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정계층구조 개편 주민투표와 관련해 제주대 윤양수 교수가 시군 폐지의 위헌성과 함께 주민투표의 위법성 문제를 제기하는 내용을 기고했습니다. 장문이긴 하나 토론의 활성화를 위해 전문을 게재합니다. 이와 관련한 다양한 의견을 적극 기다립니다./편집자주 

   1. 도내 시·군 폐지의 위헌성         
  
  만약 근간에 제주지역에서 논의되고 있는 주민투표의 대상인 두 가지 안 중에서 소위 혁신안이 주민투표결과 투표자 과반수의 찬성을 얻고, 그것을 입법화(立法化)한 법률이 제정될 경우, 필연코 그 법률은 어느 조문에서 「① 제주도내 기초지방자치단체인 시·군을 폐지한다. ② 종전의 제주시와 북제주군지역에 지방자치단체가 아닌 행정시를, 서귀포시와 남제주군지역에 지방자치단체가 아닌 행정시를 각각 설치할 수 있다. ③ 제2항의 지방자치단체가 아닌 행정시의 長은 제주도지사가 임면(任免)한다. ④ 종전의 제주도내 각 시·군의 사무와 자산(資産)·부채(負債) 기타 모든 권리와 의무는 모두 제주도에 귀속한다」는 내용을 규정하게 될 것이다.
 
  필자는 도내 시·군을 폐지하는 법률, 즉 위와 같은 규정을 둔 법률이 제정·시행될 경우에, 제주지역에서 기초지방자치단체가 없어지고 제주지역 유권자들은 기초지방자치단체장·기초지방의회의원의 선거권·피선거권을 잃게 될 것이므로, 지방선거시에 시·군의회의원선거에 입후보하고 싶지만 입후보할 수 없게 된 자를 포함하여 도내 유권자 중 어느 누가 그 법률규정으로 인하여 자신의 참정권이 불평등하게 침해되었다고 주장하면서 헌법재판소에 헌법소원을 제기할 수 있고, 그 법률규정이 헌법재판소에 의하여 위헌(헌법 제11조 위반)으로 판시될 가능성이 높다고 주장한 바 있다.
 
  그런데 이 문제에 관하여, 행정자치부나 제주도당국은 이미 법적 검토를 마쳤다 하며, 위헌이 아닌 것으로 판단하고 있는 듯 하다. 그리고 행정자치부나 도당국의 그러한 판단의 근거가 되는 것은 ① 지방자치단체의 폐치(廢置)·분합(分合)을 법률로 정하도록 하고 있는 지방자치법 제4조 제1항과 ② 「경기도 남양주시 등 33개 도농복합형태의 시 설치 등에 관한 법률」이 헌법재판소에 의하여 합헌으로 판시(判示)된 사례(헌재1994.12.29, 94헌마201)인 듯 하다.
 
  그러나 필자는 지방자치법 제4조 제1항과 헌재1994.12.29, 94헌마201의 판시(이는 지방자치단체의 폐칟분합에 관한 판시임)가 시·군의 폐치 분합이 합헌이라는 논거가 될 수 있어도, 도내 시·군 폐지로 인하여 제주지역 유권자들의 참정권이 불평등하게 제한되는 위헌성을 해소시키는 논거가 될 수 없는 것으로 보며, 이 외에 제주지역 유권자들에 대한 불평등한 참정권제한이 합헌이라는 다른 논거가 있다면 그것이 어떤 것인지 알고 싶다.
 
  여기서 지방자치단체의 폐칟분합이란 지방자치단체의 신설(新設) 또는 폐지를 수반하는 지방자치단체의 구역변경을 말한다.

지방자치단체의 폐치분합은 ① 분할(分割 : 하나의 지방자치단체를 둘 이상의 지방자치단체로 나누는 경우), ② 분립(分立 : 어느 지방자치단체의 일부구역을 새로운 지방자치단체로 만드는 경우), ③ 합체(合體 : 둘 이상의 지방자치단체를 합하여 하나의 새로운 지방자치단체로 만드는 경우), ④ 편입(編入 : 어느 지방자치단체를 다른 지방자치단체에 흡수시키는 경우)의 형태로 이루어질 수 있다. 이러한 지방자치단체의 폐칟분합으로 인하여 관련된 지방자치단체 주민들의 참정권이 불평등하게 제한되지 않는다.
  
 필자는 소위 혁신안대로 도내 시·군을 폐지하고 그 대신에 지방자치단체가 아닌 2개 통합시를 설치하는 것은, 지방자치단체의 폐칟분합과 다른 것이고, 그것이 도내 유권자들의 참정권을 불평등하게 제한하는 것이 되므로, 헌법상 허용될 수 없다고 본다.

 전국의 다른 지역과 다르게, 제주지역에서만 기초지방자치단체가 인정되지 않고, 제주지역 유권자들만 기초지방자치단체장·기초지방의회의원의 선거권·피선거권을 갖지 못하는 것이 헌법상 허용된다면, 우리나라에서 법률로써 지역에 따라 1층제·2층제 또는 3층제의 지방자치단체체제를 만들 수 있고, 법률로써 지역에 따라 국민의 참정권을 넓게 또는 좁게 인정할 수 있게 된다는 것인데, 과연 위헌법률심사권을 가진 헌법재판소가 그러한 법률들을 모두 합헌이라고 판시할 수 있을까?

