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치된 제주 정의현 핵심 목장 ‘수산평’…“제2공항 갈등도 악재”
[공동기획-탐나는가치 맵핑(1)] 마을공동목장⑰ / 서귀포시 성산읍 수산공동목장
“아직 마을공동목장 활용 방안에 대한 주민들 이야기는 없어요. 수산리가 행정편의에 따라 분할되면서 분쟁이 생겼고 그러다 보니 어떻게 이익을 나눌 것인가가 문제로 떠올라 그냥 가만히 둘 수밖에 없게 됐죠.”(김문식 수산1리장 인터뷰 중)
예로부터 서귀포시 성산읍 수산평은 인근에 수산 한 못과 같은 용수가 풍부한 수원이 조성된 데다 초지가 넓은 장점으로 소나 말을 키워온 제주 정의현의 핵심 목장 중 하나였다. 나지막한 오름을 올라 목장 일대를 둘러보면 마치 평야와 같은 드넓은 초지를 바라볼 수 있다.
하지만 목축 문화가 바뀌며 소나 말을 기르는 사람이 줄어들었고, 이용가치가 떨어진 수산평은 그대로 방치, 곶자왈 지대로 땅의 모양이 바뀌어 가고 있었다. 더군다나 제주 제2공항 예정지가 인근 지역으로 결정되면서 언제 개발될지 모를 위험에도 놓인 상태다.
양용찬열사추모사업회, 시민정치연대 제주가치, 독립언론 [제주의소리], 제주대 공동자원과 지속가능사회 연구센터가 함께하는 ‘탐나는가치 맵핑(mapping)’ 마을공동목장 프로젝트팀은 여덟 번째 방문지인 서귀포시 성산읍 수산공동목장을 찾았다.
지난 12일 오전 10시 서귀포시 성산읍 수산1리 복지회관에서 시작된 탐방은 김문식 수산1리장이 참여해 마을에 대한 다양한 이야기를 풀어냈다.
포근한 봄 날씨와 함께 시작된 올해 첫 현장 탐방에는 마을공동목장에 관심을 가진 많은 도민이 참석해 제주의 가치를 함께 살폈다.
수산공동목장은 이제까지 프로젝트팀이 다닌 목장의 형태와는 많이 다른 모습이었다. 목장 조합도 따로 없었으며 목장 부지 역시 정확히 측정되지 않아 보였다. 마을이 행정 편의상 둘로 쪼개지면서 목장도 관리 주체가 사라진 것과 다름없었다.
목장부지는 수산1리 마을회와 수산리마을회, 그리고 몇 개인이 소유한 것으로 파악되며, 규모는 약 44만4870㎡(약 13만4570평)이다. 소와 말의 물을 먹였던 넓은 못 ‘수산 한못’이 있었고 바로 인근에는 수산동굴이 존재했다.
수산동굴에는 마을목장이 운영될 당시 재미난 일화도 있었다. 방목 중인 소를 다시 외양간으로 들이기 위해 마릿수를 세던 도중 송아지가 사라진 채 안 보였던 것.
주민들은 송아지를 찾기 위해 한참 수색을 벌인 끝에 땅속에서 송아지 울음소리를 듣게 됐고 자세히 살펴보니 구멍이 있었고 이는 2006년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수산동굴이었다. 김 이장은 어릴 적 동굴에 들어가 많이 놀았다고 증언키도 했다.
또 몽골이 제주를 지배할 당시 이곳에서는 양을 키웠다는 기록도 있다고 했다. 그만큼 넓은 초지와 큰 연못이 형성되면서 축산 하기에 더할 나위 없이 좋은 곳이었던 것. 하지만 지금은 활용하지 않아 버려진 땅이 됐다.
김문식 이장은 마을목장 소유가 제각각인 탓에 마을공동목장을 활용하더라도 이익 분배 등 문제가 생겨 시도하기 쉽지 않다고 했다. 현재 수산평에는 한국남부발전 풍력발전기가 들어와 있는데 이게 불화의 싹이 되기도 했단다.
수산공동목장에 풍력발전기를 설치할 목적으로 남부발전이 수익 제공을 약속하고 수산1리와 계약을 진행하려다 갑자기 수산2리와 계약을 체결하며 발전기를 세우고 수익금을 수산2리에만 제공하게 되면서 불만이 쌓인 것.
수산평은 수산1리와 수산2리로 나누어진 곳이 아니라 ‘수산리’로 묶여 있기 때문에 사실상 수산1리 역시 권한을 행사할 수 있으나 결국 수익금은 수산2리에만 제공됐다. 김 이장은 그럼에도 목장부지 관련 세금은 두 마을 갈등으로 똑같이 부담할 수밖에 없는 현실이라고 했다.
