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승택의 도시읽기] (11)서울 삼청동-서귀포 성산 '문'

때로는 아무 생각 없이 길을 걷곤 합니다. 어느 길을 걸어도 예측 가능한 서울의 강남보다는 시간의 흐름이 켜켜이 쌓여 있는 강북이 훨씬 마음에 와 닿습니다.

목표를 두지 않고 정처 없이 떠난 길 위에서는 차를 타고 다닐 때 보지 못하는 여러 가지를 보게 됩니다. 특히 남들 다니지 않는 작은 골목길을 다니다 보면 우연히 보물을 발견하기도 합니다.

삼청동 어느 골목 안에서 발견한 하얀 벽에 난 빨간 문은 마치 딴 세상으로 들어가는 문 같기도 합니다. 그리고 하얀 여백에서 빨간 문이라는 싯구를 발견하여 멍하니 감상하기도 합니다.  

▲ 서울 삼청동 어느 문 ⓒ이승택

▲ 제주 서귀포 성산 어느 문 ⓒ이승택

제주는 참 걷기 좋은 곳입니다. 아름다운 풍경을 보며 걷다가 아무데서나 앉아 이야기도 나누고 맛있는 간식을 먹을 수도 있어 걷기에 이만한 곳이 또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또한 어디에서도 볼 수 없는 제주만의 아름답고 경외로운 풍경은 걸으며 비웠던 마음을 어느새 감동으로 가득 채우게 됩니다. 길을 걷다 보면 어느덧 자연을 벗어나 마을로 들어서게 되는데 우리나라 시골 마을이 대부분 그렇듯이 빈집이 빈 건물이 참 많이 보입니다.

제주 서귀포 성산의 어느 길을 걷다가 눈에 들어온 빈 창고건물은 제주의 돌로 벽을 세우고, 마치 벽을 잘라 놓은 곳에 문을 달아놓은 듯한 모습으로 제주의 느낌을 잘 보여줍니다. 삼청동의 문이 잘 정돈된 세련된 시를 떠올리게 한다면 성산의 문은 다듬어지지 않은 거친 시를 떠올리게 합니다. 어느 것이 좋다 나쁘다가 아닌 각각의 장소에 어울리는 그런 시가 탄생한 것입니다.

도시는 과거와 현재, 미래를 동시에 가지고 있으며, 가득차거나 비어있기도 하며, 역동적이거나 한산하기도 합니다. 이러한 흐름은 마치 시와 느낌이 비슷합니다. 도시를 걸으며 공간(都)이 보여주는 시(詩)를 읽어보는 것은 어떨까요? / 이승택 문화도시공동체 쿠키 대표

 

 
이승택 문화도시공동체 쿠키 대표는 서귀포시 출신으로 제주 오현고등학교와 건국대학교 건축공학과를 졸업하고 동대학원에서 계획설계전공 석사와 박사를 받았다. 현재 제주대학교 건축학부에 출강하고 있다.

특히 제주시 지역에 문화 인프라가 몰려 있는 데 문제 의식을 갖고 서귀포시에 다양한 문화를 만드는 데 주력하고 있다. 2006년에는 서귀포시에 갤러리하루를 개관해 40회의 전시를 기획해 왔으며 2009년부터는 문화도시공동체 쿠키를 창립 다양한 문화 사업을 진행해 오고 있다. 특히 공공미술과 구도심 재생 등 사람들이 거주하는 공간, 도시를 아름답게 하는데 관심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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