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을 걸으며 길을 묻다] (9)스위스 인터라켄(상)
스위스는 작은 나라이다. 우리나라의 경상도와 경기도를 합친 것과 비슷한 크기(4만1천284㎢), 전체 인구라고 해봐야 720만명 정도다. 그러나 걷기에는 세계 최고, 트레일의 길이만 5만Km가 넘는다. 걷는 것이 보편적일 만큼 모든 게 ‘느리고 그래서 차분한’ 나라이다.
느리다는 것은 속도에는 약하지만 디테일에는 강하다는 의미. 철저한 디테일이 오늘의 스위스를 있게 했다. 천혜의 경관과 합리적 관리, 자연을 지키고 가꾸는 산업으로서 농업의 부활, 가장 스위스적인 것을 유지하는 산업구조와 미래투자(특히 사람에 대한), 매사에 꼼꼼히 따지고 섬세하게 배려하는 완벽주의, 그래서 스위스는 작지만 강한 나라다. 국민소득 6만 달러에 세계에서 다섯 손가락 안에 드는 경쟁력이 가능하게 되는 것이다.
우리는 빨라서 효율적으로 보이지만 그만큼 세부적인 내용에 들어가면 엉성한 구석이 있게 마련이다. 국민소득으로 말하면 2만달러 이전 시대에는 얼렁뚱땅 ‘대강주의’가 먹혀들지만 3만 달러 4만 달러의 선진국으로 가려면 통하지 않는 것이다. 구석구석까지 살펴보고 아주 작은 부문에까지 섬세하게 배려하는 디테일의 구성이 지역과 국가가 한 단계 더 뛰어오르기 위해서는 필요한 것이다.
어디에서든 카메라 셔터를 눌러도 그림엽서 같은 절경을 담아내는 곳, 하늘이 준 자연을 인간으로서 잘 가꾸는 곳, 항상 깨끗하게 청소·정돈되어 있는 집과 도로, 어디를 가나 가득한 꽃과 새들, 이를 있게 한 것은 바로 완벽한 스위스인들의 정밀한 장인정신이었다.
선진국들이 다 그렇지만, 트레킹 코스가 잘 발달되어 있는 스위스에서 ‘걷기 여행’이라는 트렌드는 전혀 새삼스러울 것이 없다. 전체 영토에서 숲이 차지하는 비율이 1/3에 달하는 스위스에서는 새삼 생태관광을 강조하지 않더라도 ‘걷기’가 일상적일 만큼 보편화되어 있기다. 스위스 땅은 거의 모든 지역에서 다양한 트레킹이 가능하다. 논길, 들길, 물길, 심지어 자기 집 뒤뜰을 거치는 샛길마저 트레킹 루트화한 것이 바로 스위스 사람들이다. 자연적으로 형성된 아름다운 길이 있는가 하면, 오랜 세월 가꾸고 다듬어 세운 인공의 멋을 간직한 코스도 있다. 심지어 밀수꾼들이 다녔다는 루트까지 트레킹 코스로 만들었을 정도다. 이지 트레일(easy trail) 스포트 트레일(sport trail) 알파인 트레일(alpine trail) 노르딕 워킹 트레일(nordic walking trail) 등.
보통의 루트는 '반더벡(wanderweg)'으로 불리우는 코스로 노란색 표지로 되어 있다. 빨간 줄이 들어간 '베르크벡(bergweg)'은 난이도가 높은 코스로 이 길을 걸을 경우는 신발이나 복장에 신경을 써야 한다.
세계의 여행자들을 끌어당기는 알프스의 매력은 무엇일까. 웅대하지만 편안한, 변화무쌍하면서도 사람들의 마음을 따뜻하게 포용하는 대자연의 신비로움일 것이다. 알프스에 오면 알프스에 빠지고 한번 매료된 여행자들은 결코 알프스를 잊지 못한다.
알프스를 찾아가는 길은 여러 갈래가 있다. 하지만 제대로 된 알프스 여행을 하려면 우선 융프라우 아래 있는 인터라켄으로 가야 한다. 인터라켄은 알프스의 명산 융프라우와 아이거 묀허 쉴트호른 등을 거느리고 있는 휴양도시. 인구 6천명이 채 안되는 작은 도시이지만 트레킹 코스는 76개나 된다. 도시의 지명 ‘호수(laken) 사이(inter)’처럼 동쪽으로는 브리엔츠(Brienz) 호수 서쪽으로는 툰(Tune) 호수에 둘러싸여 있는 호반의 도시이기도 하다.
인터라켄 지역을 보면 가운데 융프라우((Jungfrau, 해발 4,158m), 묀히(Mönch, 해발 4,107m), 아이거(Eiger, 해발 3,970m)의 거봉 삼형제가 버티고 있고, 왼쪽으로는 피르스트(First, 해발 2168m), 그리고 오른쪽엔 쉴트호른(Schilthorn, 해발 2971m)이 자리잡고 있다.