김자경 제주대 공동자원과 지속가능사회 연구센터 전임연구원은 “다른 마을공동목장과 많이 다른 것 같다. 보통 한 마을이 하나의 목장을 가지고 있어 활용하는 측면이 있는데 수산은 두 개의 마을이 하나의 목장을 관리하다 보니 갈등이 나타나는 것 같다”고 말했다.
김 이장은 “특별하게 활용할 수 있는 방안을 찾아봐도 마땅히 없다. 농사를 짓는다거나 개발을 할 계획도 별로 없다”며 “왜냐면 건물을 짓거나 활용할 수 있을 만한 땅들이 거의 없다. 오래 방치되다 보니 거의 곶자왈 형태로 변해 보존 가치가 높아졌기 때문”이라고 대답했다.
그러면서 “지금 활용하는 것은 마을 사람들이 진입로를 내달라거나 하는 민원들을 처리하는 수준”이라며 “예전에는 말도 소도 키웠지만, 이제는 안 키우지 않나. 일부만 말을 풀어놓거나 하는 정도”라고 부연했다.
수산공동목장이 마을 사람들의 관심을 받지 못하고 방치된 것은 제주 제2공항 건설로 빚어진 갈등 때문이라는 의견도 있었다. 수산1리의 경우 대다수 주민들이 제2공항 건설을 반대하고 있지만, 수산2리는 찬성하는 의견이 꽤 나타나며 갈등이 생겼다는 것.
제2공항 문제는 제주도민 갈등과 반목에 앞서 예정지 인근 주민들의 아픔이 되어가고 있었다.
김 이장은 싸움이 계속되면서 수산공동목장은 주민들의 관심에서 멀어졌고 목장을 활용하겠다는 여유조차 가질 수 없었다고 했다. 주민들은 지쳤고 이제 그만하면 안 되냐는 푸념을 늘어놓기 일쑤였다는 것이다.
경관보전 직불제를 받아보는 것은 어떠냐는 의견에 김 이장은 “경관보전 직불금은 한계가 있다. 유채를 심거나 메밀을 심어 관리해야 하는데 이게 또 장사를 해서는 안 된다는 조항이 있다. 그럴 거면 농사를 짓는 것이 더 활용가치가 있지 않겠나”라고 말했다.
이어 “목장을 활용할 여건을 마련할 수가 없다. 앞서 언급했듯 마을 간 지분 관계 때문에 누가 목장을 활용하자 해도 누군가 안 된다고 하면 할 수 없는 상황”이라며 “근사한 사업이 있어도 반대하면 안 된다”고 밝혔다.
마을공동목장 지분과 마을회 간 관계, 정관 문제 등이 복잡하게 얽히면서 활용 방안을 논의하는 과정조차 시도해보지 못했다는 것이다. 갈등이 지속되면서 이장 자리는 서로 하지 않겠다며 떠넘기는 자리가 되기도 했다.
김 이장은 “마을이 합의했다 하더라도 마을회 정관을 따라야 하는데 지금 수산리 마을회 정관이 없다. 그래서 정관을 빨리 만들려고 하는데 제3의 마을회 소속인 사람이 반대하게 되면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야 하는 문제가 있다. 이처럼 복잡한 관계 때문에 활용은 어려운 상황”이라고 했다.
한편, '탐나는가치 맵핑(mapping)'은 지속가능한 제주의 미래를 위해 지역의 다양한 의제를 주민 스스로 발굴하고 발견된 문제점을 진단하고 대안을 마련한 뒤 해결까지 모색하는 도민참여형 프로젝트다.
첫번째 주민발굴 의제로 ‘마을공동목장’을 택한 프로젝트팀은 지난 8월 금당목장과 남원한남공동목장(머체왓숲길), 9월 하원공동목장, 10월 신례리공동목장, 장전공동목장을 방문한 바 있다.
탐나는가치 맵핑(mapping) 프로그램은 현장에 참여하지 못하더라도 어플리케이션을 통해 제주 곳곳의 가치를 공유할 수 있다. 구글 플레이나 앱스토어에서 ‘mapplerk3’를 내려받아 회원 가입한 뒤 커뮤니티 검색에서 ‘Save Jeju’를 검색, 가입하면 된다.
이어 자신이 거주하는 지역 곳곳의 가치들을 영상과 글, 사진 등을 통해 기록하면 된다. 회원 가입을 하지 않더라도 홈페이지(mapplerone.net/savejeju)에서 공유된 가치들을 살펴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