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촌 제주인(1)] 100만 제주인 네트위크 구축을 위하여‘LA제주향토회’, “앉으나 서나 고향 제주 생각"
‘100만 제주인/세계속 제주인’ 연재를 시작하며
1년 전인 지난해 10월 ‘제주의소리’는 오키나와에서 열린 ‘제4회 세계 우치난츄 대회’를 취재 보도하면서, 이런 화두를 던진 바 있다.
“언제부터인가 제주 지역사회에서 각종 행사나 슬로건을 표현할 때, ‘백만 제주인’이라는 문구가 등장했다...도대체 백만 제주인이란 어떤 근거에서 얘기되고 있는 것일까?... 지난해 말 현재 제주도 인구는 55만여명으로 조사됐다. 백만 제주인라면 현재 제주에 살고 있는 인구 수 만큼(아니 더 될 수도 있다) 많은 제주인들이 타 지방이나 해외에 거주하고 있다는 말이 된다. 나름대로 어느 정도의 실체에 근거한 숫자일 수도 있지만, 아직 그 숫자는 객관적인 데이터와 실태조사에 근거해 설정된 것은 아니라고 본다...
차제에...현시점에서 정말 ‘제주인’의 숫자는 얼마나 되는지 꼼꼼히 조사해 볼 필요성을 느낀다. 그러나 여기서 생각해 보려는 주제는 다름이 아니다. 우리가 그 동안 ‘백만 제주인’을 외쳐왔지만, 정작 그 ‘백만 제주인’이 제주도인이라는 정체성을 공유하고 있는가 하는 물음이다. 그들이 한자리에 모여 백만 제주인의 자존을 토로할 수 있는 기회는 가져 보았는가. 백만 제주인은 정말 제주라는 공동체적 유대감을 갖고 있는가. ‘세계 평화의 섬’이자 ‘국제자유도시’를 지향하고 있는 제주의 담론을 만들어 가는데 그들의 의견을 얼마나 우리는 경청해 왔으며, 그들을 제주발전을 위한 인적 자양분(네트워크)으로 삼고 있는지 물어 보아야 할 때다.
또한 이제 우리는 이런 저런 이유로 고향 제주섬을 떠난 그들을 위해 그 동안 무엇을 해 주었는지도 진지하게 생각해 보아야 한다. 따지고 보면 우리가 그들에게 해 준 것이라곤 별로 없다. 오히려 어려울 때 도움 받고, 이런 저런 이유로 손을 벌려 오기만 했지, 정작 그들의 아픔을 보듬어 주거나 작은 도움이라도 준적은 거의 없었다. 하여 다시 묻는다. 진정 ‘백만 제주인’의 정체성은 있는가? 아니 그 정체성을 공유하기 위한 노력은 해 왔는가?“
이런 물음을 던진 지 1년, 제주의소리는 ‘100만 제주인’의 그 반쪽을 찾아 대장정을 시작한다. 앞서 1년 전에 던졌던 자문(自問)을 의제의 캐비닛에만 담아두기는 너무 아깝다는 생각에서, 이제 직접 ‘세계속 제주인’을 찾아 나서려는 것이다. 이 연재가 언제 끝날지는 우리도 모른다. 그만큼 많은 시간과 비용, 어려움이 충분히 예상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단 한 가지, 이 연재가 ‘제주의 소리’만이 만드는 것이 아니라 ‘세계속 제주인’이 함께 만들어 줄 것이라는 기대를 갖고 취재항해에 나선다. 100만 제주인의 성원을 부탁드린다. 그 첫 순서는 미국 'LA' 지역이다.(편집자 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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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달 29일 저녁 6시, LA 제주향토회 사무실. LA제주향토회 부회장인 김병삼씨의 광고회사(ACE 광고 디자인) 사무실 2층이다.