  물론 국민의 기본권이 절대적인 권리라고는 할 수 없다. 우리 헌법 제37조 제2항에는 ‘국민의 모든 자유와 권리는 국가안전보장·질서유지 또는 공공복리를 위하여 필요한 경우에 한하여 법률로써 제한할 있으며, 제한하는 경우에도 자유와 권리의 본질적인 내용을 침해할 수 없다’고 규정하고 있다. 그리하여 부득이한 필요가 있을 때에 국민의 기본권도 법률에 의하여 일부 제한될 수 있다.

그러나 그러한 경우에도 ‘정칟경제·사회·문화의 모든 영역에 있어서 각인(各人)의 기회를 균등히 한다’는 평등원칙이 우리 헌법의 기본원리가 되고 있기 때문에, 법률에 의한 기본권제한은 평등하게 이루어져야 한다.

전국적으로 광역지방자치단체를 모두 기초지방자치단체로 개편한다든가 기초지방자치단체를 모두 폐지하고 그 대신에 수십 개의 광역지방자치단체를 설치할 것을 정하는 법률이 제정될 경우, 그것은 국민의 참정권을 불평등하게 제한하는 것이 되지 않는다(이 경우에도 국민참정권의 확대가 아니라 축소가 되므로 다른 관점에서 문제가 야기될 소지는 있다).
 
  그리고 우리 헌법 제117조 제2항에는 ‘지방자치단체의 종류는 법률로 정한다’고 규정되어 있다. 따라서 현재 우리나라에서 광역지방자치단체의 종류로서 인정되고 있는 특별시·광역시·도 외에 특별자치도를 설치하는 것을 법률로 정할 수 있고, 기초지방자치단체의 종류로서 인정되고 있는 시·군·자치구 외에 특례시를 설치하는 것을 법률로 정할 수 있으며, 특별자치도나 특례시에 대한 여러 가지 행정특례(행정사무·조직·권한·절차·재정상의 특례 등)를 법률로 정할 수 있다.
 
  그러나 특별자치도나 특례시를 설치하면서 국민 개개인에게 보장되는 참정권을 그 특별자치도 또는 특례시의 주민들에 대하여서만 불평등하게 제한한다면, 그 지역 주민들의 참정권·평등권(더 나아가 직업선택의 자유권까지)의 침해라는 위헌문제가 야기될 수 있는 것이다.
 
  2. 도내 시·군 폐지에 관한 주민투표의 위법성

 행정자치부나 제주도당국이 도내 시·군 폐지의 위헌성 여부는 관계법률이 제정·시행된 후에 헌법재판소가 판단할 문제로 단정해버리고, 오랫동안 끌어온 도내 행정계층구조개편 문제를 하루속히 매듭짓기 위하여, 도내 시·군 폐지를 굳이 지방자치법 제4조 제1항의 지방자치단체의 폐칟분합의 일종이라 하면서 그에 관한 주민투표를 실시하려 한다면, 필자는 그 주민투표를 위법하지 않게 제대로 실시할 것을 촉구한다.

 지방자치단체의 폐칟분합이나 그에 관한 주민투표에 관련된 주요 법규정은 다음 3개의 규정이다.

* 지방자치법 제4조 제1항 : 지방자치단체의 명칭과 구역은 종전에 의하고 이를 변경하거나 지방자치단체를 폐칟분합할 때에는 법률로 정하되, 시·군 및 자치구의 관할구역 경계변경은 대통령령으로 정한다.

* 지방자치법 제4조 제2항 : 제1항의 규정에 의하여 지방자치단체를 폐칟분합하거나 그 명칭 또는 구역을 변경할 때에는 관계지방자치단체의 의회의 의견을 들어야 한다. 다만, 주민투표법 제8조의 규정에 의하여 주민투표를 실시한 경우에는 그러하지 아니하다. 

* 주민투표법 제8조 제1항 : 중앙행정기관의 장은 지방자치단체의 폐칟분합 또는 구역변경, 주요시설의 설치 등 국가정책의 수립에 관하여 주민의 의견을 듣기 위하여 필요하다고 인정하는 때에는 주민투표의 실시구역을 정하여 관계지방자치단체의 장에게 주민투표의 실시를 요구할 수 있다. 이 경우 중앙행정기관의 장은 미리 행정자치부장관과 협의하여야 한다.

