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00년 소나무의 눈물’ 사라지는 보호수

2015-03-16     김정호 기자

[소나무재선충병 기획]① 해송 6그루 이미 고사...예방약제 투입 제각각

제주에서 소나무 재선충병 방제에 투입된 예산만 1000억원에 육박했다. 수많은 예산과 인력을 투입하고 있지만 기대했던 방제성과는 거두지 못하고 있다. 그사이 수백년간 제주 땅에 뿌리를 내리며 자라온 보호수들이 줄줄이 고사하고 있다. 일부 지역에서는 주민들이 환경파괴를 우려하며 방제작업을 막는 일까지 벌어졌다. 지역 특성에 맞는 제주형 방제를 위한 연구는 더디기만 하다. 당장 추진해야할 제3차 방제 계획 수립도 걱정이다. [제주의소리]가 4번째 재선충 기획을 통해 방제 실태와 문제점을 짚어봤다.  -편집자주  

글 싣는 순서
①‘600년 소나무의 눈물’ 사라지는 보호수
②‘잘려나간 곶자왈’ 온몸으로 막는 주민들
③소나무방제에 1000억, 연구에는 고작…

▲ 제주시 도련1동 후동산의 보호수. 수령 150~200년의 소나무 4그루가 있었지만 2013년부터 재선충병에 감염돼 모두 제거됐다. 그 자리에는 녹나무 6그루가 심어졌다. ⓒ제주의소리
▲ 제주시 도련1동 후동산의 보호수가 있던 자리. 수령 150~200년의 소나무 4그루가 있었지만 2013년부터 2015년 2월까지 재선충병에 연이어 감염돼 모두 제거됐다. 그 자리에는 녹나무 6그루가 심어졌다. ⓒ제주의소리
제주시 도련1동 마을회관에서 동쪽으로 약 300미터를 이동해 숲을 헤치고 들어서자 높은 돌계단과 커다란 바위가 눈에 들어왔다.

암석 뒤에는 후동산송목보호회(後同山松木保護會)라는 글씨가 선명했다. 비석 설명과 달리 주위에 소나무는 없었다. 최근에 식재한 것으로 보이는 녹나무 6그루만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바닥을 훑어보니 둘레 2m가 넘는 나무 밑둥이 시야에 들어왔다. 불과 2년 전만 해도 아름드리 소나무(해송) 4그루가 선비와 같은 자태를 뽐내던 도련 후동산(후돈산)의 현재 모습이다.

수령 150~200년의 후동산 소나무는 자연과 전통적 가치를 인정받아 1982년 10월22일 나란히 제주도 보호수로 지정돼 관리돼 왔다.

100년 넘게 도련동 지역주민들의 휴식처이자 신성한 공간으로 관리돼 왔지만 소나무 재선충병에 감염돼 무참히 잘려나갔다.

제주시는 “나무가 말라죽어 보호수로서 가치를 상실했다”며 2013년 10월 2그루, 2014년 2월 1그루, 2015년 2월 나머지 1그루까지 4그루 전체에 대한 보호수 지정을 취소했다.

보호수는 ‘제주특별자치도 보호수 및 노거수 보호관리 조례’에 따라 관리되는 수령 100년 이상의 수목이다. 도내 최고수령 보호수는 제주시 도평동의 해송으로 수령이 600년에 이른다.

도내 6381ha의 소나무 100만 그루 중 보호수는 제주시 35그루, 서귀포시 4그루 등 단 39그루에 불과하다. 이중 6그루가 재선충병에 감염돼 보호수 지정 취소 절차를 밟고 있다.

▲ 제주시 해안동에 위치한 수령 200년의 소나무 보호수. 지난해 10월부터 소나무 재선충병에 감염돼 고사하고 있다. ⓒ제주의소리
▲ 제주시 해안동의 보호수. 소나무재선충병에 감염되자 민간 연구진이 재선충을 죽이는 생물학적 약제를 나무에 투입했다. 나무 기둥에는 시험방제를 알리는 안내판이 내걸렸다. ⓒ제주의소리
▲ 제주시 해안동의 보호수. 소나무재선충병에 감염되자 민간업체에서 재선충을 죽이는 약품을 주입했다. 나무에는 약품을 투입하기 위해 뚫은 구멍 수십여개가 보인다.  ⓒ제주의소리

제주시 해안동 월산체육공원 남서쪽에서 애조로 이어지는 오솔길을 한참 걷다 보면 건물 3~4층 높이의 거대한 소나무(보호수)가 눈에 들어온다.

높이 12m, 전체 나무 폭이 29m, 밑둥 둘레만 8.2m에 이르는 수령 200년의 해송이다. 성인 4명이 양팔을 벌려야 나무기둥을 감쌀 수 있을 정도로 제주에서 가장 큰 소나무에 속한다.

제주시는 재선충병 감염을 막기 위해 2013년부터 예방약을 투입했지만 지난해 10월부터 고사하기 시작해 현재는 절반 이상의 소나무 잎이 말라 죽은 상태다.

지난해 원인 조사에서 세계유산한라산연구원은 재선충병 감염 판정을 내렸다. 당시 국립산림과학원측은 보호수에 적정한 방법으로 예방약을 투입하지 않아 감염된 것으로 추정했다.