일곱 분의 LA 제주향토회 임원들이 모였다. 김 부회장 외에 중앙일보 Koreandaily.com 인터넷뉴스팀 고재호 편집위원, LA 제주향토회 3대회장 김광태 씨, 4대회장이었던 오주태씨, 뉴욕에서 살다가 이쪽 LA로 이사온 지 10여년이 넘고 있다는 조철웅 영은전자 지사장, 이신성 목사님, 그리고 나중에 오신 문형원 부회장까지....(이종실 회장은 사정상 참석하지 못했다. 아래 사진 우측으로 부터)
이 모임을 주도한 이는 아래 신문광고 발기인 명단에서 보이듯 강문행, 양창효, 강운수, 양택수, 전달문, 오주태 씨 등 6명이다. 이들이 어느 날 함께 식사하다가 “LA에 제주 출신이 많은 것 같은데 한번 모여보자”고 의기투합했다. 혹시나 하면서 신문광고를 내 봤는데, 결과는 대성공이었다.
반갑게 모인 제주출신 교민들은, 로스엔젤레스 시립대학 부총장이었던 강문행씨를 1대 회장으로 추대하고, 양창효, 강운수, 최정택씨를 부회장으로 양택수씨를 사무국장으로 선출했다.
로스엔젤레스 시립대학 부총장 지낸 강문행 초대회장
자택 인근에 있는 호텔로비에서 만난 강선생은 걷는 것도 불편하고 듣고 말하는 것 또한 힘들어 하신다. 필자에게 준 명함에는 이름도 바뀌어 있다. ‘강선행(康善行)’ 으로. 지금까지 학문의 길을 걸어왔다(文行)면, 이제 돌아가시기 전까지는 착한일 하며 살겠다(善行)는 의지의 표현으로 받아들인다. 2남 1녀가 있는데, 두 형제 모두 GM에 근무하고 있다. 도미하자마자 자제분들을 GM에 추천했다 하니 아마도 중간간부 이상의 직급에 있다고 보여 진다.
“꿈에 보는 내 고향이 아름다운 법이야”
‘아름다운 팔도강산’ 영화감독, 강운수씨
2대회장이었던 강운수(36년생, 71세)씨는 성산포가 고향으로 현 LA제주향토회의 기틀을 다진 분이다. 형님이었던 강달수씨 소개로 LA의 ‘코리아 퍼레이드’ 행사 장면을 찍기 위해 왔다가 눌러 앉은 게 벌써 30년째다.
‘아름다운 팔도강산’, ‘불러도 대답 없는 이름이여’, ‘난파선’ 등의 극영화를 감독한 영화감독이다. 조감독 시절 제주를 주제로 한 관광문화영화인 ‘관광 삼다도’를 제작하기도 했다. 제목이 불길해서인가 공교롭게도 ‘난파선’(윤정희, 사미자, 김승옥 주연)을 끝으로 그의 영화 인생은 난파당하게(?) 된다.
지금까지 쓰고 있는 LA제주향토회의 상징마크(사진)도 직접 그가 제작했다. 그가 직접 만들고 작성한 뜻이 자못 의미심장하다.
대단하지 않은가? ‘도민회’가 아니라 ‘향토회’란 명칭을 고집한 그. 제주향토회 차원에서 진행하던 ‘바다 축제’를 LA 전 교포 대상의 바다 축제로 발전시킨 장본인이기도 하다. 강씨는 이 바다축제가 계속 이어지지 못하고 다시 제주출신만을 대상으로 행사가 축소된 것을 매우 아쉽게 생각한다.
- 처음에는 “웃기고 있네” 라는 식이었다. 제주출신 박사님도 계셨지만, “내가 필요로 할 때 나가겠다”며 참여를 거부했다. 그러나 창립 총회에 2백명이 넘게 모였고 성공했다.
제주 방문한 지는?
- 30년 동안 단 한번도 안 갔다
가고 싶지 않나?
- 가고는 싶은데...가면 뭐해? 꿈에 보는 내 고향이 아름다운 법이야. 가면 처참할 것 같아. 멀리서 바라보는 게 좋아. 가면 실망하게 돼 있어. 안가!
향토회 초기 창립 멤버로서 LA향토회나 제주도에 바라는 사항이 있다면?
