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나무, 포기도 이르지만 무리한 목표 독이 될 수도
[대재앙 재선충] ③방제 품질 향상이 우선...선택과 집중으로 전환해야
소나무 에이즈라는 잔인한 수식어가 따라다닐 만큼 치명적인 소나무 재선충병으로 제주산림이 신음하고 있다. 수 백억원의 방제비용을 쏟아 부었지만 예찰은 빗나갔고 방제는 기대만큼 효과를 거두지 못하고 있다. 그 사이 현장에서는 각종 비리 의혹이 불거지고 있다. 이 참에 소나무를 포기하고 대체조림에 눈을 돌리자는 말까지 나온다. 재앙이 된 소나무 재선충병 방제의 문제점과 해법을 세 차례에 걸쳐 짚어본다. [편집자주]
[글 싣는 순서]
1. 재선충 습격 10년, '소나무 멸종' 기우일까?
2. ‘부실과 오류’ 빗나간 재선충 방제작업
3. 완전방제 험난, 소나무 포기해야 하나?
'극적인 소나무방제'는 없다는 현실적인 목소리가 다수였다. 당장 방제 품질을 높이는데 최선을 다하고 장기적인 방제계획을 세워야 한다는 취지였다. 기본에 충실하자는 의미다.
당시 정영진 국립산림과학원 산림병해충연구과장은 “기발한 아이디어 하나로 재선충병을 해결할 일은 없다. 매듭을 풀듯이 방제 품질을 올리는 것이 현재로서는 최선의 방법”이라고 말했다.
소나무 재선충병은 제주만이 재앙이 아니다. 1988년 부산에서 국내 첫 소나무 재선충병이 발생한 후 1998년 전국적으로 1400그루이던 감염목이 2006년에는 137만 그루로 치솟았다.
정부는 급기야 소나무재선충 방제를 위한 특벌법(2005년)까지 제정하며 재선충 완전 제거를 외쳤지만 방제계획을 비웃기라도 하듯 2013년 전국의 고사목은 218만 그루로 오히려 급증했다.
제주 역시 크게 다르지 않다. 제주도는 2018년까지 고사목 발생빈도를 현재의 5% 수준으로 낮추고 2020년에는 ‘소나무 재선충병 청정지역 선포’를 목표로 내걸었다.
전국 최초의 집합 페로몬 방제와 파쇄, 매몰 강화 등 5대 중점전략도 마련했다. 한라산 국립공원으로 이어지는 지역에 대한 집중적인 압축방제도 계획하고 있다.
도내 소나무 재선충병 모니터링에 참여했던 윤석 울산생명의 숲 사무국장은 섣부른 청정지역 선포를 경계했다. '때 이른 축배'가 독이 될 수 있다는 점을 간과하지 말아야 한다고 지적했다.
실제 대구시 달성구와 강원도 춘천시, 경북 상주시는 대대적인 재선충병 방제 작업을 벌여 2011년 나란히 청정지역을 선포했지만 현재는 고사목이 다시 발생해 추가 방제를 벌이고 있다.
그는 또 “제주는 육지와 달리 곶자왈이 있고 밭 주변에도 소나무가 자생하는 등 식생환경의 차이가 크다”며 “완전방제보다 포기할 건 포기하는 집중방제로 전환해야 한다”고 말했다.
방제 방식의 전환 요구가 커지자 제주도는 지역 특성에 맞게 훈증과 소각 대신 파쇄와 매몰 비율을 높이고 항공방제와 페로몬 방제 비중을 높이기로 했다.
페로몬 방제란 곤충을 유인할 때 나오는 분비물인 ‘페로몬’으로 덫을 설치해 재선충병의 매개충인 솔수염하늘소를 잡는 방식이다. 수컷 성충을 다량으로 포획할 수 있는 것이 장점이다.
제주도는 2차 방제가 이뤄지는 2015년 8월까지 10억원을 투입해 1000ha에 페로몬 방제를 진행하기로 했다. 육상 방제가 어려운 농경지와 문화재지구 등이 주요 대상이다.
대만의 경우 소나무를 전량 제거해 삼나무 등으로 대체하고 있다. 제주도 역시 고사목 자리에 편백나무와 종가시, 황칠나무, 동백나무 등을 심는 등 부분적인 대체 조림사업을 벌이고 있다.
신창훈 한라산연구소 생태환경연구과장은 “한국은 소나무에 대한 자긍심이 어느 나라보다 크다”며 “다른 나라처럼 소나무를 포기하기에는 이르다. 대신 현실적인 방제를 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가치를 구분할 수 없지만 상대적으로 쓸모없는 소나무도 있다”며 “문화재와 한라산 경계 지역을 중심으로 방제하고 장기적으로 관리가능한 수준까지 감염목을 줄여야 한다”고 밝혔다.
전문가들이 얘기하는 관리가능한 감염목은 현재 제주지역 고사목의 5% 내외인 1만~2만본 수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