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희범 칼럼] 정부, 대도민 사과하고 근본적 지원책 내 놓아야

 제주도의회의 해군기지 절대보전지역 변경동의 취소 의결은 큰 의미를 갖는다. 밀어붙이기로 일관해 온 정부의 공사 강행에 정치적으로 제동을 걸었다는 점, 절차적 정당성을 확보하지 못한 진행과정의 잘못을 바로 잡았다는 점, 민의를 대변하는 의회가 도민 다수의 뜻을 반영했다는 점, 그래서 제주도민의 자존을 살리는 큰 걸음을 떼었다는 점에서 그렇다.

 정부는 그동안 도의회가 여러 차례 성실한 대응을 요구했지만 묵묵부답으로 무시해 왔고, 정부 스스로 한 약속조차 지키지 않았다. 심지어 도의회가 절대보전지역 변경동의 취소 의결안 상정을 예고하면서까지 근본적인 대책과 구체적인 지원대책 마련을 요구했음에도 아무런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취소 의결이 된 뒤에야 해군참모총장이 제주를 방문한다고 뒷북을 치고 있다. 유감 표명을 할지, 도지사와 도의회 의장을 만나 협조를 부탁할지 모르는 일이나 이미 시간을 많이 놓쳐버렸다. 무엇보다 중요한 사실은 해군참모총장이 현재 제기되고 있는 핵심적인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위치에 있지 않다는 점이다.
 
 이에 더해 해군기지가 ‘민군복합형 관광미항’이라는 이름을 달고 있지만 이는 사실상 허구였음이 최근 드러났다. 이런 별칭을 붙인 이유는 해군기지에 크루즈 민항이 포함되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를 주관해야 할 국토해양부는 어떤 움직임도 보이지 않고 있다. 2008년 말 국회에서 크루즈항 설계용역 예산 15억원이 반영됐으나 2년이 지나도록 이와 관련해 공문 한 장 오간 것이 없다. 민군복합항 건설이 사실이라면 이의 추진을 위해 관계기관 간의 협의만도 수차례 이뤄졌을 터이다. 이런 사실은 최근 강경식 도의원의 자료 요구 결과 밝혀졌다. 언론사들의 여론조사 결과에 따르면 복합항 개념이 아닌 해군기지만을 찬성하는 비율은 1%에 불과하다는 점을 지나쳐서는 안된다.
 
 이번 도의회 의결이 법적인 효력을 갖는지 여부를 두고도 해석이 엇갈리고 있다. 그러나 이는 법적인 효력 여부를 떠나, 민의를 대변하는 도의회가 선택한 ‘정치적 결정’이라는 점이 중요하다.

 2009년 12월 날치기로 절대보전지역 변경 동의안을 처리한 한나라당 소속 도의원들은 “법적 효력도 없는 결정으로 도민들의 혼란만 가중시킬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그러나 당시 도의회의 의결은 보전지역 해제를 위한 전제조건이나 주민의견 청취 절차를 거치지 않는 등 잘못이 있었다. 잘못을 바로 잡는 것은 법률적 효력 이상의 의미를 지닌다.

 도민의 여론도 최근 JIBS가 실시한 조사결과에서 잘 드러난다. 취소의결안 상정에 대해 지지 48.4%, 반대 30%’로 나타났고, 해군기지 갈등이 장기화되는 책임에 대해서는 중앙정부가 32.5%, 제주도정이 24.5%라고 답했다. 공사를 일시 중단해야 한다는 답은 59.9%, 정부의 특별한 지원 대책을 요구하는 도민은 82%로 나타났다. 

 우근민 지사는 “해군기지 문제 해결의 실타래가 풀려가는 즈음에 또 다른 갈등의 시작을 야기할 수 있다는 걱정이 앞선다”면서 의회에 재논의를 요구했다. ‘해결의 실타래’는 무엇을 두고 하는 말인지 모르지만 ‘또 다른 갈등의 시작’을 우려할 일도 아니다. 의회가 제공한 기회를 제주도가 정부에 대한 설득 논리를 찾아내 목소리를 높일 수 있는 기회로 활용할 일이지 재논의를 요구할 계제가 아니다. 같은 사안을 두고도 어떤 시각으로 보느냐에 따라 그 결과는 판이하게 달라지는 법이다.

 정부는 마지막 기회가 주어졌다는 인식에서 출발해야 한다. 거듭된 약속 불이행으로 빚어진 불신과 그동안 도민들이 당한 모욕감, 강정주민들의 상처를 그대로 둔 상태에서 공사를 강행한다면 그 이유가 어떤 것이든 국민에 대한 도리도 아니거니와 국력의 낭비만 초래할 뿐이다. 잘못 꿴 첫 단추를 그대로 꿰어둔 채로는 옷을 제대로 입을 수 없는 것 아닌가. 천천히 가는 것이 오히려 비용이나 시간을 절약하는 길이 되기도 한다.

 이미 국내에도 유사한 사례들이 있다. 방사성폐기물처리장은 오랜 기간 전국 여러 지역에서 극단적인 갈등을 빚다가 정부가 구체적인 지원대책을 마련하고 주민투표를 실시한 끝에 해당 지역 주민의 환영 속에 유치가 결정됐다. 새만금은 정부가 반대의견을 무시하고 공사를 강행한 끝에 우려하던 문제들이 속속 발생하고 있다. 방조제 한쪽을 다시 터야 하는 막대한 피해를 감수해야 했고, 토지이용 문제도 예상대로 진행되지 않고 있다.

▲ 고희범 제주포럼C 공동대표 ⓒ제주의소리

 정부는 즉각 공사를 중단하고, 민군복합 관광미항 계획의 허구성과 도민을 무시해온 태도 등 잘못을 고치고 이에 대한 유감을 표시하는 것이 우선이다. 이후 근본적인 대책과 도민 대다수가 받아들일 수 있는 지원책을 제시함으로써 도민설득에 나서야 한다. 모처럼 이루어진 의회의 ‘결단’을 매개로 정부와 해군은 원점에서 다시 시작한다는 자세로 생각을 가다듬어야 한다. 또한 도민사회도 도정과 의회, 도민이 한마음으로 해군기지 문제로 무너진 자존을 다시 일으켜 세워야 할 때다.  /  고희범 제주포럼C 공동대표, 전 한겨레신문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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