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선제 앞서 제왕적 권한 이양이 먼저

                I. 우근민 도정의 특별자치관은 무엇일까  

  제주특별자치도가 출범한 지도 4년 반이나 지나고 있다. 이제는 특별자치도라는 이름이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지고 있는 듯싶다. 적어도 국제자유도시 추진을 위해서 제주의 지방자치가 남달라야 할 것이라는 공감대는 구축되어 있다고 볼 것이다. 그러나 타 시도와 구별되는 제주의 특별자치에서 특히 남다른 점은 무엇일까 하고 물어보면, 쉽게 ‘이거다’ 하고 말하기가 쉽지 않다. 지난 4년여 동안 툭하면 다른 시도와의 형평성을 내세우는 중앙정부의 강변만 들어와서 그런가. 아니면 본디 특별자치란 주어지는 게 아니라 만들어지는 것이라서 그런가. 그나저나 제주도민들에게 특별자치도라는 건 시군 기초자치가 없어진 허망함으로만 남는 게 일쑤이다.

  애초에 시군을 폐지하는 것이 왜 ‘혁신안’인지 의구심이 들었던 그 때를 돌아보면 괜스레 억울하기만 하다. 그 이후 제왕적 도지사가 전횡하는 것을 보면서 ‘혁신이라는 게 제왕적인 것’을 뜻하는 것이었나 생각하면, 씁쓸하기만 할 뿐이다. 시군 기초자치단체를 폐지하면서 제주가 얻은 것이 무엇인지 회의적인 만큼이나 시군 폐지에 대한 반감은 점점 더 늘어가고 있다. 3단계니 4단계니 하면서 특별법을 개정하느라 애쓰는 제주도정의 모습을 안쓰럽게 보면서도, 영리병원 문제로 특별법 개정이 발목이 잡힐 만큼 제주특별자치는 계속 제주가 무엇인가를 중앙정부에게 양보해야만 얻어지는 교환물에 불과한 것일까라는 생각만 든다. 그래서인지 제주가 때때마다 그렇게 애쓸 요량이면 무엇 때문에 애꿎게 시군만 폐지했는지 이해하기가 어렵다. 

  혹자는 제주도민이 너무 조급해 한다고 나무랄 수도 있다. 어떻게 특별자치가 하루아침에 뚝딱하고 만들어지는 것이겠는가. 좀 더 시간을 갖고 기다리면서 그리고 도민 스스로 애를 써야 하는 게 아니겠는가. 맞다. 도민 스스로가 만들어 가는 것이라는 점에서 그 말은 맞다. 다만 불확실한 미래의 큰 선물 못지않게 당장 눈앞의 자그마한 이익도 가벼이 여기기가 어려운 게 인지상정임은 주지해야 할 듯싶다. 그러니 유능한 정치는 장기와 단기의 조합에 남다른 재주를 보여야 할 것이다. 다만 유능한 정치는 가뭄에 콩 나듯 하는 게 현실이기에, 할 수 없이 풀뿌리 도민들이 정부 쳐다보면서 마냥 기다리지만 말고 시간 나는 대로 그리고 각자의 영역에서 무엇인가를 위해 앞에 나서야 한다.

  2월 11일 밤 TV를 통해 이집트에서 풀뿌리 시민의 힘에 의해 30년에 걸친 철옹성 독재가 무너지는 것을 지켜보았다. 이러한 풀뿌리의 힘이 얼마나 무서운 가는 이제 1년 남짓 지나면 한국에서도 나타나리라 기대하고 싶다. 그러나 잘 알다시피 공짜는 없다. 누군가가 나대신 해 주길 기다리면서 기회가 되면 무임승차 하고자 하는 곳에서는 특별자치란 무망하다. 도민이 직접 나설 것을 요구하는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그리하여 타 시도와 구별되는 특별한 제주도정이 아니라 다른 시도의 주민과는 다른 제주 도민의 특별한 의식과 참여를 찾아나서는 데서 제주특별자치의 정치적 의의가 존재할 것이다.

