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유기 칼럼] 연평도 포격 사건과 평화의섬 제주

북한의 연평도 포격사태 이후 서해상에서 대대적인 한미연합훈련이 시작되었다. 연합훈련이 벌어지는 곳은 연평도 이남 지역이지만, 그 작전권역은 북한은 물론, 중국영토 일부까지 포괄하고 있다. 이에 대해 KBS는 미 항공모함의 능력, 우리나라의 이지스함이 갖는 타격 정밀도 등 참가전력의 세세한 내용까지 포함하는 훈련 소식을 매우 크게 보도한 바 있다.

 서해상에 대규모로 집중된 한미연합 훈련소식을 텔레비전 화면으로 보던 6학년 딸아이가 내게 물어온다.

 “그럼, 제주도에 해군기지 만들어지면, 제주도도 연평도처럼 될 수 있겠네?”

 나는 모른척 대답을 피했다. 해군기지 반대운동을 하면서, 중요하게 내세온 반대이유 중의 하나가 제주에 군사기지가 만들어지면 분쟁발생시 주요 타깃이 될 수도 있다는 것이었는데, 막상 딸아이의 의문 앞에서는 말을 잃어버렸다. 바로 눈앞에서 벌어진 연평도 사건을 가지고  ‘우리가 살고 있는 이 곳’의 관련성까지 끄집어 내는 것이 왠지 아직은 어린 아이앞에서 가혹하다는 생각이 앞섰기 때문이다.

 연평도 포격사건 이후 정부는 ‘강력한 응징’을 수차례 밝혀왔고, 북한측도 ‘무자비한 대응’을 계속적으로 밝혔다. 이와 같은 남북의 입장대로라면, 사실상 전쟁 수준의 군사적 대결로 나갈 수밖에 없는데, 그렇다고 남과 북이 실제 전쟁을 원하는 것이 아님은 분명해 보인다. 평화논리를 떠나서도, 남북의 군사적 대결이란 서로의 생명과 재산, 경제적 피해를 감수할 수 밖에 없기 때문이다.

 ‘선제타격’ 운운했던 이명박 정부도 정작 북의 무력도발에 직면해서는 ‘제한적 자위’ 이상의 어떤 추가적인 군사적 대응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것을 직접 겪고 있는 셈이다. 때문에 오히려 이번 연평도 포격사태가 시종일관 북에 대한 강경입장을 고수해온 현정권에게 자세의 전향을 촉구하는 목소리를 한편에서 키우고 있기도 하다. 

 그러나 연평도 포격사태 일주일만에 나온 대통령의 대국민 담화는 이른바 ‘햇볕정책’을 통해 이뤄진 지난 정권기의 남북화해무드를 ‘굴욕적 평화’로 규정하고, 중국이 제안한 6자회담 거부를 포함한 대북강경기조를 재천명하는 것이었다.

 북한의 연평도 포격사태는 존재감을 잃은 채 추상으로 떠돌던 ‘평화’를 국민들의 생각안에 현실문제로 내려앉혔다. 바로 ‘평화를 위해 무엇을 준비해야 하는가’하는 것이다. 한국전쟁때도 포격 한 번 안 당하고, 오히려 피난민들의 거처가 되었던 연평도 주민들에게는 더할 것이다.

 그런데, ‘평화’라는 동일한 지향은 그것을 위해 무엇을 준비해야 하는가 대한 문제에 이르면 적어도 서로 다른 두 가지 차원의 극명한 대비를 드러낸다. 이미 많은 보수단체, 보수언론들이 북한에 대한 단호하고도 강력한 무력대응을 주문하며 이명박 정부의 대응이 미온적임을 비난하며 나서고 있다. 또 한편에서는 군사적 맞대응 보다는 남북의 적대와 갈등관계를 상호화해와 협력의 관계로 바꿔 나가는 것이야말로 한반도 평화를 위한 충분조건이라는 지적이 잇따른다. 한마디로 한반도의 평화를 위해서는 강력한 힘이 우선되어야 한다는 논리와 평화는 평화적인 방법과 노력이 전제되어야 한다는 것으로 갈려 있는 것이다.

