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방개혁 법률 개정과 제주해군기지의 운명

   제2의 제주 4·3이라 일컬어지고 있는 게 제주해군기지이다. 이는 4.3과 해군기지 모두 국가권력의 무리-독선-횡포에 의해 제주가 희생을 보고 있다는 데에 주목하는 주장이다. 해방 직후 이념갈등의 소용돌이에서 국가권력에 의해 무고하게 많은 희생자를 낸 게 4.3 비극이라고 한다면, 21세기 민주화-탈냉전-세계화 시대에 어울리지 않게 국가권력에 의해 제주의 가치와 미래 비전이 희생을 당하고 있는 게 해군기지 비극이라는 점에서 유사성을 갖는다.

  그러나 지난 수년 동안 말도 많고 논쟁도 많았던 제주해군기지가 마침내 국방부의 재검토 대상이 될 가능성을 맞게 되었다. 왜냐하면 4월 29일 국방부는 국방개혁에 관한 법률 개정안을 제출하면서 합동성이 발휘되는 목적을 '미래전쟁의 양상에 대한 대비'에서 '전장에서 승리하기 위해'로 바꾸었기 때문이다.

  돌이켜 보면 지난 수년간 해군기지로 인해 강정마을의 공동체가 망가지고 세계평화의 섬 제주의 비전은 주눅 들어 왔다. 수많은 평화․생태 애호가들뿐만 아니라 제주를 아끼는 국내외 많은 분들이 해군기지 때문에 속상해 왔다. 2년 전에는 무리한 해군기지 추진 때문에 제주도지사에 대한 소환운동이 일어날 정도로, 지난 수년간 해군기지는 제주의 에너지를 손상시켜온 제일 주범 가운데 하나였다. 그런가 하면 오늘도 양윤모 평론가는 26일째 생명을 바쳐가면서 해군기지건설에 반대하는 순교자의 길을 걷고 있어 주위에 안타까움을 더하고 있다.

  이렇게 많은 비용을 치르면서 국방부는 왜 해군기지를 무리하게 강행하려고 하는지 그 속셈을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왜냐하면 제주도민들이 무조건 해군기지를 거부하고 있는 게 아니기 때문이다. 한국전쟁 때 제주도민들이 해병대에 입대하여 조국을 지킨 이래 제주는 단 한 번도 안보를 외면한 적이 없다. 또한 대양해군의 기치가 미래의 안보를 위해 언젠가는 필요하다는 주장도 일리가 있음을 부인하지 않는다.

  다만 아무리 좋은 의미의 국책사업이라 하더라도 일방적으로 절차를 무시하면서 밀어붙이는 것은 안 된다는 데에, 해군기지를 바라보는 대다수 제주도민들의 공감대가 존재한다. 뭐 그렇게 급하지도 않고 또 시각에 따라서는 불필요하다고 생각되는 게 제주해군기지일진데, 이를 추진하는 정부는 보다 여유를 갖고 도민을 설득하고 차근차근 추진해도 된다는 생각이 더 합당해 보이기 때문이다.

  7,8년 전부터 제주해군기지가 조속히 건설되지 않으면 대한민국의 안보에 큰 구멍이 날 것처럼 호들갑떨던 국방부의 입장은 오늘날에도 전혀 변함이 없는지 마냥 밀어붙이지 못해 안달이다. 2011년 5월의 시점에서 보면 대한민국의 안보가 이전보다 불안해 진 이유가 바로 7, 8년 전부터 국방부가 그렇게 밀어붙이고자 했던 제주해군기지가 건설이 안 되었기 때문인가. 오히려 북한의 대남전략을 적절히 관리해 오지 못한 이명박 정부의 대북정책 실패가 더 큰 이유가 아닐까. 사안이 이렇다면 안보는 가능하면 군사력보다는 대북정책이나 국제공조를 통해 지키는 게 더 돈도 적게 들고 실효성도 더 높은 게 아닌가라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다. 

  정말 이해하기가 어렵다. 한 보름 전 김여진 배우가 의문을 제기한 것처럼, ‘제주에, 그것도 생태․환경 절대보전지구로 지정한 강정마을에 왜 해군기지를 건설하고자 하는지,’ 그 이유가 궁금하다. 왜냐하면 강우일 주교의 지적처럼, ‘힘으로 평화를 이룰 수 없음’은 이라크와 아프칸이 입증해 온 바이기 때문이다. 

  4․3의 이념갈등으로 20세기 제주사상 최대의 비극을 겪었던 제주가 21세기 세계사에 기여할 바는 다름 아닌 평화를 창출․유지․확산하는 데 있을 것이며, 이는 힘이나 전쟁이 아니라 대화와 교류협력이라는 ‘평화적 수단’을 통해서 일 것이다. 그래서일까 21세기적 평화 논리에 비해 설득력에서 밀린 20세기적 힘의 논리를 보강하기 위해서인지, 국방부가 적극 제시하고 있는 게 바로 해군기지 공사를 통한 제주지역경제의 활성화이다. 그렇게 해군기지는 어느덧 안보 사업이 아니라 개발 사업으로 둔갑해 버렸다.