  그래서일까, 지난 2010년 제주도지사 선거 때 기초자치단체의 부활이 풀뿌리 민주주의의 초석임을 주장하고 기대하는 많은 사람들은 특별자치도 추진의 정신을 버리지 않으면서 풀뿌리 민주주의를 강화하는 방향으로의 변화를 외쳤다. 그리고 그러한 외침을 등에 업은 우근민 후보가 부분적으로는 기초자치단체 부활이라는 공약에 힘입어 당선되었다. 그러니 민선 5기 우근민 제주도정이 적어도 행정시의 운용을 어떻게 할 것인가와 관련하여서는 민선 4기 김태환 도정과는 차별화된 어떤 움직임을 보여주는 건 자신을 지지해 준 유권자에 대한 정치인의 도리이다.

  최근 제주형 자치모형 개발과 관련하여 2명의 행정시장을 지사가 임명하지 않고 선거에서 뽑히도록 하는 이른바 ‘행정시장 직선제’의 도입을 어떻게 할 것인가의 논의가 계속되고 있다. 그러나 논의를 지속하는 것으로는 무언가 부족해 보인다. 왜냐하면 선거 때는 행정시장을 시민이 직접 뽑도록 하겠다는 구호가 단순 명쾌해서 좋지만, 일단 도지사가 된 이후에는 행정시장 직선을 포함해서 특별자치를 어떻게 하는 게 좋을 것인지의 폭넓은 의견수렴과 전향적인 자세가 더 중요하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서 우근민 도정이 의도하고 목표로 삼는 특별자치가 무엇인지에 대한 철학과 큰 그름이 제시되면서, 그러한 실천을 위한 제도적 방편의 하나로 행정시장 직선이 고려되고 추진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II. 행정시장 직선제를 도입하려는 문제의식에 충실해야

   행정시장 직선이 제기된 가장 큰 이유는 이른바 ‘제왕적 도지사’의 폐해 때문일 것이다. 사안이 그렇다면 우도정의 행정시장 직선 추진은 도지사의 제왕적인 위상을 줄이는 방향으로의 길을 하나씩 찾아나서는 데서 시작되어야 할 것이다. 도지사의 제왕적 위상을 줄이기 위한 방편의 하나로 행정시장 직선이 거론된 것이라면, 우근민 도정이 곧바로 화답해야 할 것은 4년 후에 행정시장을 임명에서 선거로 바꾸는 제도 개선에만 있는 게 아니다. 오히려 어떻게 하면 제왕적 도지사의 위상과 권한을 줄여나갈 것인가의 일상적 고민과 전향적 자세가 밑바탕에 깔려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가능하면 이러한 고민에 풀뿌리의 기대와 바람을 대폭 수용함으로써 풀뿌리의 호응과 공감을 얻어내는 데에 많은 관심을 기울여야 할 것이다.

  당연히 왜 행정시장을 직선으로 하고자 하는 이유와 정신에 맞춰 우도정이 할 수 있는 무언가를 찾아내어 쉬운 것부터 하나씩 먼저 시작하는 것이 중요하다. 임기 4년 동안 단순히 행정시장을 뽑는다는 외형과 절차 못지않게 내용적으로 행정시장이 지난 시절 제주-서귀포 시장이 가졌던 위상과 권한을 갖고 이를 행사할 수 있도록 허용해 주는 광폭정치가 요구된다. 인사권, 재정권, 조례제정권 등에서 행정시장에게 어느 정도로 권한을 부여할 것인가의 철학과 큰 그림이 제시되면서 그런 방향으로 제주특별자치도정의 운영이 변화해 나간다면, 이를 뒷받침할 법적-제도적 기반으로서 행정시장 직선제 도입은 자연스럽게 따라오게 되는 절차가 아니겠는가.   

  그렇지 않고 앞으로 4년 내내 행정시장의 위상과 권한이 도지사에게 종속된 채로 지내면서 그저 직선제 도입을 둘러싼 법적 공방과 찬반논의로 날밤을 새는 건, 그저 선거 공약을 말로만 만지작거리는 것에 불과한 것이 되고 말 것이다. 왜냐하면 행정시장 직선제 도입 문제는 도지사 선거에서 뜨거운 쟁점이 된 만큼이나, 1년이 지나는 오늘에도 여전히 쉽게 도민들 사이에서 합의를 이루기가 어려운 사안이 되고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2월 11일 제주도의회 행정자치위원회가 마련한 공청회에서도 행정시장 직선제를 둘러싸고 관계 전문가들의 의견도 엇갈리고 있다. ‘우도정이 추진하는 직선 시장은 껍데기에 불과할 뿐'이라는 주장과 ’그래도 지사 임명의 지금 체제보다는 직선 시장이 나은 게 아니냐‘는 주장 사이에서 견해 차이가 극명하게 갈리고 있다.

