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밀항인, 귀국 후엔 간첩 의심까지 '몸살'
일본 밀항인, 귀국 후엔 간첩 의심까지 '몸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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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일동포 그들은 누구인가] (22) 오무라소용소에서 부산 괴정수용소까지

강제 송환이지만 귀국 길이다. 이제 수용소와 작별하고 배를 타러 간다. 버스를 타고 수용소를 나와서, 오무라(大村) 만(灣)에서 배를 탄다. 오무라 수용소 2층에서 보면 배도 보이고, 배를 타는 사람도 보이고, 서로 손을 흔들어 작별을 한다.

오무라 만은 리아스식 해안으로 아름답기로 유명하다. 옆에 있는 도시 나가사키(長崎) 시, 나가사키 항구는 바로 바깥 큰 바다와 연결이 되어 있다. 그러나 오무라 항은 오무라 만에 있으며, 또 이 오무라 만은 아주 좁은 수로와 연결 되여 있는 호수와 같은 만(남북 26Km, 동서 11Km) 이다. 이 만에서 사이가이바시(西海橋) 라는 다리 밑을 건너야만 바깥 큰 바다로 나올 수 있다.

이 '사이가이바시' 라는 다리가 놓여 있는 수로는 폭이 200m 정도 밖에 되지 않는 아주 좁은 수로이기에, 간만조의 물 흐름이 세기는 세계에서 유명하다. 어떤 배도 물흐름의 역류로 진행할 수가 없다. 만약 간만조의 물흐름과 반대의 물때가 되었을때는 배를 정선시켜 한 두시간 정도 기다렸다가, 물 때를 맞추어서 건너가야 되는 곳이다.

이 '사이가이바시' 는 구슈(九州) 에서 아름답기로 유명한 다리이고, 그 주변은 벗꽃의 명소로 유명해서, 구슈 최고의 관광명소이다. 지금 일본 젊은이 및 한국 젊은이에까지 인기가 있는 '나가사키 하우스텐보스' 라는 곳이 바로 이곳에 있으며, 이 자리는 오무라 수용소의 전신인 '하리오 수용소'의 자리이다.

이 다리를 건너 바깥 큰 바다를 나오면, 바로 유명한 해군기지 사세보 이다. 배는 부산으로 오게 된다. 먼저 부산 괴정수용소에 수용되여 조사를 받게 된다. 일본은 한국을 따르는 민단과 북한을 따르는 조총련이 존재하는 나라이다. 괴정수용소의 역할은, 일본에 밀항을 가서 조총련에 빠져들어 한국으로 들어오는 간첩을 색출하겠다는 정보기관의 조사인 것이다.

▲ 쯔바기마루(椿丸) 라는 배의 사진. 1961년7월부터 1968년3월까지 25회에 걸쳐 오무라수용소에서 한국으로 강제송환할 때 사용한 배.

많은 사람들이 이 괴정수용소에서 고통을 받게 된다. 당시 정보기관에서 간첩 잡겠다는 수사는 그 시대를 살아본 사람이면 누구도 알 수 있는 무서운 수사였다. 매 맞는 것은 아무것도 아닌, 고문으로 정신이상 된 사람이 나올 정도의 수사인 것이다.

괴정동 수용소는 해방직후 곧 만들어진 수용소이다. 해방 후 한국에 있던 일본사람들이 일본으로 송환되면서, 송환 배를 타기까지 이 괴정동 수용소에 수용되는 것이다. 그후 일본 사람들은 다 돌아갔고, 수용소는 텅 비게 된다. 그 후에 수용된 사람들은 이승만 라인을 침범하여 한국 해경에 검거된 일본 어부들이 수용되었다. 5·16혁명이후 이승만 라인도 흐지부지 되고, 한일회담이 이루어지면서 일본 어부들의 검거도 거의 없게 되어 괴정동 수용소는 또 텅 비게 되지만, 이번엔 일본 밀항자들의 간첩검거를 위한 시설이 되는 것이다. 이래저래 일본과는 인연이 깊은 한 많은 수용소로 이름을 남기게 된다.

일본에서 살다보면, 왼쪽 옆집은 민단 집에, 오른쪽 옆집은 조총련 집이다. 민단 집과는 인사를 하고, 조총련 집과는 인사 없이 살 수는 없다. 어느 쪽도 다 똑같이 인사를 하면서 살게 된다.

