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명 전원 무죄’ 11차 제주4.3 직권재심 70여년 한 풀었다
[4.3재심, 역사의 기록] (43) 오빠는 토벌대에 끌려가 희생, 언니는 토벌대와 억지로 혼례
70여년전 제주에 불어닥친 4.3광풍으로 억울한 누명을 뒤집어 쓴 아들은 군경에 총살 당했다. 부모는 집안의 멸족을 면하기 위해 자신의 딸을 토벌대원과 억지로 혼례를 맺게 했다. 오빠를 잃고, 언니와 떨어져 살게 된 어린 딸은 어느덧 80대의 고령이 나이로 법정에서 당시를 회고했다.
4.3피해자 유족의 입장으로 법정에서 그가 전한 자신의 기구한 삶은 해방공간의 제주사람들에겐 역설적이게도 '특별한 사례'가 아닌, 차고 넘치는 '보편적 사례'여서 더욱 공감이 컸다. 법정에서 그녀가 전한 4.3이후 가족의 처절한 삶은 4.3유족들과 방청객들의 눈물샘을 뜨겁게 했다.
30일 제주지방법원 형사4-2부는 ‘제주4.3사건 직권재심 권고 합동수행단(합동수행단, 단장 이제관)’이 청구한 제11차 직권재심 청구인 30명 전원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30명 중 17명(내란죄)은 1948년 1차 군법회의에, 나머지 13명(국방경비법 위반)은 1949년 2차 군법회의에 회부된 4.3 피해자들이다.
이전 직권재심처럼 이날도 검사의 무죄 구형과 변호인의 무죄 변론, 재판부의 무죄 선고까지 모두 하루에 이뤄졌다.
11차까지 이어진 직권재심으로 명예가 회복된 제주4.3 피해자는 총 280명에 이르며, 현재 15차(총 400명) 직권재심까지 청구돼 순서를 기다리고 있다.
이날 명예가 회복된 4.3 피해자의 유족들은 법정에 직접 출석해 기구했던 자신들의 삶을 가감없이 털어 놨다.
고(故) 이방행의 동생 이운자(83) 할머니는 4.3으로 오빠 뿐만 아니라 언니도 잃었다고 말했다. 오빠 이방행은 1948년 1차 군법회의에 회부돼 내란죄라는 누명을 뒤집어 써 수감된 이후 행방불명된 4.3 피해자다.
이 할머니는 “일본에서 살던 오빠는 1945년 히로시마 원폭 투하 속에서도 살아남아 제주에 왔는데, 당시엔 한국말도 잘하지 못했다”며 “내가 9살이던 4.3 당시 군화를 신은 사람들이 집으로 쳐들어왔고, 동네 젊은 사람들을 다 잡아갔다”고 당시를 기억했다.
이어 “당시에 끌려간 오빠가 나중에 어느 탄광에서 총살당했다는 이야기를 전해 들었다. 오빠에게 딸이 있었는데, 남은 가족들이 챙길 상황이 안돼 다른 집으로 보냈다. 지금은 연락이 끊겼다”고 울먹였다.
이 할머니는 “4.3 당시 9연대에 이어 2연대가 들어오고 나서 헌병대가 집에 쳐들어 왔다. 당시 도립병원에서 간호원으로 일하던 언니가 있었는데, 매를 맞으면서까지 토벌대에게 시집을 갔다. 아버지는 멸족은 면해야 한다며 억지로 언니를 토벌대와 결혼 시켰다. 타지로 갔던 언니는 현재 92세이고 대구에 살고 있다. 이후 불행한 결혼 생활이 이어졌고 가정도 파탄났다”고 토로했다.
4.3광풍에 오빠와 언니를 다 잃은 것이나 다름 없다는 이 할머니의 호소였다.
이날 명예가 회복된 고(故) 고두천의 조카 고윤권 씨의 형제 3명은 다른 집 양자로 들어갔다. 대를 이어야 한다는 고윤권씨 아버지의 의지가 컸다.