  우리 선인들의 경험을 통해서 보여준 인간사의 상식 가운데 하나가 ‘급할수록 돌아가라’는 것이다. 왜냐하면 급하다고 절차를 무시하고 여론 수렴을 게을리 하면 할수록 일은 오히려 더 꼬이고 더디게 진행될 뿐만 아니라 심지어는 아니 한만 못한 경우가 허다하기 때문이다. 더욱이 대양해군론 폐기에서 보듯이 해군기지처럼 그렇게 급한 게 아니라면, 좀 호흡을 가다듬으면서 천천히 추진해도 무리가 없을 것이다.

  며칠 전 해군기지 공사 중단을 요구하는 김재윤 국회의원 등 제주 야5당의 요구에 대해 해군이 공사를 중단하게 되면 ‘하루에 1억씩 손해 본다’는 이유로 막무가내의 자세를 취한 걸 보면서, 이러한 대답이 이해되기도 어렵지만, 다른 한편으로 정말 공사 중단으로 그렇게 많은 손해를 보도록 일을 꾸려나가는 해군에 대해 실망만 클 따름이다. 이렇게 제대로 일도 못하고 융통성도 없는 군 태세로 어떻게 전략적 유연성을 요하는 미래전에 우리 군이 제대로 대비해 나갈 수 있을는지 걱정이 앞설 뿐이다. 

  제주에 올 때마다 말로는 제주를 ‘한반도의 보석’이라 일컬으면서도 이를 아끼고 가꾸어나가려는 정부의 노력도 그리 큰 것은 아니었다. 물론 세계평화의 섬이라든가 국제자유도시 비전으로 제주의 독특한 지정학과 생태적 환경을 활용하려는 정부 부처의 남다른 노력이 없는 건 아니다. 그러나 그 어떤 시도와 방책도 해군기지의 안보논리 앞에서는 아무 소용이 없었던 게 지난 수년간 제주를 대하는 정부의 모습이다. 그에 따라 지난 수년간 동아시아 교류협력의 지렛대가 되고 평화번영의 제주국제자유도시를 추동해 나가는 데 어려움을 겪게 된 큰 요인 가운데 하나로 제주해군기지를 지목하는 걸 주저할 필요가 없을 지경이 되고 말았다. 인구 55만의 제주가 한데 손을 모아도 될까 말까 하는 게 세계평화의 섬과 국제자유도시 그리고 세계환경도시라는 3가지 미래 비전일 텐데, 이를 제대로 추진하기도 전에 해군기지 문제를 둘러싸고 도민 사이에서 갈등과 반목만 키워왔던 게 오늘의 어려운 상황이다.   

  누구를 위한 그리고 무엇을 위한 해군기지였는지, 도통 헷갈리기만 한 지난 7-8년의 세월을 되돌아보면, 이번 국방개혁 법률 개정은 새로운 전변의 가능성을 시사해 주고 있다. 많은 경우 노무현 정부의 정책을 폐기하는 방향에서 이른바 'ABR'(Anything But Roh Moo-hyun) 정책을 취하던 이명박 정부가 해군기지 문제에 대해서도 방향 전환을 할 수 있음을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노무현 정부 시기에 적극 태동하기 시작한 ‘대양해군’ 목표를 사실상 철회하는 내용의 국방개혁에 관한 법률 개정안을 입법예고함에 따라, 제주해군기지 운명도 다시 점검되는 건 당연한 일일 것이다.  

  문득 국방부의 안보 논리가 미래에서 현재로 바뀌게 된 사연을 보면, 다시 한 번 인간사의 역설을 확인하게 된다. 왜냐하면 지난해 천안함 침몰과 연평포격을 거치면서 '대양해군 건설론'에 대한 비판이 제기되자, 급기야는 국방부가 북한의 국지도발 대비를 최우선 과제로 삼는 방향으로 전력증강 방향을 바꾸었기 때문이다.

  대양해군이란 다양한 형태로 제기되는 주변강국의 위협에 대해 첨단 장비로 대처한다는 것으로, 일종의 미래전에 대비한 전력증강의 하나였다. 그러나 이제 국방부는 미래에 대한 대비보다는 ‘북한의 비대칭 위협 등 국지도발 및 전면전 위협 대비에 주력’하는 방향으로 되돌아 온 것이다. 이에 따라 이지스함 등 대형함정 추가건조와 공군의 공중급유기 도입 등 주변강국 위협과 첨단 미래전에 대비한 전력증강 계획들이 취소되거나 늦춰질 전망이다.

▲ 양길현 제주대 교수회장
  그렇다면 대양해군론에 기초했던 제주해군기지도 원점에서 다시 검토하고 수정하는 것은 자연스런 것일 것이다. 국방개혁 목표가 바뀌었다면, 제주해군기지의 효용성도 바뀌는 게 맞기 때문이다. 더욱이 제주도민들이 수년 동안 그렇게 반대하는 해군기지 추진을 보다 시간을 갖고 그 타당성과 수용성을 면밀히 검토하면서 장기적 태세로 들어가는 것도 하나의 순리일 것이다. 물론 이러한 필자의 기대가 순진하고 낭만적인 것으로 끝날 가능성도 크다. 그럼에도 국방개혁의 변화에 발맞춰 제주해군기지 방향도 개혁되는 게 세계평화의 섬 제주의 미래를 위하는 것임을 다시 한 번 강조하는 데 주저하고 싶지 않다.   /양길현 제주대(윤리교육과) 교수회장  <제주의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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