[제주의소리]가 현장을 찾을 당시 해안동 보호수에는 성분을 알 수 없는 약품이 투입돼 있다. 나무주사 용기에는 어떠한 성분도 표시되지 않았다.

나무주사를 넣기 위해 뚫은 구멍도 수십군데였다. 약품은 나무 크기별로 흉고 직경 5cm당 5cc를 투약한다. 통상 1~2월에 투약하며 지침대로 투약하지 않을 경우 효과를 볼 수 없다.

취재결과 해당 약제는 모 업체에서 재선충을 없애기 위해 투여한 시험용 약품으로 확인됐다. 일반 소나무가 아닌 보호수를 상대로 약제 시험이 이뤄진 것이다.

제주시 관계자는 이와 관련 “예방약을 투약했지만 감염을 막지 못했다. 모 업체에서 생물학적 방법으로 나무를 살릴 수 있다고 얘기해 시범적으로 약제를 투입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 제주시 애월읍 하가리의 주민이 소나무 재선충병에 감염된 고목을 가르키고 있다. 나무주사 약제를 주입했지만 감염을 막을 수는 없었다.  ⓒ제주의소리
▲ 제주시 애월읍 하가리의 소나무. 약제를 투입한 이후에는 약통을 제거해야 하지만 약제통은 장기간 나무에 꽂혀있었다. ⓒ제주의소리
▲ 제주시 외곽의 한 초등학교 정원에 심어진 소나무. 학교 관계자에 따르면 나무주사는 학교 직원이 직접 주입했다. 나무주사 끝부분이 제거되지 않은채 꽂혀있다.  ⓒ제주의소리

이 관계자는 “행정은 조례에 따라 보호수를 지정해 관리하지만 사유지의 나무인 경우 재산권을 개인이 행사한다”며 “토지주와 해당 업체간 협의로 시험방제를 진행했다”고 말했다.

국내에서 나무주사에 사용하는 약제는 ‘아바멕틴유제’와 ‘에마멕틴 벤조에이트’다. 제주도는 2013년 6050만원, 2014년 2820만원, 올해 1억880만원 등 3년간 2억원 어치를 구입했다.

일본의 경우 저독성으로 분류되는 ‘모란델타트레이트' 약품 등을 사용하지만 제주는 독성이 있어도 가격이 저렴하다는 이유 등으로 ‘아바멕틴유제’와 ‘에마멕틴 벤조에이트’를 이용한다.

해마다 나무주사를 사용하는 제주와 달리 일본은 2년에 한번씩 투약하고 방제시 나무에 약품 종류와 투약량, 투약시기 등이 적힌 안내문을 부착한다.

이종우 미래에코시스템 엔지니어링연구소장은 “보호수의 경우 비용이 들어도 저독성 약제를 사용하는 방법을 고민해야 한다”며 “과도한 약제사용은 오히려 독이 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정규헌 한국산림기술사협회 부회장은 "나무주사를 계속 사용하면 위험하다. 곰솔에 대한 투약은 자제해야 한다"며 "새순을 먼저 자르는 방법 등으로 약제를 엄격히 적용해야 한다"고 말했다.

투약 방법도 논란거리다. 보호수의 경우 제주시는 담당 공무원 1명이 나무주사를 직접 투약하는 반면 서귀포시는 민간업체에 투약을 위탁하는 등 방식도 제각각이다.

▲ 일본 사가현 가라스시의 ‘니지노마츠바라'이 소나무. 재선충병 감염을 막기위해 나무주사를 주입한 기록이 적혀 있다. ⓒ제주의소리 ⓒ제주의소리 자료사진
▲ 제주시 해안동에 위치한 수령 200년의 소나무 보호수. 지난해 10월부터 소나무 재선충병에 감염되자 민간 업체에서 생물학적 방법에 의한 약품을 투약 시험을 하고 있다. ⓒ제주의소리
보호수로 지정되지 않은 수령 100년 안팎의 노거수는 지역별로 자체 투약한다. 제주시 애월읍 하가리 마을 안길의 고목은 나무주사가 박힌 채 애처로이 고사하고 있었다.

통상 약제(5cc)는 1~2시간이면 나무 안으로 스며들지만 취재 당시 나무주사 용기에는 약품이 남아 있었다. 천공위치와 두께 등 투약지침을 제대로 지키지 않았을 가능성이 크다.

마을 주민인 고모(84)할아버지는 “내가 어렸을 때부터 팽나무와 함께 마을을 지켜주고 휴식처가 됐던 소나무였다. 나무를 잘라내야 한다는데 마음이 너무 아프고 미안하다”고 말했다.

제주시 외곽의 모 초등학교의 경우 학교 직원이 직접 교내 고목에 나무주사를 놓고 있었다. 학교 관계자는 지침을 따랐다고 설명했지만 소나무들은 줄줄이 재선충병에 감염됐다.

이처럼 마을의 역사와 문화를 함께 해온 고목들이 죽어가고 있지만 당국에서는 정확한 실태조차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

정상배 제주환경운동연합 공동의장은 “상당수 마을에서 감염된 고목들이 확인되고 있다”며 “나무주사 투약이 부실하거나 과하면 오히려 멀쩡한 소나무까지 죽일 수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현장 확인 결과 지침을 따르지 않은 것으로 의심되는 투약 사례가 곳곳에서 확인됐다”며 “방제와 관리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으면 보호수(해송)를 모두 잃을 수 있다”고 경고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