 위의 지방자치법 제4조 제1항과 제2항은 지방자치단체를 폐칟분합할 경우 사전에 주민투표법 제8조에 의한 주민투표를 실시하거나 관계지방의회의 의견을 들어서 법률로써 정하도록 규정하고 있고, 주민투표법 제8조 제1항은 지방자치단체의 폐칟분합 등 국가정책의 수립에 관하여 필요한 때에는 중앙행정기관장이 주민투표의 실시구역을 정하여 관계지방자치단체의 장에게 주민투표의 실시를 요구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여기서 중앙행정기관장이 주민투표법 제8조에 의하여 지방자치단체의 폐칟분합을 위한 주민투표를 실시해주도록 요구할 경우, 그 요구를 받을 관계지방자치단체의 장은 곧 폐칟분합의 대상인 지방자치단체의 장이라고 해석해야 마땅할 것이다. 그리하여 행정자치부장관이 이번에 도내 시·군 폐지에 관한 주민투표의 실시를 요구하려면 폐지 대상인 시·군의 장(시장·군수)에게 요구해야지, 도지사에게 요구할 것이 아니라고 본다.

‘지방자치단체를 폐칟분합하거나 그 명칭 또는 구역을 변경할 때에는 관계지방자치단체의 의회의 의견을 들어야 한다’는 지방자치법 제4조 제2항에서의 ‘관계지방자치단체’가 폐칟분합의 대상인 지방자치단체를 의미하는 것임이 분명한 점까지 고려하면, 이번에 행정자치부장관이 도내 시·군 폐지에 관한 주민투표의 실시를 제주도지사에게 요구하고, 그 요구에 따라 도지사가 발의하여 주민투표를 실시할 경우, 그것은 주민투표법의 관계규정에 위배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광역지방자치단체나 기초지방자치단체는 모두 각각 독립적인 공법인(公法人)이고, 자신의 자치사무를 법령의 범위 안에서 자율적으로 처리할 수 있는 독자적인 행정주체들이며, 법령에 의거하여 자치사무를 처리하는 범위 내에서는 광역지방자치단체와 기초지방자치단체가 상하(上下)관계에 있는 것이 아니다. 그리하여 주민투표법에 다른 지방자치단체의 권한(자치행정권·자치입법권·자치재정권·자치조직권 등) 또는 사무(자치사무 등)에 속하는 사항을 주민투표에 부치지 못하게 하는 규정까지 두고 있는 것이다(同法 제7조 제2항).

 아무리 제주도내에 있는 모든 시·군의 폐지에 관한 주민투표라고 하더라도, 시·군이 독자적으로 법인격과 자치사무·자치권을 갖는 지방자치단체인 이상, 시·군의 폐지 문제에 있어서는 다른 (광역)지방자치단체의 간섭없이 폐지대상인 각 시·군단위로 주민투표를 실시하고(주민투표안에 대한 설명회도 해당 시·군의 주관으로 실시해야) 당해 시·군 주민들의 의견을 개진할 수 있어야 하는 것이 아닌가?
 
 근간에 논의되는 주민투표가 제주도의 자치모형 결정을 위한 것이어서, 굳이 도지사가 발의주체가 되어야 할 것이라고 한다면, 그러한 주민투표는 마땅히 주민투표법 제7조에 의한 주민투표가 되어야 할 것이고(주민투표법 제7조 제2항의 규정으로 인하여 실제로는 실시불가함), 주민투표법 제8조의 국가정책에 관한 주민투표로서 실시할 것은 못되므로, 행정자치부장관이 도지사에게 주민투표실시를 요구해서도 안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번의 주민투표를 국가정책에 관한 주민투표라고 하면서, 주민투표 대상에 제주도내 기초지방자치단체를 존치시키는 안과 폐지시키는 안이 제시될 경우, 이러한 주민투표를 필요로 하는 국가정책은 도내 시·군을 존치시켜도 되고 폐지시켜도 되는 국가정책이라고 할 수 있는데, 그러한 국가정책이 과연 어떠한 목적의 정책인지도 궁금하다.   

 행정자치부장관이 도내 시·군폐지에 관한 주민투표를 굳이 주민투표법 제8조에 의한 국가정책에 관한 주민투표라고 하면서, 그 실시를 관계지방자치단체의 장인 시장·군수에게가 아니라 도지사에게 요구해서 도지사가 발의한 주민투표가 실시되고, 그 결과에 따라 소위 혁신안을 채택한 법률이 제정·시행될 경우, 헌법소원심판과정에서 도내 시·군 폐지 규정이 입법상 필요적 사전절차(법률제정 이전에 거쳐야 하는 지방자치법 제4조 제2항에 의한 관계지방자치단체의 의회의 의견수렴 또는 주민투표실시절차)에 있어서 중대한 위법이 있다 하여 무효가 될 수도 있음을 유념해야 할 것이다. 국민들이 법에 어긋난 행위를 했을 경우에 과태료부과 등 제재를 과하기도 하는 행정기관이 스스로 법에 어긋나는 일을 할 수는 없다고 본다. 

 한편, 주민투표의 효력에 관하여 이의가 있어서 제기되는 주민투표소청·주민투표소송에서의 피소청인·피고는 관할선거관리위원회 위원장이 되는(주민투표법 제25조 제1·2항) 점을 감안해서라도, 관할 선거관리위원회는 이번의 도내 시·군 폐지에 관한 주민투표가 적법하게 실시되도록 필요한 조치를 강구하여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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