고윤권 씨의 아버지는 2차 군법회의에 회부돼 억울하게 희생된 4.3 피해자 고두천의 동생이다.
고윤권 씨는 “4.3 광풍으로 4형제 중 유일하게 아버지만 살아 남았다. 후손도 없이 (4.3사건에) 떠난 삼촌들을 대신해 아버지는 사촌의 생계까지 홀로 꾸렸다. 아버지는 저를 포함해 10남매를 낳았는데, 각 집안의 대를 이어야 한다는 의지가 크셨다. 결국 자신의 자식 3명(고씨의 형제)을 큰 아버지와 작은 아버지, 사촌의 양자로 넣었다”고 말했다.
2차 군법회의 피해자 고(故) 김공진의 딸 김성자씨의 삶도 순탄하지 않았다.
김성자씨는 “4.3 때 아버지를 잃었고, 어머니가 재혼하면서 혼자 남겨졌다. 14살 때 식모살이를 하기 위해 아는 사람을 따라 서울로 갔는데, 나이가 어린데 일도 못한다고 쫓겨나 길에서 노숙까지 했다. 아버지가 살아 있었다면 내가 식모살이를 했겠는가. 지금은 부산에서 살고 있는데, 영도대교를 자주 찾아간다. 차가운 바닷물 속에 아버지가 잠겨 있다는 생각에 너무 서럽다. 4.3때 죄 없는 사람들을 데려가 그냥 다 죽였다”고 울분을 토해냈다.
2차 군법회의에 회부된 4.3 피해자 고(故) 양두량의 아들로서 법정을 찾은 양성홍 제주4.3행방불명인유족협의회 회장도 연좌제에 시달렸던 과거를 떠올렸다.
양 회장은 “제주중학교를 졸업해 오현고등학교에 들어갔다. 집에 돈이 없어 (학비가 들지 않는) 사관학교에 가려고 했는데, 4.3 당시에 아버지가 토벌대에 끌려가면서 연좌제로 사관학교에 가지 못했다. 당시에는 아버지가 정말 원망스러웠다. 아버지에 대해 물으면 어머니는 언제나 ‘좀좀허라(잠자코 있어라는 의미의 제주어)’라고 말씀하셨다”고 증언했다.
이어 “사진이 없어 아버지의 얼굴도 모른다. 어머니에게 아버지의 생김새를 물으면 ‘거울봐라’라고 대답해주셨다. 거울 속 내 얼굴이 남편과 똑 같다고 말해주시던 어머니는 2015년 이승을 떠났다. (재심이) 좀 더 빨랐다면...”이라며 끝내 눈물을 훔쳤다.
1949년 2차 군법회의에 끌려간 피해자 고(故) 문창호의 동생 문창선 씨는 “어머니는 장애가 있어 말하지 못하고, 듣지도 못하셨다. 어느 날 밭에서 녹두를 수확하고 있었는데, 토벌대가 아들을 끌고갔다며 눈물을 펑펑 흘리면서 (4.3당시 기억을)수화로 말해줬다. 당시 오빠는 10대의 나이였다. 도대체 무슨 죄를 저질렀겠나”며 한탄했다.
4.3피해자 유족들의 잇단 피해 경험과 4.3으로 인한 각자의 기구한 삶에 대해 증언이 잇달으자 여기저기서 눈물을 훔치는 소리가 법정을 무겁게 채웠다.
유족들의 발언이 끝나자 재판부는 “피고인들의 죄를 입증할 수 있는 증거도 없이 (유족들의) 억울함만 가득하다. 피고인들은 각 무죄”라고 판결, 70여년 억울함에 짓눌려 살아온 유족들을 따뜻하게 위로했다.
다음은 직권재심 명예회복 명단.