일본에 살아본 사람이면 다 아는 사실이지만, 조총련 집 사람들이 우리들에겐 더 친절하게 대해 준다. 이상하게 한국에 대해서 욕하는 사람들은 민단 집 사람들이 많다. 한국에서 와서 고생한다고 위로해 주는 사람들은 조총련 집 사람들이다. 그렇치만 조총련 집 사람이라고 조총련 조직으로 데려 가려는 사람은 본 적이 없다.

잡혀서 오무라 수용소에 이송되면, 모든 물건은 수용소에 영치하게 된다. 한국으로 돌아갈 때 물건을 돌려받고 배를 타게 된다. 이때 한가지 미스를 하는 경우가 있다. 일본에서 시장에서 물건을 살 때 신문지에 포장을 해주는 경우가 있다. 그 포장용 신문지가 조총련 신문지일 경우가 있다. 괴정동 수용소에서 물건들을 풀어서 조사를 받는데 조총련 신문지가 나왔다면, 이건 반 죽음만이 있는 것이다.

▲ 朴正功 저, 『大村收容所』京都大學出版會, 1969년8월. 오무라수용소.

당시는 권력이 상당히 부패해 있었다. 사람을 통해서 뇌물이 들어가면 조사는 편해진다. 결혼한 밀항자 남편이 부인에게 열심히 돈을 부친다. 그 돈이 잘 지탱되고 있어 남편이 부산에 왔다면, 돈 한 짐 지고서 마중을 나간다. 돈질을 잘 하면 수사는 편해진다. 한국으로 보낸 돈으로 마누라는 무엇을 했는지 돈이 지탱을 못했을 경우, 돈질을 못했기에 수사는 어려워져 더 고통을 받게 된다. 돈 잃어 억울해, 고통 심해 억울해, 마누라 잃어 고생해, 목숨건 밀항의 의미는 엉뚱한 놈 좋을 일로 끝나게 되는 경우이다.

오사카 이쿠노구(生野區)에 '공화병원' 이라고 있다. 북한의 공화국에서 나온 '공화' 라는 이름을 붙인 병원이다. 어느쪽을 따르는 병원이라는 것은 이름만 보아도 알수 있다.

이 병원에 가면 간호원들도 의사들도 사무직원들도 동포들이 많고 또 우리말도 잘 한다. 의사소통에 큰 어려움 없는 유일한 병원이다. 밀항을 갔기에 의료 보험 등이 없어서 일본 병원에 갈 수 없는 사람들이다. 또 위치도 좋아 이쿠노구(生野區)의 한가운데 오이케바시(大池橋)라는 곳에 있다. 여러 조건이 좋아 공화병원에 가기가 쉽다. 이 병원에서 문제가 생긴다. 만약 이 병원에 입원을 했다면, 아파서 입원을 한 것이 아니라, 입원한 기간동안 북한에 가서 밀봉교육을 받고서 간첩이 되었다는 오해를 받기 쉽다. 그래서 귀국후의 조사를 생각해서 이 병원에는 가능한한 가지 않으려고 하고, 또 갔다 왔었어도 악착같이
숨길려 한다.

일본에 상륙해서 곧 검거된 사람들은 그래도 수사가 단순하다. 일본에 상륙하여 바로 잡혔기에 조총련들과의 접속은 없었다는 것이다.

아주 큰 고통을 받은 사람들이 있었다. 당시 신문 등의 통계를 보면 미성년자의 밀항도 상당수 있었다. 어려서 밀항을 갔으나 등록이 없다. 학교를 포기하고 일을 하는 사람들도 있었지만, 학교로 가는 사람들도 많았다. 일을 하지 않고 학교로 가는 사람들은 조건이 좋은 사람들이다. 조건이 좋다는 것은 일본에서 밀항자를 받아준 사람이 누구냐는 것이다. 부모가 혹은 아버지나 어머니 어느쪽이 일본에 있으면서 자식을 일본으로 오게 했다면, 일을 시키기 보다는 장래가 있는 학교로 보내고 싶다. 일본에 있는 사람이 밀항자 본인과 가까운 관계일수록 학교로 가게 된다. 그러나 등록이 없기에 일본 학교는 문턱에도 갈수 없다. 이런 등록 없는 학생들을 받아주는 학교가 조선학교(중·고교) 인 것이다. 당시의 조선학교 선생님 또 당시의 조선학교 학생들의 증언을 들어보면 상당수의 밀항자 학생들이 재학하고 있었다고 한다.

