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정마을 주민들의 아픔을 바라보며

   지난 4일 금요일 저녁 제주시청 상징탑 앞에서 ‘해군기지 없는 제주, 평화로 물들다’를 주제로 ‘해군기지 없는 제주평화대회’가 열렸다. 그 때 필자도 앞에 나가 몇 마디 발언을 했는데 그 후 제주대 휴학생이라고 자기소개를 하는 학생으로부터 이메일을 받았다.

  그 학생은 당시 필자의 발언을 듣고 많은 고민을 했다고 하면서 자신은 해군기지와 평화의 섬이 양립가능하다고 생각한다고 했다. 또한 강정마을의 발전을 위해서라도 해군기지는 들어와야 한다고 했다.

  그 학생에게 이메일로 답신을 하고는 그 학생이 필자의 발언을 듣고서도 해군기지와 평화의 섬이 양립가능하다고 생각한 이유가 궁금해졌다.

  해군기지와 평화의 섬은 정서상 뭔가 어울리지는 않는다. 얼핏 생각하면 양립하기 어려운 것 같다. 그러나 냉철하게 이성적으로 생각해 보면 해군기지와 평화의 섬이 양립불가능하다고 단언하기는 어렵다. 평화는 말로만 지켜지는 것이 아니다. 힘이 있을 때 평화가 지켜지는 것이 냉엄한 현실이다. 제주해군기지가 동북아 평화의 수호자 역할을 하지 말라는 법은 없지 않은가. 그렇다면 해군기지와 평화의 섬은 양립가능하다고 볼 수도 있다.

  그러나 지금처럼 제주도민과 법을 무시하고 힘으로 일방적으로 밀어붙이면서 강정마을 공동체의 평화를 산산조각 내버리며 들어오는 해군기지는 결코 평화의 섬과 양립할 수가 없다. 그것은 권력의 횡포이자 제도적 폭력 그 자체이기 때문이다. 

  그 학생은 지금처럼 법치주의를 파괴하며 강정마을 공동체의 희생을 발판으로 들어오는 해군기지가 평화의 섬과 정말로 양립가능하다고 생각한 것일까. 그렇지는 않을 것이다.

  필자는 강정마을 주민들을 볼 때마다 가슴이 미어지도록 아파온다. 제주는 한반도의 변방이고 도세는 전국의 1% 밖에 되지 않는다. 역사적으로는 중앙정부의 끊임없는 지배와 수탈을 받아왔다. 제주의 지도자들은 중앙정부만 바라보며 도민을 위한 행정을 펴지 않았다. 그러다 보니 언제나 중앙의 이해관계에 휘둘리면서 갈기갈기 찢김을 당한 아픈 역사를 되풀이 해왔다. 현대사 최대의 비극인 4ㆍ3 역시 그 아픈 역사 중 하나다.

  이제는 21세기 지방자치의 시대다. 아픈 역사의 고리를 끊을 때가 되었다. 그러나 제주에서는 해군기지 문제로 아직도 아픈 역사가 반복되고 있다. 강정마을 주민들은 제주의 아픈 역사를 온몸으로 경험하며 고통으로 신음하고 있다. 그럼에도 제주도정은 뒷짐만 지고 있고 도의회는 엄포만 하고 있다. 제주의 지도자들 중 그 어느 누구도 강정마을 주민들의 아픔을 진심으로 공감하며 함께 하려고 하는 자가 없다.

  더욱 슬픈 일은 대다수의 도민들조차 강정마을 주민들의 아픔을 외면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그 비겁함, 그 무기력함에 절로 탄식이 나온다.

  만일 이대로 해군기지가 건설된다면 제주는 평화의 섬을 포기하는 것이 맞다. 제주의 아픈 역사를 그대로 반복하는 이런 식의 해군기지 건설을 용납하면서도 평화의 섬을 운운하는 것은 자기기만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그것은 양심을 저버리는 짓이며 4ㆍ3의 영령들을 모독하는 짓이다.

▲ 신용인 제주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어쩌면 해군기지는 이대로 폭력적으로 들어와 평화의 섬을 파괴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역사는 언젠가 오늘을 기록할 것이다. 불의와 기만이 판을 치는 세상에서 평화의 섬을 지키고자 몸부림을 쳤던 사람들이 있었다는 사실을 말이다. /신용인 제주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제주의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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