몽골말 160마리와 함께 시작된 제주 목마장
몽골말 160마리와 함께 시작된 제주 목마장
  • 김일우·문소연 (-)
  • 승인 2011.04.13 10: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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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 몽골을 만나다] 목마장의 역사가 시작되다

▲ ⓒ김일우·문소연

몽골과의 만남이 가져온 제주사회의 가장 큰 변화는 목축이었습니다.

그 이전부터 제주는 말 사육이 번성했던 지역이었습니다. 고려가 전국의 여러 섬에다 말을 키우고 번식케 해서 세금으로 거두어 국가 수요에 충당했는데, 그 수요의 상당량을 제주가 채웠었습니다. 그만큼 제주는 말을 기르기에 좋은 조건을 갖춘 지역이었지요.

전통적인 유목민족인 몽골족이 그것을 못 알아볼 리 없습니다. 몽골의 직할령이 된 직후에  파견된 몽골관인이 한눈에 알아채고 본국에 보고했던 모양입니다.

『신증동국여지승람』에 몽골이 “탐라를 방성(房星) 분야로 여겨 목장을 설치했다”는 기록이 나옵니다. ‘방성’은 말의 수호신으로 부르는 별자리입니다. 몽골이 ‘말의 수호신이 임하는 곳’으로 여길 만큼 탐라는 천연의 말 방목지였던 것입니다.

몽골이 몽골말 160마리를 제주에 들여와 동쪽의 수산평 일대에 풀어놓은 것은 1276년(충렬왕 2)의 일이었습니다. 그때 몽골식 목마장이 제주에 처음 설치된 셈입니다. 말을 기르고 관리할 ‘하치’들도 보냈습니다. 하치는 몽골족 가운데에서도 목축기술이 뛰어난 자들로 선발되어 제주에 왔으며 ‘목호(牧胡)’라고도 일컬어졌습니다. 다음 해에 목마장은 서쪽의, 지금의 한경면 고산리 일대로 확대됩니다. 그때 몽골은 말만 가져온 게 아니었던 모양입니다. 이들 목마장에서 소, 낙타, 나귀, 양 그리고 고라니까지 길렀다는 기록이 있습니다. 그 가운데 특히 말이 잘 번식되자 몽골은 몽골말을 계속 들여오는 등 제주에서의 말 사육에 더욱 힘을 기울였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1294년(충렬왕 20) 이전까지 몽골은 탐라 말을 몽골 본국으로 가져가지는 않았나 봅니다. 문헌으로는, 충렬왕 20년에 몽골의 황제 쿠빌라이의 사망으로 몽골의 일본 정벌이 완전히 종식되자마자 바로 탐라민이 몽골로 가 말 400필을 바쳤다는 기록이 처음입니다. 이는 탐라가, 몽골이 일본 정벌을 시도·추진했던 기간 중에는 이를 위한 전초·병참기지로 경영되었기 때문이었습니다. 탐라 말은 일본 정벌을 위해 탐라에 그대로 비축해두었다는 얘기지요. 

일본정벌을 포기한 뒤 몽골의 탐라 경영은 물자수탈에 초점을 두고, 탐라로부터 말을 비롯해 쇠고기, 피화(皮貨)[모직물류], 수유(油)[버터류], 포(脯) 등 목축과 관련된 품목의 물자들을 거두어갔습니다. 그러다보니 탐라목축에 큰 관심을 갖지 않을 수 없었겠지요.

제주의 우마 수가 크게 증가하고 사육시설과 운영인원의 규모도 커짐에 따라 1300년(충렬왕 26) 무렵에는 동·서 목마장이 동·서 아막(阿幕)으로 일컬어집니다. 탐라목마장은 이때 이미 몽골의 14개 국립 목장 가운데 하나로 자리 잡았던 셈입니다.

동·서 아막의 말은 몽골족 ‘하치’에 의해 사육되고 방목됐습니다. 몽골의 목축기술자들이니만큼 하치들은 몽골의 전통방식으로 제주 말들을 사육했을 것입니다. 특히 몽골에서처럼 목초가 풍부하게 나는 지역을 시기별로 찾아 말들을 몰고 다니며 사육했기 때문에 제주의 전 지역이 방목지로 활용됐습니다. 그러나 몽골지역과 다른 방식, 이를테면 해안지대에 우마를 방목하더라도 생 목초가 모자란 편인 겨울철 동안은 한 곳으로 몰아 미리 마련해둔 말린 목초와 곡초를 먹이는 제주우마사육방식을 적용하기도 했습니다.

제주사람들도 ‘하치’의 우마 사육방식으로부터 많은 영향을 받았습니다. 중산간 지대 이상까지 방목지가 확대된 점이라든가 ‘구렁말(아래아)’, ‘적다말(아래아)’ 등 제주의 말 명칭, 제주의 전통적 말안장, 제주의 우마 낙인 등도 몽골의 영향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합니다.

아무튼 탐라민과 몽골족 ‘하치’가 서로 영향을 주고받으면서 우마 등을 기르게 된 이후로 옛 문헌에 “말이 크게 번식해 산야에 가득했다”고 기록될 만큼 우마 사육 규모가 커지고, 목축 관련 방물의 산출도 크게 늘어나는 등 제주 목축업이 발달하게 됩니다.

▲ ⓒ김일우·문소연

<관련 유적 돌아보기>

제주 말의 혈통을 잇는 곳 
제주마 방목지

▲ ⓒ김일우·문소연

제주마 방목지는 흔히 5·16도로라 일컬어지는 제1횡단도로를 따라가면 만날 수 있습니다. 드넓게 펼쳐진 푸른 초원에 제주마들이 삼삼오오 짝을 지어 한가로이 풀을 뜯는 광경이 평화로워 보입니다. 이곳에 방목된 말들은 제주 재래마 가운데 천연기념물로 지정·보존·관리되거나 ‘제주마등록관리규정’에 등록된 ‘제주마(濟州馬)’들입니다.

