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금 내려고 목장땅 파는 악순환”…규제로 활용 막막한 위기의 마을목장
[공동기획-탐나는가치 맵핑(1)] 마을공동목장⑳ / 서귀포시 회수부흥목장
| 무심코 지나쳤던 제주의 숨은 가치를 찾아내고 지속 가능한 제주의 미래를 위해 다양한 지역 문제나 의제를 주민 스스로 발굴해 해결해가는 연대의 걸음이 시작됐다. 지역 주민이 발굴한 의제를 시민사회와 전문가집단이 진단하고 대안을 마련한 뒤 문제해결까지 이뤄내는 ‘탐나는가치 맵핑(mapping)’ 프로젝트다. 독립언론 [제주의소리]가 양용찬열사추모사업회, 시민정치연대 제주가치와 함께하는 ‘공동기획 - 탐나는가치 맵핑’은 풀뿌리 민주주의와 주민참여라는 측면에서 매우 유의미한 연대가 될 것이다. 이번 도민참여 솔루션이 잊히고 사라지는 제주의 가치를 발굴·공유하고 제주다움을 지켜내는 길이 될 수 있도록 도민의 참여와 관심을 당부드린다. [편집자 주] |
“목장을 임대하기 전에는 목장에 부과되는 세금을 낼 돈이 없어 일부 쪼개진 목장 부지들을 하나 둘씩 팔아 세금을 마련했죠. 보전조례 때문에 일체 개발행위를 못 하고 초지법 때문에 목장 용도 외에는 전혀 활용할 수도 없기에 달리 선택의 여지가 없었습니다.”(이창훈 회수부흥목장 조합장 인터뷰 중)
약 10만 평(33만570여 ㎡)에 달하는 드넓은 부지를 소유한 서귀포시 회수부흥목장. 산업환경이 급격히 변화하며 마소를 방목하는 목장은 대부분 사라졌지만, 오늘날 남아있는 마을목장은 각종 규제로 묶여 마땅한 활용법을 찾지 못해 사실상 방치된 상황이다. 회수부흥목장도 같은 상황이다.
주민 대부분이 농업에 전적으로 의존해야 했고, 기계농업이 일반화되지 않아 오직 사람과 가축의 힘으로 농사지어야 했던 1980년대 초까지도 집집마다 소들을 목장에 방목해 키웠지만, 경운기나 트랙터의 등장으로 이제 소를 방목하는 주민은 없다.
그래서 지금은 궁여지택으로 목장을 사륜오토바이(UTV) 체험장과 승마 교육장 등으로 임대해주고 있지만, 임대수입은 고작해야 연 1000만 원을 넘지 않는다. 그것도 최근들어서 늘어난 임대수입이다. 불과 2년전까지만 해도 연간 600여만원에 불과했단다. 10만여 평의 광활한 목장땅 대부분을 내어준다는 점을 고려할 때 소소해도 너무 소소한 임대료다.
그래도 현재로선 방법이 없다. 방치된 목장 부지를 활용해 생태체험관광객을 불러들일 수 있는 시설을 설치하거나 이런저런 사업을 해보려 해도 제주 보전지역 관리에 관한 조례에 따라 산록도로 위쪽으로는 개발할 수 없게 돼 아무것도 할 수 없는 형편이다.
더욱이 개발하지 않고 땅을 활용하려 해도 초지법 때문에 소나 말을 방목하는 것 말고는 활용할 수 없는 상태다. 땅은 넓은데 수입은 거의 없으니 결국 조합은 세금을 충당하기 위해 목장 부지 일부를 매각해 메우는 실정이다.
양용찬열사추모사업회, 시민정치연대 제주가치, 독립언론 [제주의소리], 제주대 공동자원과 지속가능사회 연구센터가 함께하는 ‘탐나는가치 맵핑(mapping)’ 마을공동목장 프로젝트팀은 지난달 30일 서귀포시 회수부흥목장을 탐방했다.
오전 10시부터 시작된 탐방은 이창훈 회수부흥목장 조합장과 김두길 전 회수부흥목장 임원의 설명을 따라 둘러보는 과정으로 진행됐다.
회수부흥목장은 일제강점기 제주도 마을공동목장조합 설립 초기인 1934년에 설립인가를 받아 지금에 이르렀으며, 현재 75명의 조합원이 남아있다.
다른 마을공동목장과 다르게 회수동 마을주민 중 원하는 사람만 모여 조합이 결성됐다. 더불어 마을 주민 대부분이 참여하는 공동목장과 다른 점을 나타내기 위해 ‘공동’이라는 말 대신 ‘부흥’을 이름에 넣은 것으로 파악된다.
목장은 서귀포시 산록남로를 중심으로 대부분이 위쪽에 있으나 일부는 아래에도 존재한다. 선대 조합장들은 목장 운영 경비를 마련하기 위해 아래쪽 목장 부지 일부를 리조트에 매각하기도 했다.
목장을 활용하지 못하고 있는 상황에서 꼬박꼬박 부과되는 세금이나 목장 운영 경비 마련을 위해 그 귀중한 목장땅을 팔아 세금 낼 돈을 마련하는 악순환을 거듭해온 것.
사실 목장은 과거엔 하나로 묶였으나 2000년대 제주도가 도로를 내면서 1만여 평이 떨어져 나가 분단됐다. 축산 방식의 변화로 목장에 소나 말을 풀어놓지 않게 되면서 땅은 목적을 잃었고, 자연스럽게 분리된 땅은 매각 수순을 밟게 됐다.