  각각의 주장은 다 일리가 있는 논리와 설득력을 갖고 있을 게다. 이와 관련 필자는 너무 많은 것을 한꺼번에 요구하지 않는 ‘최소주의’ 입장을 취하고 싶다. 이미 폐지된 시군 기초자치단체를 단숨에 복귀시키는 것은 쉽지 않아 보인다는 점에서, 행정시장의 경우 지사가 직접 임명하는 현행보다는 우선은 시민이 직접 뽑는 게 더 나아 보인다. 더욱이 선거의 역동적 활력을 고려한다면 행정시장 선출의 이점은 결코 무시하시가 어렵다. 다만 특별자치의 큰 그림을 그리면서 행정시장을 주민이 직접 뽑는 것만이 아니라 도의회의 역할 강화, 감사위원회의 독립성 보장, 주민참여 예산제의 도입 등과 같이 다양한 차원에서 자치권을 강화해 나가는 일련의 제도 개선을 담아내는 장기적 비전 제시는 중요하다. 

  ‘제왕적 도지사’로 비판을 받는 현행의 제주특별자치도 모형에서 무엇을 어떻게 바꾸고 조정해야 비로소 직선 행정시장이 보다 많은 자율성을 갖고 시정에 임할 수 있는지의 검토와 논의도 동시에 진행되어야 할 것이다. 바로 이 지점에서 제주형 특별자치를 한 단계 앞으로 나아가도록 하는 우도정의 기여와 보람이 있을 것이고 또 행정시장을 임명하지 않고 선거로 뽑도록 하고자 했던 선거 때의 문제의식을 제대로 구현하는 것이 될 것이다. 이는 특별자치의 완성을 향한 우도정의 진정성이 하나씩 구체적 현장에서 나타날 때 비로소 행정시장 직선제 도입이 도민들 사이에서 추동력을 얻게 될 것이다.

  그렇기에 제주형 특별자치의 미래는 논리로 이기고 법으로 해결하고 공적인 논의의 장을 장악하는 데에 오는 게 아닐 것이다. 오히려 특별자치 비전에 대한 우도정의 생각에 많은 도민이 호응하고 공감을 하는 데서 특별자치의 미래 가능성이 열릴 것이라고 볼 것이다. 도민의 마음을 얻는 방법은 기존의 시스템 하에서라도 광역자치단체인 도에서 행정시에로 권한을 이양해 주는 방안을 강구하고 이를 실천에 옮기는 것일 게다. 그리고 차기 행정시장을 임용할 때는 선거 공신보다는 폭넓게 인재를 구해 다음의 직선 행정시장의 모델을 만들어가려는 우도정의 의지와 노력이 절대 요청된다. 그래서 작금의 행정시장 직선 도입 여부 논쟁은 단순히 행정시장을 선거로 뽑는 게 좋냐 혹은 가능하냐의 제도 개선의 문제만이 아니라 특별자치의 정신을 어떻게 구현하고 이에 발맞춰 운용의 묘를 어떻게 살려나갈 것인가의 리더십 문제가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해 본다.

              III. 많은 경우 임명보다는 선거가 나아 보인다   

  제주특별자치도의 행정시장 직선제 도입 여부를 둘러싼 공방을 지켜보면서 두 가지 감회가 교차한다. 하나는, 필자가 살고 있는 제주는 여전히 활력이 있고 미래를 향한 제주도민의 몸짓이 다양하게 교차하고 있는 곳인 듯싶어 낙관적이다. 공론화의 장을 갖춘 제주가 살만 한 곳이라는 뿌듯함이 그것이다. 다만 문제는 이러한 제주도민의 풀뿌리 지혜를 모아 나가고 활용해 나가는 제주도정의 능력과 리더십이 과연 얼마나 될 지는 미지수라, 좀 더 지켜보아야 할 사안이다. 

