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라산 만인보③] 4년째 사업자-주민 갈등...경관과 어울리지 않는 개발

1991년 제주도개발특별법이 통과된 지 20년이 흘렀습니다. 10년이면 강산이 변한다고 합니다. 20년 동안 제주에는 개발 광풍이 불어닥쳤습니다. 하지만 개발에 대한 이익과 환경파괴, 그리고 성찰은 없었습니다. 창간 7주년을 맞은 <제주의소리>와 20년이 된 <제주참여환경연대>, 그리고 <천주교 제주교구 생명특별위원회>는  특별기획으로 제주개발의 빛과 그림자를 현장에서 찾아보려 합니다. '한라산 만인보'가 그 프로젝트입니다. 한라산 만인보(萬人步)는 '제주의 과거를 거슬러 미래를 밝히기 위한 만인의 행보'입니다. 이 프로젝트를 통해 올바른 제주개발의 대안과 방향성을 찾아보려 합니다. - 편집자 주

가장 아름다운 경관을 자랑하는 곳 중에 하나가 ‘섭지코지’다. 섭지코지는 서귀포시 성산읍 신양리 신양해수욕장과 성산일출봉 사이에 약 2㎞ 정도 툭 튀어나온 곳이다. ‘섭지’는 드나들 수 있는 골목이 100m 내외로 비좁다는 ‘협지’에서 유래됐고, 코지는 곶을 뜻하는 제주어다.

섭지코지는 성산일출봉 전망이 가장 좋은 곳으로 1990년대까지 알려지지 않은 곳이었지만 ‘올인’등 각종 드라마와 영화가 촬영되면서 관광지로 부각되고 국내외 관광객이 많이 찾고 있는 곳이다.

푸른 초원에 말과 소가 뛰어다니던 섭지코지. 그 안에 붉은오름과 선돌(선녀바위)까지 산책로까지 해안 풍경은 절경이다. 특히 붉은오름 위에 설치된 등대위에서 바라보는 성산일출봉의 전망은 끝내 준다.

섭지코지 붉은오름 정상의 등대와 선돌바위
하지만 섭지코지의 해안 절경은 이미 반토막이 돼 버렸다. 3개 단지 20개 지구개발사업 중 하나인 성산포 해양관광단지 개발사업이 진행되고 있기 때문이다.

성산포 해양관광단지에 포함된 섭지코지에는 해양과학관이라는 이름으로 대형수족관이 들어서고 있고, 또 다른 하나는 대형호텔과 리조트를 포함한 해양레저사업이 이미 들어서 있다.

해양레저사업은 섭지코지 일대 20만평에 마린레포츠센터와 오션디스커버리파크(해중전망대, 해양생물가든, 해수스파랜드) 등의 해양문화시설 및 운동시설과 호텔.콘도 등 숙박시설을 도입할 계획이었고, 2003년 국제공모를 거쳐 해양관광단지 개발사업자로 (주)보광과 휘닉스개발투자(주)가 지정됐다.

성산일출봉 전경을 막아버린 건축물
보광은 총 사업비 3870억원을 투입해 섭지코지 주변 19만7624평과 공유수면 8944평에 건축연면적 6만1525평인 해양관광단지를 휘닉스 아일랜드라는 이름으로 2006년 4월에 착공해서 2008년 6월에 준공했다.

300실 규모의 콘도, 50실 규모의 빌라형 콘도, 엔터테인먼트센터, 해중전망대, 해양레포츠센터, 수호신상인 지니어스로사이, 유리피라미드, 레스토랑 글라스하우스 등이 들어섰다. 지니어스로사이와 글라스하우스는 일본 건축가 안도 타다오, 유리미라미드는 마리오 보타라는 세계적인 건축가가 참여했다.

보광은 당초 섭지코지에 들어가는 입구를 하나로 만들고, 나머지 길 모두를 폐쇄하는 프라이빗 비치로 만들 것을 구상한 것으로 알려졌다.

분양가가 20억원이 넘는 빌리지
실제로 지난 2007년 5월 보광은 국유지와 공유지인 섭지코지 올인하우스 주차장과 진입로를 제주도로부터 매입했다. 하지만 신양리 마을 주민들이 5개월 동안 강력하게 반발하자 제주도는 보광으로부터 다시 매입하기도 했다.

주민들이 반발한 이유는 관광객을 상대로 주차료와 상가를 운영하는 수입을 얻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반면 보광측은 주차장 인근에 지어진 분양가만 20억원대인 빌리지가 분양되지 않아 골머리를 앓고 있다.

4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보광과 주민들은 주차장과 상가부지를 이전을 위해 협상을 하고 있는 상태다.

이런 와중에 보광은 휘닉스 아일랜드 부지내에 입장료를 내지 않으면 관광객과 제주도민의 출입을 금지하고 있다. 섭지코지의 80% 이상은 보광이 소유하고 있는 곳이여서 관광개발을 하면서 자연경관을 볼 기회를 차단한 셈이다. 한마디로 경관도 ‘사유화’를 한 것이다.

섭지코지 개발사업자는 소유지의 출입을 막고 있다.
뿐만 아니라 지역주민 고용창출도 약속도 대부분 청소부나 주차관리, 매표소 요원으로 활용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신양리 모 주민은  “지난 2007년 주차장과 진입로 부지를 주민동의 없이 제주도가 보광에 팔아버렸다”며 “마을 주민들이 들고 일어서자 다시 없었던 일로 돼 버린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 주민은 “보광이 약속한 일자리 창출도 대부분 청소부나 주차관리를 시킬 뿐”이라며 “이게 무슨 고용창출이고, 일자리냐. 한마디로 알맹이 없는 것”이라고 비판하기도 했다.

제주지역에서 이뤄진 대규모 관광개발이나 골프장 건설로 인한 고용창출은 대부분 일용 노동자로 이뤄지고 있다.

매표소
섭지코지의 개발 문제는 이 뿐이 아니다. 세계적인 건축가가 참여했다고 하지만 휘닉스 아일랜드의 건축물들은 제주의 경관과 맞지 않다는 의견이 제시되고 있다.

특히 유리피라미드와 글라스하우스의 경우가 그렇다. 유리피라미드는 섭지코지 주변 경관가 전혀 어울리지 않고, 글라스하우스의 경우 세계자연유산의 하나인 성산일출봉의 전경을 막아버린다.

김태일 제주대 건축학과 교수는 “세계적인 건축가인 안도 타다오씨가 설계한 글라스하우스는 건축학적으로는 의미있는 건물이지만 주변 경관을 압도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김 교수는 “제주 땅, 사람과 소통을 고려하지 않은 건축물들이 배치돼 있다”며 “자연경관을 고려하지 않은 대표적인 곳이 휘닉스 아일랜드”라고 말했다.

섭지코지 등대에서 바라본 대부분의 관광객들은 성산일출봉의 경관을 막아버린 글라스하우스에 대해 “저 건물은 허가를 하지 말았어야 할 것”이라며 “자연경관을 헤치는 건물”이라고 말한다.

올인하우스
신양리 주민들이 세운 주차장과 상가
<제주의소리>

<이승록 기자 / 저작권자ⓒ제주의소리. 무단전재_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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