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여성 문화유적100] (45) 신례리 예촌 일레당

『제주여성 문화유적 100』은 제주여성과 그들의 삶이 젖어있는 문화적 발자취를 엮은 이야기로, 2009년말 ‘제주발전연구원’에서 펴냈습니다. 『제주여성 문화유적 100』은 2008년에 이미 발간된 『제주여성 문화유적』을 통해 미리 전개된 전수조사를 바탕으로 필진들이 수차례 발품을 팔며 마을 어르신들의 이야기를 담아낸 노력이 깃들어 있습니다. 오늘 우리 제주가 있도록 한 ‘우리 어머니’의 이야기들이 담겨져 있습니다. <제주의소리>는 제주발전연구원과 필진들의 협조로 『제주여성 문화유적 100』을 인터넷 연재합니다. 제주발전연구원과 필진들에게 감사의 뜻을 전합니다. / 제주의소리

▲ 예촌일레당 내부 ⓒ양영자

청명 지난 마을은 쥐죽은 듯 정적 속으로 빠져든다. 고사리를 꺾으러 산으로 들로 나가 버린 빈집을 지키고 있던 개들은 낯선 객의 인기척이 반가워서인지 짖는 것을 포기하고 물끄러미 쳐다보고만 있다.

예촌일레당이 있는 마을 일대를 ‘당카름’이라 하고, 이 당을 ‘남밋당(나무밑의 당)’이라고 하며, 이 당에 좌정한 당신을 ‘남밋할망’이라고 한다. 200년 전에는 한 참 거리(4㎞)에 위치했는데 마을과 멀어서 다니기가 불편하여 이곳으로 옮겨왔다.

일레당의 도량 안에는 200여 년이 넘는 큰 대옥나무가 범상치 않게 둘러 있어 이를 뒷받침한다. 대옥나무 아래 자연석은 신체(神體)구실을 한다. 신체 아래에 4군데의 궤가 있고 그 궤 위의 엉덕에 지전, 백지 등을 걸어 둔다. 그래서 이 당의 마당에는 바람에 불린 지전, 백지가 가득 널려 있다.

마을사람들 대부분은 매달 7일과 8일에 이 당에 간다. 당신의 제일은 유월 7일과 8일, 동짓달 7일과 8일이다. 당의 호칭은 분명 ‘일레당’이라고 하면서 8일에도 다니는 것이 궁금했는데 진성기『무가본풀이사전』에 ‘서당한집 일뤳도오(쌍아래아)돕아기단청마을청’이라고 되어 있어 의문이 풀린다. 당신의 내력과 신화를 잊어버렸으나 당골들은 제일과 의례를 통하여 신화의 맥을 잇고 있는 것이다.

일레할망은 마을사람들의 산육과 치병을 담당한다. 집안의 크고 작은 일은 모두 이 당할망의 소관으로 마을사람들 대부분이 다닌다. 당에 갈 때는 곤밥 1기, 생선 한 마리, 지전, 천, 감주, 과일 등을 가지고 간다. 궤의 엉덕 쪽으로 각각 밥, 고기 등을 3번씩 케우리고 감주 한 잔을 비우고 나서 갖고 간 음식을 여기저기 뿌린다. 허물난 사람은 삶은 계란을 가져가기도 한다. 시험 때는 물론 아이의 운동회 때 달리기를 잘하게 해달라고 밥 한 사발, 제숙 한 마리를 들고 찾아간다. 외방 나가 사는 사람들도 당할망을 찾아와 문안 인사를 여쭙는다.

명절이나 제사가 끝난 후에는 마당 가득 음식이 ‘미삭하(아래아)게’ 쌓인다. 마을사람들 누구나 당할망 몫의 제물을 미리 차렸다가 제가 끝난 후 꼭 갖다 드리기 때문이다. 손님이 와서 유다른 음식을 마련해도 꼭 당할망 몫을 차려서 가져간다. 그렇게 쌓인 음식들은 개나 고양이들이 먹는다.

팔형제를 낳았으나 돌이 지날 무렵이 되면 부모를 버린 아기가 삼형제가 되고, 살아남은 오형제를 오로지 당할망에 의지하여 키웠다는 문갑득 할머니(76세). 세 아이가 아파서 먼저 보내야 했을 때 당할망 앞에서 눈물로 읍소하고, 네 아들 군인 갔을 때 죽장 다녔으며, 아이들 커가면서 사소한 근심이 있을 때마다 할망을 찾아 빌고 또 빌었다. 식게멩질을 하기 시작하면서 본격적으로 당에 다니기 시작하여 올해로
46년을 다녔다. 지금은 큰며느리에게 물려주어 큰며느리 역시 당골이 되었다.

당 올레에 도착한 할머니가 “쉿!” 하며 “이 당은 갈 때영 올 때영 말하지 않는 곳”이라고 당부한다. 헉, 이미 두어 시간 전에 당의 형태며 지전, 제물에 대해 맘껏 떠들고 돌아갔었는데 당할망의 노여움을 샀다면 어떡하지?

말없이 손으로 꾸욱꾸욱 가리키던 할머니는 당을 완전히 벗어나자 뒤도 돌아보지 않고 “조심해서 가라.”고 한마디 하더니 자기 집 올레로 휘적휘적 들어가 버린다. / 양영자

* 찾아가는 길 - 신례리 신례초등학교 → 서쪽으로 600m → 지점 신례 새마을금고 건너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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