- 함경도와 전라도 출신들은 단결이 잘되는데, 제주도는 단결 면에서 미약하다. 제주, 섬이라는 배타적 기질을 바꾸어야 한다...향토회 활동하면서 섭섭한 것도 많았지만 얘기 안하겠다. 그런 슬픔 이겨내지 않으면 향토회 발전 없다. 눈물겨운 사건을 감수하지 않으면 안된다.
이 답변을 하면서 눈물을 글썽인다. 회한이 많은 표정이다. 분위기를 바꿔보려고, 거실에 드럼이 있는 걸 보고 드럼 좀 쳐주실 수 있나고 부탁드렸더니 선뜻 포즈를 잡아 주신다. 교회에서 드럼 연주를 하신다고... 얼굴이 금방 밝아지셨다.
LA제주교민수는? 1천여명 추산
LA제주향토회 역사의 산증인이신 두 분에 대한 얘기는 이 정도로 접고, 다시 돌아오자. 향토회 사무실의 대화로...
LA제주향토회는 1년에 두 번 정도 모인다. 7~8월 경에 한번(야유회), 구정전후해서 1~2월에 한번 정도. 임원회는 분기별로 한번 정도 모인다.
그렇다면 LA에 살고 있는 제주교민들의 수는 얼마나 될까? 이 자리에 모인 임원들의 견해도 제각각이어서 처음에는 구체적인 숫자를 가늠하기조차 힘들었다. 어떤 이는 5백명이라 하고 어느 분은 1천명에 이르기까지 그 수의 편차가 너무 컸다.
자리한 분들의 의견을 종합해서 다음과 같이 추산해 보았다. 10여년 전인 3~4대 시기에 120~150가구에 5백여명이라는 얘기가 나왔었다는 것을 미루어 보면, 최근 5~6대 시기를 거치며 350가구에 1천명 정도는 되지 않겠느냐는 생각이다.
점차 숫자는 늘어나는 것 같은데, 안타깝게도 점점 향토회의 결속력은 떨어지고 있는 듯하다. 창립 당시 행사장을 가득 채웠던 열기는 점차 사라지고 최근에 모임을 하면 50~70명 정도밖에 모이지 못하고 있다 하니...여러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이 곳 이민사회의 어려움을 반증하는 것이 아닌가 생각한다.
조철웅 씨는 이렇게 얘기한다. “일본과 미주사회는 틀린 것 같아요, 일본은 끈끈하게 모여있습니다. 다 서로 소통하며 살고 있거든요. 여기는 광활하고 넓어 오랜만에 만나면 서먹서먹한 실정입니다.”
"1세 은퇴자를 대상으로 한 사업 고려해야"
고재호 편집위원이 먼저 입을 연다. 고위원 할 얘기가 많다(이하 얘기는 가능한 그대로 옮겨 본다).
“해외에 있는 은퇴자를 대상으로 한 주택 사업을 고려할 필요 있습니다. 미국에서도 은퇴자들이 멕시코에 가서 여생을 마무리하는 경우가 있지요. 꼭 분양 형태만을 고집할 것이 아니라 임대방식도 고려해야 합니다. 6개월 정도 콘도같은 시설에서 머물다가 다시 돌아오는 방식은 어떨까요. 이는 제주 인구 증가와 경제활성화에도 도움이 될 것입니다. 잘만하면 이건 다른 자치단체의 모범이 될 수 있는 공적 비즈니스로도 자리잡을 수 있을 겁니다.”
“제주관련 소식 관심있게 보고 있는데, 제일 안타까운 것이 바가지와 불친절 소식입니다. 제주에 다녀온 사람들로부터 실망했다는 얘기 많이 듣습니다. 도민들 자체가 개혁돼야 합니다. 행정력을 싱가폴같이 엄중하게 발동하여 엄청난 벌금을 부과하거나 하는 조치가 필요하고, 동시에 도민들의 의식개혁 운동이 수반돼야 합니다. 다음 휴가 때도 가고 싶다는 얘기 나올 정도로 바꾸어야 합니다. 엊그제 문국현 유한킴벌리 전 사장을 만났는데 ‘우리도 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더라구요.”
