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여성 문화유적100] (43) 위미2리 버둑할망 돔박숲

『제주여성 문화유적 100』은 제주여성과 그들의 삶이 젖어있는 문화적 발자취를 엮은 이야기로, 2009년말 ‘제주발전연구원’에서 펴냈습니다. 『제주여성 문화유적 100』은 2008년에 이미 발간된 『제주여성 문화유적』을 통해 미리 전개된 전수조사를 바탕으로 필진들이 수차례 발품을 팔며 마을 어르신들의 이야기를 담아낸 노력이 깃들어 있습니다. 오늘 우리 제주가 있도록 한 ‘우리 어머니’의 이야기들이 담겨져 있습니다. <제주의소리>는 제주발전연구원과 필진들의 협조로 『제주여성 문화유적 100』을 인터넷 연재합니다. 제주발전연구원과 필진들에게 감사의 뜻을 전합니다. / 제주의소리

▲ 버둑할망 돔박숲 ⓒ양영자

나지막히 엎드려 숨 고르기를 하고 있는 위미 포구, 그 동녘에 곤(아래아)내골이 있다. 지금은 세천동(細川洞)으로 바뀌었지만, 가름을 내질러 포구로 들어가는 ‘가느다란 내’가 있다고 해서 ‘곤내골’이라 부른다. 한켠에 아낙들이 물을 길어다 먹었던 봉천수와 나물을 씻고 빨래도 했던 내(川)는 지금은 바싹 말라 삶의 흔적을 찾을 수 없다.

곤내에서 100미터쯤 걸어가면 버둑할망의 돔박숲(동백나무숲)이 있다. 13,200㎡(4000여 평)의 귤밭을 빙 두른 돌담 위로 훤칠하고 잘 생긴 돔박낭(동백나무)들이 도열하여 늘어 서 있다. 자박자박 10여 분 걸으면 한 바퀴를 돌 수 있다.

돌담 아래로 눈물처럼 후두둑 떨어져 빛바래가는 선홍색 동백 꽃잎들이 사월의 햇빛을 온몸으로 받아내고 있다. 숲보다는 성(城)이라고 해야 제격이다. 원형의 돔박숲은 그 안에 골목골목 길을 내고 살아가는 다섯 집안의 요새이다. 돔박새가 아름답게 울어 예는 돔형 극장이라고 하기에 부족함이 없다.

이 돔박숲을 가꾼 현맹춘(1858~1933) 할머니가 버둑할망이다. 그녀는 17세 되던 해 곤내골로 시집을 와서 생활고를 이기기 위해 해초 캐기와 품팔이 등을 하면서 어렵게 살았다. 그런 중에도 조(아래아)냥하고 절약하여 모은 돈 35냥으로 이곳 버둑(황무지)을 사들였다.

당시 이곳은 바람에 흙이 불릴 정도로 벵듸였다. 그래서 방풍림으로 소나무를 심었는데 끅베렝이(송충이)가 많아서 여러 모로 어려움이 많았다. 이에 버둑할망은 한라산의 곶에서 돔박 씨 한 말을 주워다 버둑을 주욱 둘러가며 심었다. 버둑이 귤밭으로 조성되자 할망이 조성한 돔박숲은 훌륭한 방풍림의 구실을 하게 되었다.

버둑할망은 슬하에 5남 2녀를 두었다. 지금도 버둑할망의 삼대 손들인 군위 오씨 일가가 다섯 골목에 옹기종기 살고 있다. 버둑할망은 자갈만 가득 있던 버둑을 골각지(호미)로 파서 땅을 개간하고 자식들에게 미래를 남겨주었다. 생활이 빈곤하여 위로 세 아들은 양자로 보내서 넷째아들이 부모 제사를 봉양하게 되자 그 아들에게는 20말지기를 물려주고 다른 아들들에게는 4~5말지기(600~700평)를 물려주었다.

동백숲 안내표지판이 서 있는 집에는 버둑할망이 가장 사랑했다는 막내아들의 큰며느리가 살고 있다. 그녀 역시 칠순을 훌쩍 넘겼다. 시할머니를 본 적이 없지만, 그녀가 들은 시할머니 버둑할망은 ‘보리밥, 감저밥(고구마밥) 해 먹으며 일군 귀한 땅 자손에게 물려준 억척스럽고 고마운 어른’이다.

시간이 되면 누가 가르치지 않아도 욕심 없이 툭, 고개를 떨어뜨리는 붉은 동백꽃은 인간이 가질 수 있는 게 그리 많지 않음을 깨우쳐준다. 그 꽃 처연히 떨군 자리에 돔박열매가 열리고, 그 열매가 다시 돌담 위로 도로록 도로록 떨어지면 여인네들은 돌담 아래로 모여 들어 못 다한 사랑을 줍는다. 그 열매로 돔박지름(동백기름)을 짜서 위 탈난 남정에게 먹이고, 애지중지하는 굴묵이궤에도 발라 윤기를 더한다. 그
리고 님 앞에 설 고운 모습 기약하며 머리에 바르고 다시 또 한 줄기 사랑을 꿈꾼다.

버둑할망은 버리고 얻고, 다시 버리고 얻는 삶의 윤회를 가르치며 오늘도 곤내골 사람들의 마음 속에 함께 살아 있다. 여든 넘어 딱히 할 일 없는 노인들은 소일거리로 돔박씨를 주워 근근이 생활을 잇고 있으니 버둑할망의 선물이야말로 꽃피는 영원이다. / 양영자

* 찾아가는 길 - 위미2리 위미농협 → 동쪽으로 1.5km → 천동 버스정류소 바다쪽으로 300m 지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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