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군기지, 전라·경상도라도 이랬을까...

해군기지 문제에 오랫 동안 관여해 오면서 분명하게 느낀 게 하나 있다. 국가사업으로 지역주민들이 이토록 고통을 겪고, 수년째 지역의 가장 큰 현안이 되고 있는 해군기지같은 사안이 제주가 아닌 전라도나 경상도 어디에서 벌어져도 정치권이나 정부가 지금 이대로 놔두었을까 하는 점이다.

어떤 사람들은 해군기지 건설을 반대하는 도민들을 향해 너희들은 국민이 아니냐고 한다. 국가의 안보를 위한 사업이기 때문에 당연히 협조해야 하는 것이 국민의 도리이자 의무라는 것이다. 여기에 국민주권의 논리를 들이댈 생각은 없다. 다만, 군 기지를 반대하는 사람들도 국민이기 이전에 마땅히 존중받아야 할 ‘개인’이자, 터전을 일구고 살아가는 ‘주민’이라는 것은 강조해두고 싶다.  이것을 건너뛰고 국민의 의무를 말하는 순간, 그 사회야말로 전체주의의 산물이 되고 말 것이다. 그런 점에서 해군기지 문제의 과정은 우리사회의 민주주의란 여전히 국가권위주의의 발밑에 있음을 보여줄 따름이다.

문제는, 이런 상황에 직면한 제주도 지방정부의 태도이다. 자신의 주민들이 국가로부터 이렇듯 외면받고 희생을 치르고 있는데, 정작 제주도 행정은 무력하다. 처음에는 국가가 하는 일에 협조할 수밖에 없다는 논리로 그러더니, 이제는 행정이 할 수 있는 게 없다는 식이다.

행정은 집행기관인 동시에 주민의 안전과 복리를 우선하는 주민의 대표체이다. 해군기지라는 국가사무를 집행하는 것도 행정이 해야 할 일이겠지만, 주민의 안전과 복리를 더 우선시 하는 것이 마땅히 행정이 서 있어야 할 위치인 것이다. 적어도 민선자치시대에, 그것도 이른바 명색이 ‘특별자치도’ 아닌가. 그것이 정당하든, 부당하든 행정이 자기관할의 주민들이 힘든 처지에 놓여 있다면 그것의 해결이 우선이 되어야 한다. 하물며, 오랜 시간 대다수 도민이 괴로워하고 지역사회가 혼란과 갈등에 처하게 된 것이 위법․부당함으로 얼룩진 국가사업으로 인한 것이라면 자치의 행정은 그것이 상위 국가일지라도 당당히 요구하고 맞서야 한다. 그런데 그간 도 행정이 보여준 모습은 국가의 집행자를 자처하며 오히려 주민들을 분열시키고 잡아가두는 일에 앞장서거나 모른 척 외면해 왔으니 유구무언의 지경이라 아니 할 수 없다. 그것은 말만 자치이고, 얼굴만 특별자치이지 속모양은 관치시대에서 한발짝도 빠져나오지 못한 그 얼굴 그대로일 뿐이었다. 해군기지문제는 특별자치의 운명이 걸린 중대한 실험대가 되었다. 그러나 해군기지 문제의 과정에서 지역행정이 보여준 모습은 ‘주민자치’가 철저히 배제된 채 관주도로 일관해 온 특별자치의 일그러진 얼굴을 고스란히 드러내는 과정일 뿐이었다.

이제 더 이상 이런 것을 논하는 것조차 무슨 의미를 거둘까 싶다. 그런데 이것 하나 만은 말하고 싶다. 서두에서 전라도, 경상도 운운한 이유다. 해군도 기지건설이 무슨 큰 발전인냥 선전해댔지만, 많은 도민들도 해군기지 건설의 댓가로 국가가 뭔가 큰 선물을 줄거라 기대했었다. 그러나 결과는 역시나 ‘속빈강정’이었다. 이것은 자존심 상할 일도 아니다. 스스로 헛물켜다 낭패 본 것 뿐이니까.
그런데, 국가의 사업으로 인해 제주의 주민들이 수년 동안 말할 수 없는 고통을 겪고, 지역사회가 온통 논란으로 들끓고 갈등해 왔는데도 정부는 내내 대책은커녕 관심조차 없었다. 기지건설에 찬동하는 사람들의 경제적 기대감대로 무언가를 얻기 위해 제주의 보물같은 곳을 내주면서까지 알아서 ‘협조’했지만 국가로부터는 기대했던 어떤 ‘선물’도 받지 못했다. 최근에는 도지사가 본의든 타의든 기지건설 공사의 '임시중단‘을 요청했지만 그것도 ‘실무협의회’ 회의자리에서 일언지하 거절당했다.

이미 해군기지 수용을 공식 천명한 도지사에게 하는 묻는 것이 아니다. 여전히 변방으로 방치된 제주의 대표에게, 특별자치의 수장에게 묻는 것이다. 지금이라도 할 말은 해야 하는 것 아닌가. 국가가 나서지 않는다면, 도지사로서 주민들의 처지를 우선 보살피는 것이 아무리 안보사업이지만 그것보다 더 중요하다고. 그러니 지금이라도 공사는 중단되어야 한다고. 아무리 국가사업이지만 그것이 받아들여지지 않는다면 협조할 수 없다고 말이다. 해군기지 공사 중단 안되면 죽겠다고 유서쓰고 목숨 내놓은 사람이 있는데, 사람부터 살리고 봐야할 것 아니냐고. 아무리 국가사업이지만 그것이 한 사람의 목숨보다 중요할 수는 없다고. 아무리 국가사업이지만 단 한 명의 도민이라도 희생되는 것은 도지사로서 용납할 수 없다고 말이다.

▲ 고유기 제주참여환경연대 정책위원장
국가로부터 큰 희생을 당하고도 수십년 동안 숨죽이고 있어야 했던 제주였다. 4.3으로 빨갱이라는 오명을 벗기 위해 군입대를 자청해 전쟁터에 나서야 했던 슬픈 경험을 안고 있는 제주도민들이었다. 담배 하나를 만들더라도 제주도민에게 먼저 피워보게한 다음 시장에 내놓토록 한 경우조차 있어왔다. 그런 제주도민들이 또다시 국가로 인해 큰 고통을 겪고 있는데도 정부는 나몰라라 아랑곳 없다. 여전히 그들에게 제주는 변방일 뿐인 것이다.

제주도지사와 국회의원 세 명에게 묻고 싶다.
“자존심도 없습니까!” / 고유기 제주참여환경연대 정책위원장 <제주의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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