“호접란 사업은 어리석은 행동입니다. 시장조사도 없이, 농업적 기술도 없이 시작한 것입니다. 제가 알기론 1천만불 이상 적자일 겁니다. 땅값은 조금 올랐나 몰라? 그러나 부동산 투기로 시작한 것 아니지 않은가요. 컨벤션센터도 마찬가집니다. 처음 컨벤션센터 만들 당시 시찰 온 사람들에게 식사하면서 얘기했었어요. 2~3년 정도의 스케줄 가지고 운영해야 한다고. 최소 1~2년 정도의 스케줄 가지고 해야 한다고 말입니다. 먼저 소프트웨어에 대해 신경쓰고 건물 등 하드웨어는 다음 문제라고. 내용을 먼저 준비하고 시작해도 늦지 않다고 얘기했는데...”
“LA에 있는 ‘리틀 도쿄’도 이름만 남아 있는 실정입니다. 1.5~2세,3세가 내고향 제주를 생각할 수 있는 아이디어와 고리를 만드는 게 필요합니다. 앞으로 1세는 점점 사라질 겁니다. 300명이 모이다가 점점 4~50명으로 축소되고 있는데, 10년 후면 10명으로 줄어 들 수도 있습니다. 특히 문제는 1.5세와 2세들이 함께 모이는 기회가 거의 없다는 점입니다. 한국의 경제력이 커지면서 이민은 계속 줄어들 것으로 전망됩니다. 지금이 ‘피크’라 생각합니다.”
“이런 점에서 앞서 1세 은퇴자들을 위한 사업을 얘기한 것입니다. 1세 어른들이 제주에서 살게 되면, 1.5세나 2세들이 제주를 고민하게 됩니다. 꼭 제주출신만이 아니라 해외동포 전체를 대상으로 한 사업으로 할 수도 있습니다. 현재 국내 지방에는 아파트 10만호가 비어있다고 하지 않나요? 이런 것을 활용할 수도 있지 않나 하는 것입니다. 물론 10년 후를 내다보면서 계획해야 하지요... 해외교민들 결속할 수 있는 아이디어가 우선입니다. 자그만 사례부터 귀속감을 갖게 해 주세요.”
고위원의 얘기는 하나하나가 경청해야 할 만한 내용 들이다. 특히 1세들이 점점 사라지고 2~3세대로 이민사회가 대체되면서, 고향 제주와의 연결고리 단절이 심각하게 우려된다는 지적은 의미심장하다.
"해외교포들을 위한 인센티브는 줄 수 없나?"
김광태 전 회장은 이런 얘기를 했다.
“다른 건 몰라도 이것 하나만이라도 잘해 주었으면 좋겠습니다. 여행 중에 의료혜택을 줄 수 있었으면 하는 겁니다. 그래야 은퇴한 분들이 마음 놓고 여행할 수 있습니다. 저 또한 33년 동안 단 10일 밖에 국내에 체류한 적 없어요”
여행자 보험제도는 있으나 이렇게 개별적으로 오는 교민들을 위한 제도적 지원책이 필요하다는 얘기인 것 같다.
“또한 해외교민들이 제주도에 왔을 때, 호텔이나 관광지 입장료 등을 할인해 주는 제도는 어떨까요? 명예도민증을 발급하여...여행사 등을 통해 할인받고 싶지 않거든요.”
"제주향토학교 프로그램의 내실화 필요"
다음은 조철웅 지사장의 얘기.
“2세들이 제주에 대한 자긍심을 높일 수 있는 프로그램을 개발해야 합니다. ‘제주향토학교’는 좋은 프로그램입니다. 프로그램을 개발하여 참여도를 더 높여야 합니다. 처음에는 참여도가 저조했었지만, 점점 나아지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재외도민회와 제주도가 협력하여 프로그램 발전시켜야 합니다. 대학생만 대상으로 하지 말고 초중고로 확대해야 합니다. 참여도를 높이기 위한 1.5세와 2세 대상 프로그램을 개발해야 합니다.”