회수부흥목장에서는 1980년대 초까지만 해도 소를 풀어놓고 길렀다. 김두길 전 임원은 “낮에 와서 목장을 둘러보면 벵듸(평평한 들판)에 풀어진 소가 몇백 마리나 됐다”고 당시를 설명했다.
소들은 목장에서 자유롭게 풀을 뜯어먹고 물을 마시다가도 담을 뛰어넘어 한라산을 오르기도 했다. 그때 조합원들은 소를 찾기 위해 영실이나 윗세오름까지도 올랐단다. 목장에 방목된 소는 많게는 300여마리 였으며, 잔디나 넝쿨을 다 먹어치운 뒤 목장 잣담을 가뿐히 넘어버렸다.
조합은 목장에서 소를 돌보기 위해 이른바 ‘켓파장’을 세워 소 한 마리당 수고비를 ‘보리’로 지급했다. 이때 주는 수고비를 일러 ‘케낸다’고 했단다. 때로는 ‘촐왓(꼴밭)’ 평수에 따라 수고비를 내기도 했다.
그러다 소를 키우는 사람이 줄어들고 축산 방식도 방목이 아닌 축사에서 키우는 것으로 바뀌면서 켓파장은 사라졌고 목장도 나무와 넝쿨이 무성한 자왈로 변해갔다. 이에 조합은 목장 부지를 임대하는 방식으로 활용했고 현재는 승마장과 사륜 오토바이 체험장으로 임대 중이다.
‘켓파장’은 이른바 목장을 관리하는 ‘목감’의 역할을 하는 사람을 지칭한다. 인근 안덕대평 마을에선 ‘켓생이’라고 부르기도 했다.
이창훈 조합장은 “목장을 임대해주고 벌어들이는 수입은 연 1000만 원 정도다. 이 돈으로 세금도 내고 조합을 운영하고 있다”면서 “하지만 10만 평이 넘는 땅을 가지고 연 1000만 원의 수입만 올린다는 게 가당치 않다. 하지만 현실이 그러니 어쩔 수 없지 않은가”라고 하소연했다.
이어 “목장을 개발해 관광지로라도 활용할 수 있다면 수입을 벌어들일 수 있을 텐데 각종 규제에 막혀 못한다”며 “경관이 좋으니 건물이라도 작게 지어 카페라도 운영하면 좋겠는데 일체 그런 행위를 못한다. 임대한 분들도 제약 때문에 사업을 크게 하고 싶어도 못 한다”고 말했다.
또 “목장을 주민 조합원들의 생업과 연결해 뭐라도 활용할 수 있게 해준다면 좋을 텐데 그렇게 하지는 못하게 하고 법으로만 막아버린다. 결국 무조건 방목만 하라는 말”이라며 “이런 식으로 활용은 못 하고 세금만 계속 내게 된다면 목장은 위기를 맞게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땅을 제대로 활용할 수 없으니 결국 매각하자는 의견도 제시됐다. 이 조합장은 70~80%의 조합원들이 목장을 팔자는 의견을 내보인다고 했다. 물려줘도 쓸데 없어 고마워하지도 않을 테니 돈이라도 받아 쓰고 남는 돈을 주자는 의견이다.
이 조합장은 매각 의견이 심심치 않게 나오고는 있지만, 다행히 실제 매각 움직임은 없다고 했다. 더불어 재산을 처분하게 될 때 총회에서 조합원 수의 3분의 2 이상의 동의를 얻어야 하는 절차도 있어 아직은 잠잠하다는 것.
이 같은 상황에서 조합은 어떻게든 목장을 활용하기 위해 다양한 방법을 구상 중이다. 최근에는 산록도로 아래쪽 목장 부지를 문화 콘텐츠 공간으로 만들기 위한 움직임도 가시화했다.
이 조합장은 “문화 콘텐츠를 만들어보자는 제안을 받고 관련 절차를 밟고 있다. 제대로 추진된다면 조합원 일자리도 창출되고 우리 마을을 넘어 제주의 명소가 하나 생기지 않겠나”라고 말했다.
회수부흥목장은 마을 소유가 아닌 개개인의 조합원들 소유로 이뤄졌지만, 조합은 마을 건물을 새로 지을 때나 체육대회 등 행사 때 지원도 한다. 결국 다른 마을공동목장처럼 마을을 위해 공익 사업도 펼치는 것.
이런 목장이 개발업자의 손에 넘어가는 등 사유화될 경우 즉각 난개발로 이어지고 다시는 공동체 자산으로 돌아오지 못하게 될 우려가 있다.
이 조합장은 “목장을 활용만 할 수 있다면 좋겠다. 여기 경관 가치가 뛰어난 만큼 투자 가치도 있을 텐데 이 아까운 자원을 보고만 있으려니 안타깝다”며 “마을이나 조합에서 사업하는 건 좀 봐줬으면 좋겠는데 마땅한 방법을 못 찾겠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개발도 무조건 안 된다고 하지 말고 도로에서 어느 정도 떨어진 곳에서는 최소한은 활용할 수 있도록 해줬으면 한다”라면서 “일단 목장 협의체를 통해 다양한 방법을 찾아야 할 것 같다. 제주도 공동목장 조합장들이 모여 단체의 힘으로 움직일 수 있길 바란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