거리의 문화는 마이너이다. 한편, 아직 지역의 문화는 서울로 상징되는 문화 권력에 예속된다. 독립문화니, 민중문화니 하는 것도 크게 다르지 않아 보인다. 때문에 지역에 좋은 가수, 좋은 예술가가 있어도 큰 행사나 기획을 준비하게 되면 무대에 누구를 초청할까 하면서 '서울'의 리스트부터 뒤지게 된다.

 모든 텍스트는 서울에서 온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우리 사회에 대한 시각, 시대 담론은 말할 것도 없고, 지역의 문화와 자연에 대한 이야기조차 서울에서 나온다. 한창 각광을 받고 있는 ‘올레’와 관련된 책도 서울에서 나온다. 물론 올레를 걸었던 경험과 이야기는 누구든지 풀어낼 수 있겠지만, 누구보다 제주의 생태와 문화를 잘 이해하고, 어릴 때부터 살아온 터전이기도 한 고향의 이야기가 서울로부터 전해지다니, 반성할 일이다. 우리 안에서부터 ‘책 내는 버릇’이 바이러스처럼 퍼졌으면 좋겠다. 그것은 제주를 남기는 기록이고, 제주를 알리는 홍보이자, 제주를 키우는 문화재생산이기도 하다.

 돌아보면, 제주의 삶과 문화를, 자연을 누구보다도 잘 엮은 책으로, 음반으로, 영화로 풀어낼 수 있는 사람들이 바로 우리 안 곳곳에 있음을 본다.

▲ '부스뮤직레코드'의 부세현 대표. ⓒ제주의소리 DB

 그런데, 그들의 삶이란 작정하고 제도에 얹혀 가거나, 혹은 서울권력과 매칭되는 방식이 아니면 힘겹기 마련이다. 그리고 필히 그것은 주류질서 내에서 스스로 변질될 위험을 감수할 수밖에 없다. 최상돈처럼 그것을 거부한 댓가로 주어진 삶의 힘겨움이야 견뎌내겠지만, 그 속에서 피어난 예술은 서울이나 주류의 그것과 견줄 수 없는 값진 산물일진데, 너무나 아까운 것이다. 제도가 아닌, 서울로부터 내려오는 주류질서 밖 이 곳에서 우리 스스로 창조하는 문화의 질서란 다름 아닌, 지역 공동체에 혼을 일으키는 일이다. 사회 전체적으로는 문화다양성을 열어가는 길이 될 것이다. 

 수년 전, 서울 출장 때의 일이다. 출장일을 마치고 혼자 어스름한 저녁의 인적도 드문 서울 거리를 걷고 있는데, 어디선가 노랫소리가 들려 왔다. 자세히 보니 건너 편 잘 보이지도 않는 어두운 모퉁이에서 한 여성이 기타를 치며 마이크까지 세우고 매우 열정적으로 노래를 부르고 있었다. 그 때, 그녀는 도대체 무엇을 위해서 노래를 부르고 있는 것일까 하는 의문을 내내 놓지 못했던 기억이 새롭다. 사람이라곤 드문 어두운 겨울 거리의 저녁, 삭막한 공간에 퍼지는 그 노래 덕에 나의 무겁던 발걸음은 행복해졌지만, 그녀의 노래는 앞으로 어떻게 이어져 갈까 하는 의문도 더해졌다.

▲ 고유기 ⓒ제주의소리
 광주의 '행복발전소'라는 곳에서는 ‘광주전남 가수 키우기 프로젝트’라는 것을 벌이고 있었다. 제주에서도 최근 '부스뮤직 레코드(Boos Music Records)'라는 곳에서 제주의 창작 음악인들을 키우는 일에 나서고, '양호진과 음악이야기'같은 자발적 노력들이 생겨나고 있다.
 
 지역의 가수를 키우자. 상업적 공간으로 방치되고 있는 지역의 대학로를 메시지가 생산되는 예술장소로 만들어가자. 주류적 생산체제에 쫓겨 '촌'으로 들어가 자신 만의 예술을 갈구하는 사람들, 16mm 카메라 하나 둘러매고 이곳 저곳 사람과 시대를 담으려 애쓰는 예술가들이 당당하게 자신의 업에 몰두할 수 있도록 문화게릴라들을 ‘데뷔’시켜내야 한다. 공감과 연대를 통한 비주류의 방식으로 말이다. /고유기

 * 가수 최상돈 음반 후원에 참여하시려면  http://cafe.daum.net/sdXover 을 참고하시고, 후원계좌는 <<제주은행 12-01-080704, 예금주 최상돈>>입니다.
** 부스뮤직 레코드(Boos Music Records)에서는 제주가 고향이거나 제주에 사는 뮤지션들을 대상으로 '데뷔'지원을 위한 상시모집을 벌이고 있습니다.
   (문의: limboart@hanmail.net, 블로그: http:// blog.daum.net/boosproject)
*** 여럿 뮤지션들이 참여하는 '양호진과 음악이야기'가 매월 한라아트홀 소극장에서 열리고 있습니다.  <제주의소리>

<고유기 시민기자 / 저작권자ⓒ제주의소리. 무단전재_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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