“그동안 제주도와 해외교민들간의 직접적 대면 접촉은 별로 없었습니다. 도지사와 함께 식사한 것도 이번이 처음이지요, 아마? 제주와 긴밀한 관계를 유지할 수 있도록 코디네이션 해야 합니다”
마지막으로 김병삼 부회장의 몲겨 보자.
"20년 만에 사무실 마련...다시 활성화시키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김부회장은 말이 부회장이지 사실상 사무국장의 역할까지 하고 있다(참 현재 제주특별자치도 홈페이지 우측 하단에는 ‘재외제주도민’ 코너가 있는데. 이곳을 클릭하면 국내외 도민회에 대해 각 지역별로 소개되어 있으며 조직과 연락처 등을 확인할 수 있다. 이곳에 소개되고 있는 LA 향토회 연락처와 사무국장은 바뀐 지 오래됐으니 특별자치도 홈페이지 담당자께서는 수정 바란다).
도민회 웹사이트를 2년 전에 만들었는데, 1세대 중심이어서 거의 안 들어온다고 쓴웃음을 짓는 김부회장. “지난번 김지사 오실 때, LA공항에 환영현수막 처음 걸었습니다. ‘김태환지사 LA방문 환영합니다.’ 라고...” 미소 짓는다.
“제주출신 중 체류신분이 불안정한 사람들도 많습니다. 여유있는 분들도 많지 않구요. 회비를 내라 하면 많이 오지 않습니다. 지금에야 20년 만에 사무실도 마련했습니다. 다시 활성화시키기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정말 LA제주향토회가 새롭기 심기일전하기 바라는 마음 간절하다. 끝으로 제주에 바라는 말이 있다면 해 보시라 했다. 조심스레 김부회장이 얘기를 꺼낸다. “우리 같은 해외단체에도 보조해 줄 수는 없을까요?”. 이에 대해 필자는 사회단체 보조금 제도가 있는데 왜 안되겠냐고 반문했다. 이 제안에 정책 담당자들은 귀기울여 주기 바란다. 이게 어떤 의미를 갖는지...
필자는 LA에 사는 교민들을 취재하면서, 그들이 어려운 생활에도 불구하고 고향 제주를 위하여 모금하는 것을 직접 눈으로 보았다. 모두가 여유 있어서 그들이 고향을 위해 도와주는게 아니라는 말이다. 이건 비단 LA지역뿐만이 아니라고 본다. 어떤 은퇴한 분은 아내와 살면서 미국 연방정부로 부터 받은 한달 소셜 시큐리티 1,400불 중 집세(1000천불)로 내고 남은 400불의 생활비 중 1/4을 떼 내서 성금을 냈다. 월세 850불에 불과한 허름한 아파트에 살고 있는 어르신이 성금으로 300불을 내는 것도 보았다. 아마 그 정도면 한달 생활비나 다름없을 거다.
종종 제주도에 살고 있는 우리는 해외교민들은 대부분 풍족하게 사는 것으로 착각하지만, 그렇지 않다는 얘기다. 문제는 이렇게 어렵게 살면서도 제주에 대한 애정은 정말 각별하다. 받는 데에만 익숙해진 우리들, 이제 우리가 이들에게 베풀 차례도 되지 않았는가.
각설하고...이제 LA제주 향토회에 대한 소개를 마무리해야할 차례다. 지난 88년 창립한지 여러 우여곡절을 겪으며 LA제주향토회는 지금까지 활동하여 왔다. 이제 새롭게 사무실도 마련하고 심기일전 하려 하고 있다. 그리하여 조만간 남가주 지역의 대표적 한인단체로 발전해 나가길 기원한다. 제주특별자치도 또한 이들이 앞서 얘기한, 해외제주인들을 위한 여러 정책들을 구체적으로 검토하여 가능한 대로 빨리 시행해 나가기를 기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