제주마는 평균키가 116㎝ 정도인 중간 체구의 말입니다. 건강한 체질이어서 병에 대한 저항력과 생존력이 강합니다. 특히 굽이 치밀하고 견고한 게 장점인데, 성격이 온순하고 끈질기기까지 해서 하루 32㎞씩 22일 동안 연이어 행군해도 잘 견딘다고 합니다.

제주 재래마를 지금은 ‘제주마’라는 이름으로 통일해 부르고 있지만, 옛날에는 제주마는 물론이고 탐라마, 제마(濟馬), 토마(土馬), 국마(國馬), 조랑말 등으로 다양하게 불렀습니다. 

언제부터 제주에 말이 살고 있었는지는 확실치 않습니다. 기원전1세기~기원후5세기의 동굴입구 집자리 유적에 해당하는 한림읍 월령리 한들굴에서 말뼈가 나온 것으로 미루어 선사시대부터 이미 말을 기르고 있었던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이때의 말은 키가 과일나무 아래를 지날 수 있을 만큼 작아 ‘과하마(果下馬)’라 불렀던 마종으로 추정된다고 합니다. 기원전1세기~기원후7세기경 부여를 비롯해 고구려, 백제, 신라 지역까지 퍼져 길러지고 있었던 마종이었지요.

한반도 육지부에는 소형의 과하마가 전래된 이후 북방 유목민인 숙신(肅愼)·말갈(靺鞨)·동옥저(東沃沮) 등을 통해 마종이 확실치 않은 중형의 양마(良馬)가 들어왔습니다. 그런가 하면 흉노·거란·여진 등을 통해 호마(胡馬)라 부르는 대형·중형의 마종도 계속 들어왔습니다. 그래서 고려 때는 외래종인 호마(胡馬)와 재래종인 향마(鄕馬)라는 두 마종이 있었습니다. 향마는 과하마이거나 과하마 개량종이었을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고려사』에 “탐라가 문종 27년(1073)에 명마(名馬)를 중앙에 바쳤다”는 기록이 나옵니다. 그때 이미 제주에도 호마가 들어와 있었던 것이지요. 그러다 몽골 지배기 때 호마계통의 몽골말과 서역마(西域馬)가 본격적으로 들어왔고 번식하게 됩니다. 그 시기 제주에는 대형·중형의 몽골말과 서역마가 상당히 불어났으며, 그 말들과 종래의 말이 교접해 약간 큰말이 생겨나는 등 다양한 품종과 크기의 말들이 있었습니다.

몽골로 인해 제주에 말의 수가 많이 불어난 이후에는 반출만 있었지 새로 유입되는 일은 없었습니다. 게다가 제주에서는 종자수말을 제외한 나머지 수말은 거세하는 몽골의 거세술을 행하지 않았기 때문에 말의 교잡이 많이 발생했습니다. 세월이 지나 호마 계통의 말은 자연퇴화하게 되고 왜소하다고 평해지는 작은 말만 남게 됩니다.

결국 지금의 제주마는 5세기경 이전부터 제주에 있었던 과하마가 고려시대 들어온 몽골말과 서역마 등의 호마와 교접해 생겨난 혼혈마종인 셈입니다. 제주 말의 산출은 고려전기 이전부터 시작됐지만, 제주를 ‘말의 고장’이라 일컫게 한 것은 몽골과의 만남 이후 본격화 되었고 그것이 조선시대와 오늘날까지도 이어지고 있는 것이지요.

제주마를 구경하노라면 털빛이 대부분 밤색 계열이지만 나름대로 다양하다는 걸 알 수 있습니다. 말 털빛에 따라 제주사람들이 구분해 불렀던 이름들이 참 다양해 흥미롭습니다. 그 이름들을 비롯해 말 관련 어휘들에서도 몽골의 흔적을 찾아볼 수 있습니다.

▲ ⓒ김일우·문소연

▲ ⓒ김일우·문소연

▲ ⓒ김일우·문소연

조사된 내용을 소개해봅니다. (오창명, 2010, 「제주어에 남아 전하는 몽골어 차용어」에서 정리)

▲ ⓒ김일우·문소연
가레말 , 가라말 : 털빛이 온통 검은 말
먹가라 : 아주 새까만 말
추가라 : 다갈색의 검은 말
월레말 , 월라말 : 얼룩덜룩한 말
검은월라 : 검은색과 흰색 반점이 있는 말
노린월라 : 황색과 흰색 반점이 있는 말
간전이 : 밤색 빛깔에 이마와 뺨이 흰 말
씰간전이 : 밤색 빛깔에 이마에 흰 줄이 간 말
고라 말  : 등에 검은 털이 난 누런 말
구렁 말 : 털 빛깔이 밤색인 말
아질게말 : 새끼 말. ‘아질게’는 ‘새끼’ 또는 ‘어린 것’이라는 뜻을 가진 중세몽골어 ‘ajirΥa’의 소리를 빌려옴
적데말 , 적다말 : 털빛이 붉은 말
고치적다 : 아주 진하게 붉은 말
구렁적다 : 밤 빛깔 정도의 붉은 말
초적다 : 엷은 분홍색 말
거울말 : 흰색에 청흑색이 섞인 말, 또는 발목이 흰 말
유매, 유마, 유매말  : 갈기는 검고 배는 흰말, 또는 갈색 말
부인유마, 부흰유매, 부은유마 : 털빛이 진하지 않고 약간 부유스름한 말
청총이, 청총마, 청총매, 청초마 : 갈기와 꼬리가 파르스름한 흰 말

 / 김일우·문소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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