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민기자] 고봉선의 꽃과 함께

할 일은 많지만. 딱히 손에 잡히지 않고 어수선한 기분이 나를 휩싸고 도는 날이다. 정확히 12시 50분에 달랑 휴대전화 하나만을 들고 집을 나섰다.

자주괴불주머니가 지천으로 깔렸고 참꽃마리, 쇠별꽃, 주름잎, 냉이꽃, 광대나물, 살갈퀴 등이 노랗게 핀 유채꽃에 뒤질쏘냐 아우성치고 있는 들녘이다. 가까이에 산이 있다는 건 참으로 유쾌한 일이다. 냇가를 따라 걷다가 숲으로 들어섰다. 빨간 열매가 앙증맞게 와 닿는다.

   

숲을 벗어나니 허허벌판.

고려의 수도 개성이 아니어도, 고려말의 야은이 아니어도 절로 시조 한 수 읊었으면 좋음 직한 풍경이다.

어쩌면 그가 필마로 돌아들었던 곳도 이와 닮은 장소는 아니었을까? 마치 내가 길재라도 되는양 동산에서 마을을 내려다보며 조용히 그의 시조를 읊조려 보았다.

오백년 도읍지를 필마로 돌아드니
산천은 의구한데 인걸은 간 데 없네
어즈버 태평연월(太平烟月)이 꿈이런가 하노라.

어릴 적 즐겨 먹었던 찔레순을 만났다.

사진을 찍고 난 다음 꺾어서 먹어보았다. 어렸을 적 그대로의 달짝지근함이 묻어나 기분이 상쾌했다.

▲ 찔레순 ⓒ고봉선

안오름은, 고려 말 원종 때 최씨 무신 정권의 사병이었던 삼별초 군이 여몽 연합군과 맞서 최후까지 항쟁을 벌이던 항파두성이 함락되면서 마지막 싸움을 벌이던 곳이다.

끝까지 삼별초 군을 이끌던 김통정 장군은 장수물로 뛰어내려 한라산으로 가 자결하였다고 전해지고, 나머지 삼별초 군은 이곳 안오름에서 싸우다 전원 순의 했다.

어렸을 적 어머니께 들었던 말씀을 기억하자면, 이곳에서 사람들이 너무 많은 피를 흘렸기 때문에 흙이 피로 물들어 빨갛다고 했다. 그리하여 붉은오름이라고도 하며, 그곳에서 일하다 작업복에 물든 빨간 흙물은 빨아도 지지 않는다고 하셨다.

   
줄딸기도 제법 피었다.
꿀벌들이 윙윙 날아다닌다.

고무신만 신었더라면, 어릴 적을 떠올리며 한쪽 벗어선 휙 하니 한 마리 낚아채 꽁무니 뜯어내고 꿀 한 모금 빨아보고 싶었다. 덧없이 보낸 세월을 보상받을 수만 있다면 말이다.

   
오름을 벗어났다. 항파두리 근처에는 유적지 발굴작업의 흔적으로 뒤엎어놓은 흙이 많았다.

유채꽃의 노랑과 핑크빛의 지면패랭이가 묘한 조화를 이룬다.

   

토성과 유채꽃을 배경으로 한 컷 누른 다음 그늘에 앉아 친구에게 문자를 보냈다.

 ‘살갈퀴가 제법 피었더라. 펜션 뒤의 풍경이 궁금하구나.’

이내 친구에게서 전화가 걸려왔다.

 “다 베어내고 말았네요. 근처의 밭 주인이 지나가며 제초제를 흘렸는지 쪼르르 길을 내고 죽어버렸어요. 에라, 모르겠다 전부 베어내고 여름 지나면 다시 유채꽃 도전해 볼래요.”

몇 년 전 제주에 정착한 이 친구는 펜션을 운영하며 주변을 가꾸기 위해 오일장에 가서 유채씨앗을 한 되 사다 뿌렸다고 했다. 어느 날 친구와 함께 그곳에 놀러 갔더니 자라는 게 유채인지 아닌지 의심스럽다며 봐 달라고 했다. 가서 봤더니 모두 살갈퀴였다. 어찌 된 영문인지는 나도 모르겠다.

   

우리 집 뒤뜰엔 이제 막 사과꽃이 막 피기 시작했는데 마을 안 어느 집에서 배꽃이 한창이다. 일이 손에 잡히지 않는 날, 홀연히 집을 나서 자연과 함께 이야기를 나누다 돌아오는 길이 상쾌했다. / 고봉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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