별탈 없이 학교를 마치고 성인이 되어, 등록이 있는 동포와 결혼을 하게되면 자연스럽게 등록이 있는 동포가 된다. 그러나 등록이 없는 과정에서 밀항자로 검거가 되는 날에는 오무라 수용소로 가게 되고, 한국으로 강제송환의 길이 되는 것이다. 부모가 일본에 있는 경우는 강제출국 처분정지 소송을 걸어서 일단은 오무라 수용소에 있게해서 법무대신의 은혜를 기다릴수 있지만, 강제출국 처분정지 소송을 걸수 없는 학생은 한국으로 송환되게 된다.

▲ 이쿠노구 한 복판에 자리잡은 공화병원. 조총련계에서 세운 병원으로 재일동포들이 많이 간다.

일본에서 조선학교를 다녔다는 경력이 한국 정보당국에서 보면 빨간색으로 보이게 된다. 큰 고통이 있었다는 것은 말할 필요도 없다. 이런 어려움을 염려해서 일본학교로 가는 경우도 간혹 있었다. 등록이 있는 동포등의 이름으로 학교에 다닌 사람들이다. 등록이 있는 동포도 학교를 다닐 나이이다. 이런 사람을 찾는것 보통 어려운일이 아니다. 설령 찾아서 그 사람 이름으로 학교를 다니지만, 당분간 내가 아닌 다른 사람이 내 몸속에 있는 것이다.

조국, 자기의 나라, 한국에 귀국했지만, 빨갱이를 잡겠다는 무시무시한 정보당국의 수사를 먼저 괴정수용소에서 받게 된다. 이 수사과정에서 아무 혐의 없는 사람이 고문에 못 이겨 간첩이 되는가 하면, 고문에 못이겨 숨진 사람까지 나온다. 간첩잡겠다고 자국민 못 살게 굴고, 자국민을 간첩 만들고, 자국민을 죽인 것이다.

이 수사에서 '빨간색 혐의 없음' 이라는 라벨이 붙여진 사람이 보내지는 곳이 경찰서이다. 경찰 및 검찰에서는 밀항법 위반의 형사범으로 재판이 기다리고 있다.

경찰서로 보내지면 경찰서에서 몇 주 수용된 후, 서 대신 동 교도소에 미결수로 투옥되여 재판을 받게 된다. 밀항법위반의 재판인 것이다. 보통 징역2년 집행유예3년의 형을 받게 된다. 항소 할 힘도 빠지게 되여, 석방된 그날로 바로 제주도로 가는 배를 타고 만다. / 신재경

 

▲ 신재경 교수 ⓒ 제주의소리
 필자 신재경 교수는 1955년 제주시에서 출생했다. 제주북초등학교, 제주제일중학교, 제주제일고등학교, 한양공대 섬유공학과를 졸업했다. 한일방직 인천공장에서 5년간 엔지니어를 한 후 1985년 일본 국비장학생으로 渡日해 龍谷大學대학원에서 석사·박사과정을 수료했다.  1993년 京都經濟短期大學 전임강사를 거쳐 현재 京都創成大學 經營情報學部 교수로 있다. 전공은 경영정보론이며, 오사까 쯔루하시(鶴橋)에 산다. 오사카 제주도연구회 사무국장을 맡고 있기도 한 신 교수는 재일동포, 그 중에서도 재일제주인들의 삶에 대해 조사 연구하고 있으며, 특히 재일동포들의 '밀항'을 밀도 있게 조사하면서 <제주의소리>에 '어떤 밀항이야기'를 연재해 왔다. 또 일본 프로야구에 대해서도 해박한 지식을 발휘 '신재경의 일본야구'를 써 왔다.    jejudo@nifty.com

 

<제주의소리>

<신재경 시민기자 / 저작권자ⓒ제주의소리. 무단전재_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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