  다른 하나는, 행정시장 직선제 도입을 둘러싼 공론화와는 전혀 배치되는 방향에서 국공립대학의 학장 직선을 하지 못하게 하는 교육과학기술부의 강경 기조가 눈앞에 다가오는 것을 보면서, 제주대학교 교수회장으로서 갖게 되는 씁쓸함이 그것이다. 행정시장 직선을 통해 제주시와 서귀포시의 시민들에 대한 복지행정과 생활정치가 보다 잘 이루어지리라 기대하는 만큼이나, 제주대학교의 학장도 선거로 뽑혀야 보다 많은 자긍심과 활력을 갖고 보다 더 민주적 방식으로 단과대학의 역동성을 키워 나갈 수 있으련만. 그러나 교과부는 막무가내로 학장 직선을 폐하고 총장이 직접 지명하도록 함으로써 이른바 제왕적 도지사보다 더할 수 있는 ‘제왕적 총장’을 옹호하고 나서고 있다. 제왕적 대통령은 총장도 제왕적이어야 효율적이라고 보는 것일까. 우리 대학 교수들도 2012년 대통령 선거에서는 지난 도지사 선거에서 제주도민들이 그랬던 것처럼 학장 지명을 학장 직선으로 되돌려 줄 것 같은 후보에게 표를 몰아주어야 할 싶다.

  국공립대학교의 학장 직선을 폐지하겠다는 이유로 제시하는 교과부의 억지 주장을 사족으로 보태면 다음과 같다. 학장 선거가 과열되어 면학 분위기를 해치고 동료 교수들 사이에서 불화가 발생하는 것을 막기 위해 그리고 총장이 직접 임명하는 학장을 통해 대학행정이 보다 효율적으로 움직일 필요가 있다는 게, 학장 직선을 폐지하게 된 주된 이유이다. 여의도 정치를 멀리 하고 언론 통제를 통해 일사분란한 여론조성에 관심을 기울이는 현 정부의 기조에 충실한 것일 수는 있겠지만, 대학사회의 특수성을 무시한 관료적 발상으로 장기적으로는 그 실효성이 크게 의문시 된다. 더욱이 학장 지명권을 가진 총장을 둘러싸고 다음의 국공립 대학의 총장 선거는 더욱 과열될 것이고, 그리곤 그렇게 과열된 총장선거를 이유로 들어 종국에는 교과부가 직접 총장을 임명하는 데로 여론몰이를 해 나갈 것 같아 못내 불안한 건, 혼자만의 생각이 아닐 게다

  어떻든 제주형 특별자치의 미래는 다양하게 열려있다. 행정시장 직선은 적어도 제도적 차원에서 미래를 여는 하나의 방안임에 틀림없어 보인다. 선거에 따르는 비용과 불편함에도 불구하고 선거의 역동성으로 인한 활력은 다른 그 어떤 것으로도 마련할 수가 없을 정도로 강렬하다. 초등학교 학생들도 반장 선거에서 나름대로 비전을 제시하고 소통을 하고자 하지 않는가. 하물며 성인들이 모여 선거를 치르는 과정에서는 전혀 예기치 않은 아이디어가 오가고 또 과거를 돌아보고 미래를 그려가는 일련의 숨가쁜 시간을 보내는 집중의 시간이 주어진다. 점점 더 각박해지고 원자화-관료화 되어 가는 오늘날의 세상에서 문득 시간을 내서 공동체를 돌아보게 하는 데 선거만한 게 없어 보인다. 풀뿌리가 살아있음을 확인해 주는 현장 경험으로는 선거가 제일이다.

▲ 양길현 제주대 교수회장
  어떤 조직이나 단체의 장이든 상위기관의 장이 임명하는 것보다는 구성원들이 다수로 선택하는 게 더 나을 것이라는 전제를 받아들이는 데서 민주주의가 시작한다. 20세기 말 구사회주의권이 몰락하게 된 가장 큰 이유를 민주주의의 결핍에서 찾는 필자로서는, 앞으로 21세기 지구촌의 과제는 어떻게 풀뿌리 민주주의의 장점을 살려나갈 것인가에 있는 것으로 본다. 그래서인지 민주주의가 차선이긴 하지만 인간이 발견해 낸 최선의 방책이라는 관점에서 직선시장을 통하여 제주형 특별자치가 추진되고 보완되어 나아갈 것이라는 생각을 지우기가 어렵다. /양길현 제주대 교수회장(윤리교육과)  <제주의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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