1차 직권재심(2022년 3월29일)
고학남, 강태호, 고명순, 김성원, 홍표열, 김완생, 변기상, 이근숙, 김병로, 고화봉, 신영선, 김응종, 김계반, 김기옥, 박성택, 양자경, 허봉애, 권맹순, 양문화, 양두봉
2차 직권재심(2022년 3월29일)
김경곤, 고태원, 백무성, 박홍화, 양덕봉, 신용현, 김기휴, 이경추, 양달효, 오재호, 양두현, 양두영, 강정윤, 박창인, 김용신, 이기훈, 오인평, 오봉호, 김해봉, 변윤선
3차 직권재심(2022년 4월19일)
강성협, 강희옥, 강우제, 이문팽, 고상수, 고창두, 오형운, 송재수, 문종길, 문순조, 홍순표, 정만종, 김형남, 송창대, 김형수, 양성찬, 양달천, 김윤식, 오기하, 전병부
4차 직권재심(2022년 5월3일)
현상림, 김재추, 강순추, 현동하, 오성옥, 오두옥, 현의종, 문학선, 권승길, 양청심, 김계생, 김상화, 홍기표, 양의석, 김종해, 송두화, 송두언, 김석준, 진승림, 고승협
5차 직권재심(2022년 5월17일)
이근진, 김종우, 현재기, 김계휴, 김석룡, 이공일, 홍두식, 오태해, 오만경, 오만군, 강태양, 강달평, 김원봉, 양태봉, 고태익, 강중만, 강창식, 문철희, 문병희, 양영백
6차 직권재심(2022년 5월31일)
김한석, 김희석, 문태화, 오병연, 박상훈, 고창방, 고대진, 고행준, 양재춘, 김동호, 양봉현, 양신경, 정기휴, 정석남, 장진선, 장두문, 송자휴, 김치관, 오성언, 현지호, 이상일, 김강희, 김치봉, 이덕순, 양인행, 양승주, 강태권, 김천권, 강권기, 고두진
7차 직권재심(2022년 6월14일)
양성무, 고병일, 강병생, 안기선, 김재호, 문종석, 이석, 문태보, 양성찬, 김병수, 고성숙, 고군연, 오의혁, 강태룡, 현필윤, 김춘배, 전인봉, 전윤경, 김인보, 장한병, 김팔만, 문종여, 이대여, 조응천, 강태영, 강위관, 송두하, 강인원, 김동호, 김군호
8차 직권재심(2022년 7월5일)
양창림, 이찬영, 서이윤, 정찬우, 고영우, 강명규, 고철주, 김병옥, 채춘배, 김희봉, 고현춘, 양문규, 박기읍, 이병근, 차주백, 이기인, 허권순, 고재온, 김의형, 김인형, 문상준, 임태훈, 현경호, 양보현, 변규하, 이명환, 김행진, 박관희, 박지호, 박응호
9차 직권재심(2022년 7월12일)
김현범, 강공효, 양보현, 오기언, 김춘언, 홍순옥, 김인수, 허균(허대호), 고계신, 김도하, 김방택(김나택), 양병규, 양원규, 양인규, 송태신, 이영호, 강병률, 고점수, 강신문, 장창환, 오영일, 현상훈, 전기순, 김영진, 김원하, 진남철, 양남윤, 전기남, 전기집
10차 직권재심(2022년 8월9일)
김시형, 오성욱, 문두찬, 김봉윤, 김병구, 신응철, 진병문, 오용겸, 오도천, 허승익, 김공인, 양창하, 강중옥, 이군형, 문규인, 오희수, 박두하, 고성남, 안인생, 오경철, 박명환, 오창오, 현찬서, 변일성, 신규현, 하인석, 하영선, 양치숙, 이동찬, 박만실
11차 직권재심(2022년 8월30일)
고해춘, 강영옥, 한덕양, 양군삼, 양정삼, 김동부, 양기옥, 이희종, 문두승, 오창하, 오용두, 홍천석, 양영하, 김치종, 강창일, 고두천, 김수후, 양병칠, 양창언, 현승환, 이방행, 김공진, 양두량, 문창호, 강익만 양순현, 양영빈, 양필형, 양영수, 현군일