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여성 문화유적100] (53) 대륜동 호근리 각시바위

『제주여성 문화유적 100』은 제주여성과 그들의 삶이 젖어있는 문화적 발자취를 엮은 이야기로, 2009년말 ‘제주발전연구원’에서 펴냈습니다. 『제주여성 문화유적 100』은 2008년에 이미 발간된 『제주여성 문화유적』을 통해 미리 전개된 전수조사를 바탕으로 필진들이 수차례 발품을 팔며 마을 어르신들의 이야기를 담아낸 노력이 깃들어 있습니다. 오늘 우리 제주가 있도록 한 ‘우리 어머니’의 이야기들이 담겨져 있습니다. <제주의소리>는 제주발전연구원과 필진들의 협조로 『제주여성 문화유적 100』을 인터넷 연재합니다. 제주발전연구원과 필진들에게 감사의 뜻을 전합니다. / 제주의소리

▲ 각시바위 ⓒ양영자

『오름나그네』의 저자 김종철은 각시바위를 ‘날개 편 능선 사뿐한 학춤’이라 표현했다. 풍수지리설을 염두에 둘 때, 이 보다 더 적절한 표현은 찾기 힘들 듯하다. 각시바위가 학이 알을 품은 형국이어서 삼매봉의 뱀이 알을 먹으려고 오면 날개를 펴고 부리로 쪼으려는 모양을 하고 있어 ‘학수바위’로 구전되고 있다.

길 위에서 쳐다보면 험하고 가팔라 도저히 오를 엄두가 나지 않지만 포제단에서부터 20여 분 걸으면 금세 정상에 다다를 수 있다. 밤나무, 동백나무, 산딸나무들이 즐비하고 하늘을 가린 나무들 사이로 햇볕 조각이 스며들어 나뭇잎과 삭정이 위에 따스히 내려앉는다. 곰취, 고사리 등 다양한 식물들 사이를 비집고 오직 한 사람이 오롯이 걸을 수 있는 길이 나 있다.

정상에 오르면 눈 앞에는 한 폭의 풍경화가 펼쳐진다. 즐비하게 늘어서 도열한 밀감밭 너머로 지귀섬, 섶섬, 새섬, 범섬, 문섬이 한눈에 들어온다. 몸을 휙 돌리면 완만하고 부드러운 한라산 자락과 오름들이 아름드리 펼쳐져 있다. 주변 경치가 아름다워서 예로부터 선비들이 이곳에서 풍류를 즐겼다. ‘각시바우’ 또는 ‘각시바우오름’이라고 부르는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사냥길에 나선 원님들은 각시바위 정상에 있는 넓은 반석 위에서 휴식과 음식을 취하는 것이 상례였다. 당시 원님의 사냥길에는 관속과 함께 관기들도 따라가서 노래와 춤을 추며 흥을 돋우었다. 한 번은 원님의 총애를 받는 관기에게 질투심을 느낀 한 기생이 총애 받는 관기를 실수인 것처럼 밀어뜨려 절벽 아래로 떨어지게 하고 말았다. 원님은 불쌍히 여겨 각시바위 아래에 장사를 지냈는데, 이름 없는 그 기생
의 무덤이 지금도 있다.

또한, 옛날 이 부근 마을에 귀한 집안 며느리가 몸에 태기가 없어 고민하였다. 여러 해가 되어도 아기를 얻지 못하자 호근리 북쪽 한라산 중턱에 있는 절에 가서 백일기도를 드렸다. 목욕재계하고 정성을 다하여 밤낮으로 불공 기도를 드리던 어느날 밤 그 절의 중에게 몸을 빼앗기게 되었다. 귀한 가문의 대를 이으려 불공기도를 드리는 처지로서 난감한 일이었다. 고민하던 중 어느덧 여자의 몸에서는 태기를 느끼기 시작하였는데 반가운 일이긴 하였으나 그 아기가 바로 중의 아기인 것을 생각하면 죽고 싶을 뿐이었다.

백일이 다 되어 집으로 돌아가야 할 그날 밤에 여자는 시집으로 돌아가지 않고 절 뒤에 있는 그 바위에 올라가 하늘을 향하여 울부짖으며 자기의 잘못과 운명을 슬퍼하며 밤새 울다가 자진하여 죽어버렸다. 여자가 죽자 얼마 없어서 그 자리에 이상한 바위가 섰는데 그때부터 이를 ‘열녀바위’라 불렀다고도 한다.

여인의 슬픈 설화가 서려 있는 각시바위, 지금도 그 아래 동굴에서는 아이 낳기를 소망하거나 소원이 성취되기를 바라는 사람들이 기도하러 드나들고 있다. / 양영자

* 찾아가는 길 - 대륜동 서호마을 윗길 중산간 도로(1136번) 용천사 입구 버스정류장에서 북쪽 1.3㎞  → 학수바위 팻말에서 1㎞ → 포제단 옆에서 오르기 시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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