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여성 문화유적100] (60) 사계리 산방굴사

『제주여성 문화유적 100』은 제주여성과 그들의 삶이 젖어있는 문화적 발자취를 엮은 이야기로, 2009년말 ‘제주발전연구원’에서 펴냈습니다. 『제주여성 문화유적 100』은 2008년에 이미 발간된 『제주여성 문화유적』을 통해 미리 전개된 전수조사를 바탕으로 필진들이 수차례 발품을 팔며 마을 어르신들의 이야기를 담아낸 노력이 깃들어 있습니다. 오늘 우리 제주가 있도록 한 ‘우리 어머니’의 이야기들이 담겨져 있습니다. <제주의소리>는 제주발전연구원과 필진들의 협조로 『제주여성 문화유적 100』을 인터넷 연재합니다. 제주발전연구원과 필진들에게 감사의 뜻을 전합니다. / 제주의소리

▲ 산방덕이물 ⓒ장혜련

사계리는 산방산과 해안의 경치만으로도 아름다운 지형을 자랑하는 곳이다. 산방산은 종모양의 화산체로 높이 395m이며 제주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현무암이 아닌 조면암질 안산암으로 구성되어 있다.

산방산의 남서쪽 기슭에는 산방굴(山房窟)이라는 자연석굴이 있는데 그 안에 부처님을 모셨기에 산방굴사(山房窟寺)라고 한다.

고려시대 고승 혜일이 제주를 유람하다가 이 절에 안거했다고 전할 만큼 안덕면 일대에서는 유래가 오래된 절이다. 산방산 입구에 들어서면 양옆으로 사찰이 나란히 자리하고 있다.

가운데 계단을 오르기 시작하여 200m쯤 되는 지점에 이르면 산방굴사가 나타난다. 스님이 한 분 기도하고 있고 시자가 한 사람 있다. 부처님을 모신 상단 밑으로 보면 천정 암벽에서 떨어지는 물이 있는데 이 물이 이곳에 살던 여신 산방덕이 흘리는 사랑의 눈물이라는 전설이 있다.

옛날 산방굴에 한 여신이 살았는데, 그녀 덕에 마을사람들은 평화롭고 화목하게 지냈다. 그런데 어느 추운 겨울, 고승이란 착한 청년이 노모를 위해 산머루를 따러 산방산에 올라갔다가 눈보라를 피해 굴로 들어갔다. 고승의 착한 마음에 감동한 여신은 자신도 인간이 되어 그와 같이 지내고 싶다는 욕망이 생겨나고 결국 신으로서의 삶을 포기하고 인간이 되었다.

인간이 된 여신은 산방산에서 데려왔다고 하여 산방덕이로 불렸고 소원대로 고승과 함께 살게 되었다. 그런데 고을 사또가 산방덕이를 탐내더니 고승에게 터무니 없는 살인 누명을 씌워 귀양보내 버렸다. 다시는 남편을 볼 수 없게 된 산방덕이는 산방산으로 도망쳤다. 산방덕이는 추악한 인간의 모습을 깨닫고는 자신 때문에 고통 받는 고승 생각에 하염없이 눈물을 흘렸다. 그녀는 점점 굳어지더니 바위로 변했
다. 그때부터 바위에서 물이 뚝! 뚝! 떨어져 작은 샘을 이뤘는데 사람들은 이 물을 남편을 그리워하는 산방덕이의 눈물이라고 여겼다. 한편 고승은 뒤에 화순리 곤물동네의 당신(堂神)이 되었다고 한다.

산방덕이의 그런 간절한 마음이 현대인들의 마음에 닿았는지 요즘 산방덕이물은 고3 수험생을 둔 학부모들에게 더욱 인기가 있는 곳으로 변모되고 있다. 무엇에 대한 염원이 너무 간절하다 보면 여러 가지 방법들이 모색되는데, 현대인들의 주된 관심은 사회적 성공에 있다. 그러다보니 그 첫 관문인 대학에 들어가는 일이 제일 큰 일생의 통과의례가 된 요즘 수험생 어머니들에게는 하나의 믿음이 전해지기 시작
했다. 그것은 다름 아닌 산방덕이가 흘리는 눈물의 결정체이고 샘물을 먹으면 수험생이 시험을 잘 본다는 것이다. 그래서 고3생을 둔 어머니들은 간절한 염원을 담아 그곳을 찾는다고 한다.

시대에 따라 우리네 염원은 그 내용을 달리하기도 한다. 하지만 염원이 이루어졌던 곳에서, 우리는 다시 의미와 상징을 부여하여 염원을 담고 있다. / 장혜련

*찾아가는 길 - 사계리 산방산 남서쪽 기슭 → 계단으로 200m 지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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