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병수 칼럼] "비극을 넘어, 4.3 교훈 잊어선 안돼"

   제주 4.3이 햇수로 63년을 맞는다. 그때 당시 어린아이는 백발노인이 되었다. 사건 후부터 50년간은 부모형제를 잃고도 목놓아 울기는커녕 하루하루 숨죽이며 속울음을 삼켜야 했다. 거기다 연좌제의 굴레마저 뒤집어쓰고 죄인 아닌 죄인으로 살아야 했다. 이 얼마나 억울하고 기구한 삶이던가. 더 이상 살아도 사는 게 아니요, 그저 하루빨리 야만과 무지의 어두운 장막이 벗겨지길 간절히 바랄 뿐이었으리라. 그 울부짖음이 하늘에 닿았을까. 독재정권이 횡행하던 암울한 시절이 지나 문민정부가 들어섰다. 그제야 오랜 시간에 걸쳐 역사의 뒤안길에 묻혀있던 제주4.3도 비로서 세상에 그 실체를 드러냈다. 겉에 두룬 이념적 대립의 표피를 벗겨내니 ‘공권력에 의해 억울하게 수많은 이들이 죽어간 참상(慘狀)’이 자리하고 있었다. 이 고장 제주에서 다른 어떤 것으로도 정당화되거나 용납될 수 없는 비문명적 범죄인 제노사이드(genocide)가 발생했던 것이다.

▲ 제주공항 4.3 집단학살지에서 발견된 유해가 뒤엉켜 있는 모습. 4.3 당시의 처참했던 상황을 말해주고 있다. ⓒ제주의소리DB

    이천년에 들어서면서 불과 3년 사이에 4.3특별법을 제정하여 공포되며 4.3진상보고서가 채택되어 본격적으로 진실규명, 명예회복과 희생자 유해발굴 등이 이루어진다. 2003년 10월말엔 대통령이 직접 “과거 국가권력의 잘못에 대해 유족과 도민여러분께 진심으로 사과와 위로의 말씀을 드린다.”며 공식사과를 표명한다. 이에 유족들과 제주도민은 너나할 것 없이 그동안의 고통과 슬픔에서 벗어나 한없는 기쁨의 눈물을 흘린다. 이제야 분노와 증오의 터널을 뜷고 용서와 화해, 상생과 평화의 길이 활짝 열리게 된 것이다.

    이렇거늘 일부 개인과 단체들이 편향적 이념의 잣대로 제주4.3흔들기를 획책한단다. 그들은 제주 4.3진상보고서를 전면 부정하고 평화기념관마저 매우 못마땅하게 여긴다. 함부로 진실을 오도하고 법적소송도 제기한다니 기가 막힐 노릇이다. 어떤 위로도 시원찮은 마당에 대놓고 긁어 부스럼을 만들고 있다. 솟구치는 분노를 넘어 그저 4.3영령들께 죄송스러울 뿐이다. 돌이켜 보면 이 모두가 제주도민이 자칫 방심한 탓일 게다. 서로가 힘을 합쳐도 모자랄 판에 마치 남의 일 인양 소극적인 자세를 취하자 얕이 본 게 아니고 무엇이랴.

▲ 지난해 열린 4.3 62주년 위령제. ⓒ제주의소리DB

  이에 중앙정부의 행태도 어정쩡하다. 제주4.3을 국가추모일로 마땅히 정해야하거늘 소위 반대단체의 의견을 청취하고 결정하겠다고 한다. 좌우 이념적 가지들을 다쳐버리고 다만 부당하고 억울하게 죽어간 도민들의 희생을 기려달라는데 그걸 다시 이념적 잣대를 들이대며 기다려 달란다. 참 옹졸하다. 이러고서 어떻게 국가를 신뢰할 수 있나. 하루빨리 정파와 이념의 굴레에서 벗어나 국가의 본질적 사명에 따라 제주4.3을 국가추모일로 정하여 유족들의 아픔과 상처를 씻어주고 제주도민의 신뢰를 회복하길 재삼 정중히 요청한다.

   바야흐로 제주4.3은 과거의 비극적인 사건을 넘어 현재와 미래발전의 지침이 되고 있다. 결코 그 교훈

▲ 고병수 신부(천주교제주교구 복음화실장) ⓒ제주의소리
을 잊어선 안된다. 주변에서 한 세대도 안지나건만 서서히 잊어져간다는 우려와 걱정이 많다. 한낱 지난 과거사(史)로 여길 뿐 지금여기에서 현재화(現在化)시키지 못한 증거다. 이는 제주의 영혼을 잃는 것이요, 제주인임을 포기하는 것과 다를 바 없다. 언젠가 부메랑이 되어 제주의 위기로 다가올 수 있음을 명심하자. 이를 독일의 전 대통령 바이츠제커는 “과거의 비인도적 행위를 기억하지 않으려는 사람은 새로운 감염의 위험에 쉽게 노출된다.”라고 확인해준다. 따라서 63주년을 맞아서 제주4.3의 정신을 올바로 승화하여 제주의 자존을 지키고 미래제주발전의 원동력이 되도록 항상 깨어있는 삶을 살아가도록 하자. / 천주교 제주교구 복음화실장 고병수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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