 군사력을 키워 상대가 넘보지 못하도록 하는 것도 평화의 방법일 수 있다. 그러나 군사적 대응은 늘 작용에 대한 반작용처럼 사후대응일 수 밖에 없다. 그러한 사후대응조차 벌어진 상황안에서 작동되지 않는다면 그 대응이란 군사적 보복 성격을 가질 수 밖에 없어 자칫 전쟁으로 비화될 가능성이 크다. 상대를 꼼짝하기 어렵게 눌러놓는 물리적 억지력을 바탕으로 한 평화는 언젠가 서로에게 큰 상처만 남기며 깨지고 말 것이다. 그런 ‘불안한 평화’를 반복하는 것 보다는 정상적이고 호혜적인 ‘관계’가 바탕이 된 평화를 하나의 체제로 만들어나가는 노력이 필요하다. 그것은 그 과정의 균열을 넘어서는 인내와 노력이 전제되어야 한다. 그럼에도 재차 이뤄진 강경대응 선언은 군사력 증강 말고 후속할 수 있는 어떤 노력들을 기약할 수 있을까? 더구나 상대를 힘으로 제압하고서 얻는 평화야 말로, 결국 기약할 수 없는 우리 내부의 동원과 규제 또한 강제할 수 밖에 없다는 점에서 스스로의 출혈마저 감수할 수 밖에 없을 것이다.

 연평도 포격사태로 남북이 대치하는 지금, 형해화 돼 버린 평화의 섬의 논리를 다시금 되새겨본다. 제주가 ‘평화의 섬’으로 지정된지 5년이 훌쩍 지났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그 동안 제주에서는 군사기지 건설을 둘러싼 논란이 제일 큰 문제가 되었다.  ‘세계평화의 섬’ 제주는 비단 제주의 비전으로만 제안된 것이 아니다.  ‘동아시아 외교중심지 육성’, ‘주변국과의 협력체제 강화’, ‘국제평화기구 설립’과 같은 의제들은 동북아평화체제를 위해 국가차원에서 상정된 제주의 역할론에 다름 아니다. 그리고 그것은 지금과 같은 군사적 긴장과 대결을 사전에 예방함은 물론, 각국의 상호이해를 넘는 공동체적 지향을 향한 ‘적극적 평화의 장소’로서 ‘제주의 위치’에 대한 기대가 담긴 것이었다.

 지난 5년 동안, 제주가 사문화된 법조항이 아니라, 현실에서 살아 움직이는 평화의 섬으로서 그 역할을 조금씩 넓혀 왔다면 어땠을까? 지금과 같이 남북간의 긴장이 첨예해질때 주변국은 물론, 한반도와 동북아의 평화를 갈망하는 세계의 시민들이 제주에 모여 각국이 자국의 이해를 넘는 평화의 노력에 나설 것을 촉구하는 대회를 열고, 감귤보내기 등으로 북한과의 교류에 앞장서 온 제주에서 남북간의 긴장을 진정시키고 화해로 나아가기 위한 어떤 국제적인 노력들이 펼쳐지는지 세계가 주목하는, 그런 곳으로 제주가 서 있었다면 하는 생각을 해본다.

 얼마 전 제주를 찾은 이종석 전 통일부 장관은 평화의 전제는 ‘관계의 정상화’에 있음을 역설한 바 있다. 아울러, 그는 동북아에서 일치되지 않는 두 가지 현실이 상존하고 있음을 지적했다. 각국간의 경제교류는 날로 급격해지는데 반해, 한편에서는 군비경쟁과 같은 냉전질서 또한 계속되고 있다는 얘기이다. 그러면서 동북아 평화를 위해서는 소위 ‘1.5 트랙’의 접근법이 필요함을 주장하였다. 국가와 국가를 넘는(민간차원의) 교류와 소통의 노력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그는 제주야말로 그것을 이끌 수 있는 ‘불멸의 평화기지’가 될 수 있고, 되어야 함을 강조하였다.

▲ 고유기 ⓒ제주의소리
  동북아 평화는 각국의 경제적 이해관계를 배경으로 움직일 수 없는 테제가 되어 가고 있다. 이것은 어떤 식으로든 동북아 각국 간의 긴장관계를 호혜와 협력의 관계로 전환시켜 나가야함을 당위지어 간다는 의미이기도 할 것이다. 여기에, 제주가 평화기지로서 얼마나 중요하고도 소중한 ‘장소’가 될 수 있는지, 역설적이게도 지난 수십년 동안 이를 확인시켜 주는 것은 허명이 돼 버린 ‘평화의 섬’이 아닌, 계속되는 군사기지의 요구라는 사실에 암울할 뿐이다.

<제주의소리>

<고유기 시민기자 / 저작권자ⓒ제주의소리. 무단전재_재배포 금지>

저작권자 © 제주의소리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