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병수 칼럼] 끝나지 않는 보수단체 4.3 흔들기 시도

금번 4.3위령제가 끝나기가 무섭게 일부 보수단체들이 4.3흔들기에 나서고 있다. 지난 4월1일로 헌법소원과 행정소송을 제기한 7건 모두 패소하고도 이를 인정하지 않고 재차 상소를 한단다. 수백 번 사죄를 해도 시원찮은 마당에 도대체 이게 뭔가. 빗나간 이념적 고집과 명예로 더 이상 4.3영령들을 욕되게 하지 마라. 언제까지 제주 4.3 유족들과 도민들의 가슴을 후벼 팔 작정인가. 그럴수록 죄(罪)를 더하고 용서의 기회만 멀어질 뿐이다. 한순간 진실을 가릴 순 있어도 영원히 지울 순 없다. 이제 그만 역사를 거꾸로 돌려놓으려는 작태(作態)를 멈추고 역사의 순리를 따르라.

   예나 지금이나 한 국가의 성숙도(度)는 역사인식에 따른다. 아무리 경제가 발전하여 넉넉해도 과거를 부정하고 축소 왜곡하는 등의 천박한 역사인식을 갖고서는 성숙한 사회를 기대할 수 없다. 독일의 예를 보자. 제2차 세계대전 동안 히틀러는 유대인 6백만 명을 대학살하는 인류 최악의 범죄를 저지른다. 하지만 독일은 패륜으로 얼룩진 과거사를 솔직히 인정하고 세계를 향해 용서를 청한다. 심지어 살벌한 범행장소마저 공개하여 역사교육의 장으로 삼고 역사 바로 세우기에 성공한다. 무지와 야만의 그늘에서 벗어나 국제사회가 인정하는 성숙한 문명사회로 거듭난다. 이에 만일 과거를 숨기기에 급급했다면 어땠을까.

▲ 4.3으로 인해 한평생 고통과 외로움 속에 살다 간 故 진아영 일명 무명천 할머니 ⓒ제주의소리

   며칠 전 모 중앙일간지 칼럼을 읽다 아연실색했다. 우리나라 초대 대통령이 국가의 이념과 체제를 수호(?)했단 이유로 독재와 인권유린, 양민학살의 잘못에도 불구하고 광화문에 기념동상을 세워주자는 게 아닌가. 그 정확한 의도가 어디에 있든 역사적 상황인식은 물론 이념과 정파의 근간을 이루는 ‘인간’의 소중함을 철저히 외면하는 편향적 이념론자의 무지와 객기이자, 역사 왜곡의 전형이 아닐 수 없다. 그 어떤 이유와 명분, 상황을 들이대도 공권력에 의한 반인륜적 범죄는 결코 정당화될 수도 없고 되어서도 안된다. 이는 하늘을 우러러 씻지 못할 죄악을 저지르는 것이고 야만 사회를 불러오는 것이리라.

   이처럼 오늘날 한국사회는 이념의 잣대로 편을 가르고 거기에 역사마저 꿰맞추면서 끊임없이 갈등과 대립을 양산하고 있다. 거기다 다반사로 인간의 가치와 존엄성을 쉽게 훼손하고 있다. OECD회원국의 선두주자에 걸맞지 않게 역사의식은 아직도 걸음마단계로 풍요속에 빈곤(貧困)에 처해 있다. 독일과 같은 획기적인 변화가 요구된다. 정파와 이념의 틀을 과감히 깨고 인간위주의 올바른 역사 세우기에 나서야 한다. 여기서 제주4.3을 그 실타래로 삼도록 하자. 제주 4.3의 해결은 우리나라가 성숙한 문명사회로 나아가기 위한 디딤돌이다. 

▲ 고병수 신부(천주교제주교구 복음화실장) ⓒ제주의소리
   이런 점에서 제주4.3은 제주만이 아닌 우리 사회 전체를 위해서도 꼭 풀어야 한다. 이를 위해 무엇보다도 국가추모일로 정하는 게 시급하다. 이는 좌우이념의 틈바구니 속에서 아무런 이유없이 죽어간 수많은 영령들과 그 후손들에게 국가가 해 줄 수 있는 최소한의 예의다. 나아가 진정한 국민통합과 국론일치의 물꼬를 트는 첩경이 된다. 다음으로, 대통령께서 직접 와서 유족들의 손을 잡아주고 흐르는 눈물을 닦아주어야 한다. 백성의 생명을 최우선 가치로 보호해야 할 사명과 의무를 지니기에 이쪽저쪽 눈치를 살피어 애써 외면하지 말고 임기 중에 한번쯤은 와서 제주도민에게 감동을 주길 재차 바란다. 이럴 때 제주4.3해결의 실타래가 풀리고 비로서 깊은 아픔과 상처의 굴레에서 벗어나 상생과 화해의 길로 나아갈 수 있게 될 것이다. / 천주교제주교구 복음화실장 고병수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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