모든 것을 잊고 한 보름 빈둥거리고 싶은 곳, 라우터브룬넨. 이 곳을 찾은 날은 공교롭게도 눈발이 날리고 있었다. 케이블카를 타고 그루첼프(Grutschalp)로 이동, 뮤렌(Murren)까지 걸어가기로 했다. 위로는 흰 눈을 이고 있는 거봉들이 우뚝 솟아있고 아래로는 초원이 그림처럼 펼쳐져 있었다. 10m 앞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눈발이 거세 천천히 걸어야 했다. 그러다가도 신기하게도 언제 그랬느냐는 듯이 눈구름이 걷히면서 산은 살짝 그 신비로운 자태를 보여준다. 겨울과 여름, 빙하와 초원, 양립할 수 없는 풍광을 한 장소에서 동시에 즐길 수 있는 것이 바로 알프스 트레킹의 매력이다.
걷기 시작한지 두시간 여. 도착한 뮤렌은 고즈넉한 그러나 너무나 아름다운 작은 마을이었다. 라우터브룬넨 골짜기 우뚝솟은 낭떠러지 위에 둥지처럼 형성되어 있는 마을이다. 친환경마을 답게 뮤렌에서는 휘발유 차량 진입이 전면 금지된다. 이곳을 기점으로 야생화가 고운 알몬드후벨(Allmendhubel)과 영화 007 ‘여왕폐하대작전’의 무대 쉴트호른(Schilthorn)으로 더 들어갈 수 있다.
융프라우로 가는 산악열차의 환승역 클라이네샤르덱, 융프라우와 아이거 북벽을 한꺼번에 품을 수 있는 곳이다. 여기서 융프라우 정상으로 가면 알레치 빙하를 바라보며 묀히후테 산장까지 갔다오는 트레킹이 있다.
다시 클라이네샤이덱을 뒤로 하고 알피글렌까지 걸어간다. 아이거 북벽을 따라 걸어가면서 빙하의 순수와 대자연의 웅장함을 그대로 느낄 수 있는 코스다. 알피글렌에 도착하면 다시 산악열차를 타고 그룬트(Grund)까지 내려온다. 그룬트에서 열차를 갈아타고 조금 더 내려오면 그린델발트에 닿는다.
그린델발트 마을 안과 마을 길은 아름답다. 걸음걸음 시야가 조금씩 바뀌는 장면 장면이 참으로 완벽하다. 자꾸만 다시는 못볼 것 같아 뒤돌아보게 된다. 잊지 않으려고 뒤돌아보고 마음에 새기려고 뒤돌아보고 ….
스위스는 농업을 농산품을 생산하고 판매하는 것으로만 보지 않는다. 자연경관을 보존하고, 관광산업을 진흥하며, 궁극적으로 소중한 국토를 보살피는 다목적 공공산업으로 본다. 농업이 정확히 계량할 수 없는 이러한 공공가치를 제공한다는 점을 반영하여 그 대가를 농민에게 직접 지불제 형식으로 지불한다. 도시에서 멀리 떨어진 조건불리 농촌일수록 지원을 더 많이 해주는 방식이라고 하니 균형개발에 대한 배려가 참 따뜻하다. 그리고 이러한 정신을 스위스헌법에 명문으로 규정하여 다른 소리가 나오지 못하도록 하고 있다.
스위스의 농업은 ‘땅을 경작하는’ 1차산업으로서의 단순농업이라기 보다는 거기에 ‘제조라는 2차기능’을 플러스한 식품가공산업(치즈·버터·초코렛 등), ‘서비스라는 3차기능’을 더한 관광산업이라 보는 것이 타당하다. 농업은 그 자체가 종합 문화이고 복합 산업인 셈이다. 스위스의 농산품 가공은 지방자치단체의 심의만 거치면 누구나 전통적인 방식으로 쉽게 가공·판매할 수 있다. 농가의 열악한 생산여건을 무시한 채 수억 원에서 수십억 원이 들어야 농산물 가공판매가 가능한 우리나라의 경우를 생각하면 부러움을 넘어 답답함과 안타까움이 ….
경제구조가 관광을 축으로 한 3차산업에 70% 이상 편중되어 있고 1차산업의 경쟁력마저 취약한 제주로서는 제주형 제조업을 발전시킬 틈새가 없는지 스위스로부터 배울게 많다. 지금 개방경제모델로 추진하고 있는 국제자유도시 개발도 비밀계좌제도 금융업과 국제회의 산업, 친환경 생태관광 산업을 특화한 스위스의 경우처럼 제주형 특화모델을 찾아내야 승산이 있다.
송재호 교수는 서귀포시 표선면 출신으로 제주제일고와 연세대 정치외교학과를 졸업학고 경기대에서 경영학 석사와 박사를 받았다. 현재 제주대 교수(관광개발학과)로 재직중이다. 현실정치에도 관심을 둬 민주당 열린우리당내 개혁세력으로 활동해 왔으며 참여정부에 발탁돼 국책연구원장인 한국문화관광연구원장으로 2년6개월동안 재임하면서 ‘섬UN’ 창설과 ‘한-중-일 크루즈관광’ 활성화를 제안하는 등 제주관광국제화를 다지기 위한 다양한 정책을 추진해 왔다. 제주글로벌상공인대회 조직위원장을 맡아 국내외에서 활약하고 있는 제주상공인을 하나로 묶고, 미래 제주발전을 위한 원동력을 만들어가는 새로운 경제네트워크를 만드는 일에 전력하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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